영화업계에 입문하려했던 제 자신이 한심스럽고 후회됩니다

anonymous 2014.11.17 14:43:42
내년 1월이 되면 입문한지 만 3년이 되어가는 20대 중후반 여자입니다.
잘 다니던 대기업에서 대리 승진을 목전에 두고 퇴사하고,
항상 꿈꾸던 영화와 미디어 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전공자가 아니었고, 여자로써는 어린나이가 아니었기에 많은 제약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무급인턴이라는 제도는 저를 힘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은 많아. 우리가 기회를 주는것도 감사해야지."
"밥이라도 먹여주는 걸 감사해. 너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영광스런 선배의 가르침도 받고 있잖아"
인턴이라는 명목 아래, 수많은 시나리오들을 리뷰하고 저의 기획안도 꼬박꼬박 제출해야 했습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작품을 해오는 영화사 1곳과
얼마 전 막장드라마로 대박을 친 드라마 제작사 1곳
그 외에도 이름모를 제작부를 거치면서 저는 이 업계를 떠나려 합니다.
무엇보다 저의 미래라고 생각되어지는 선배님들의 모습처럼 살고싶지 않았습니다.
이 나이까지 딱히 할 게 없어 현장에 남아있다라는 말씀들은 저의 미래같아 끔찍했습니다.
영화업계에 뛰어들기 전 부모님의 자랑까지는 아니어도 부끄러운 딸자식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저 못난 애물단지같은 존재가 되어버려 죄송합니다.

차라리 퇴사를 하지 않은 채, 좋아하는 영화를 취미로 했었다면 지금보다 나은
모습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후회만 가득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던 과거가 그립습니다.
"나는 다르겠지. 그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했을꺼야"
라는 안연한 생각이 지금 저를 망치고 병들게 한 것 같습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결과물이 따라오는 업계가 아니기에 이제 그만 떠나야 할 듯 합니다.

솔직히 떠나는 이 마당에도 아직도 미련이 남고 아쉬운 마음이 커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슬픈 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열정의 크기를 이미 다 쓴 것처럼,
예전처럼 열심히 무언가를 도전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자신도 없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한 결정이, 후회로 남았네요.
이 바닥에 들어와 늘어난 건, 잦은 회식을 통한 주량뿐인 것 같네요.
어차피 후회를 해도 돌아오는 건 한숨뿐인지라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야 하는데,
저는 너무 미련한가 봅니다. 하루빨리 이 지긋지긋한 나날이 끝나길 기도할 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