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1980~1989)

venezia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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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6월 17일 17시 00분 07초 *.120.36.55
1. 개요

1980년대의 한국 영화는 또 한번의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전환기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개혁의 하나다. 그 중요한 개혁의 골자는 70년대 영화에 대한 정책적 통제에서 80년대의 개장정책으로의 전환에 의한 영화제작의 자유화라고 할 수 있으며 커다란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 사회는 1979년에 제 4공화국의 막이 내리고 1980년에는 제 5공화국이 출범하였으며 이것은 곧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전환, 즉 통제적인 폐쇄사회로부터 폭넓은 개방적인 민주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양시대 사이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그 변혁은 현저한 것이었다. 이러한 폐쇄로부터 개방으로의 사회적 변화는 한국영화 구조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몰고 왔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영화법의 개정이었다. 지난 70년대에 줄곧 정부가 연례의 영화시책에서 주장했던 유신이념의 구현이라는 특정한 정책명령이 사라지고 ‘영화 예술의 향상’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영화 검열에 있어서 크게 완화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로서 1980년대의 한국영화는 70년대 영화와는 그 미학적 특징을 현저하게 달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모의 원인이 되는 것을 70년대의 폐쇄적인 영화 환경이 80년대의 보다 개방적인 영화 환경으로 전환한데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영화 미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한편으로는 영화에 주어지는 소재로서의 개방과 성장의 사회변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규제의 요인으로서의 영화정책이 지양되므로서 80년대 영화의 몇가지 특징을 볼 수 있게 했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한국 영화는 본래의 작가적인 눈으로 정직하게 생생한 소재를 선택하고 표현의 영역을 넓혀 한국영화가 소생할 가능성을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리얼리즘의 회복과 진지한 작품의 제작을 그 주조로 하게 된데서 깊은 뜻을 갖게 한다. 한편 매우 실험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점도 80년대 영화의 새로운 경향이었다. 이러한 경향의 영화들은 70년대에 그 작가 의욕이 억제되었던 일견의 중견 감독들과 80년대에 데뷔한 신인감독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의 진지한 눈으로 한국사회의 현실이 안고 있는 가난한 서민층의 생활이나 억압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인간 생활의 모순과 비참함을 그려냈다. 물론 80년대의 사회 현실은 5-60년대의 처참한 전후 현실과는 다르다. 한국인의 GNP가 불과 100달러였던 1950년대에서 2000달러가 넘게 죈 거대한 산업사회로 발전함에 따라 괄목할 만큼 달라진 사회적 변화,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오락 영화는 다시 멜로드라마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대잠한 에로티시즘이 그 주조가 되었다. 이것도 역시 영화 검열이 완화되면서 나타난 경향이다. 70년대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농도 짙은 섹스 장면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 밖에 80년대의 영화 장르는 사극 영화와 종교영화의 새로운 대두가 주목되었다. 한편 활극과 희극 영화들이 잠시 살아났다가 쇠퇴했으며 70년대까지 정책적인 장르였던 군사영화, 반공영화,계몽영화 등은 거의 눈에 띄지않게 되었다.

2. 새로운 영화 미학의 시도들

먼저 50년대에 데뷔한 거장 유현목이 만든 <사람의 아들(1980)>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민요섭이라는 한 이단적인 신학생의 사회참여의 신념과 행동을 심각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 그가 자신이 믿어왔던 이단적인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지만 결국 그의 광신적인 추종자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사회참여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70년대에 있어서는 용납되지 않았던 주제다. 유현목은 70년대 오랜 슬럼프에 빠져있다가 <사람의 아들>에서 또한번 그의 독특하고 강렬한 사실적인 영상미학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60년대 주요한 활동을 한 임권택 감독의 작품으로는 <짝코(1980)><안개마을(1982)><불의 딸(1983)><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4)><길소뜸(1985)><씨받이(1986)><티켓(1986)> 등이 있고 그의 작품은 현실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통해서 그것을 완벽한 영상으로 표현하는 오소독스한 연출을 찾아볼 수 있다. 임권택의 작품 속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만다라><길소뜸>이 있다. <만다라>는 베를린 영화제의 본선에 올라크게 평가되었고 이어서 세계각국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한국영화의 수준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길소뜸> 역시 베를린 영화제의 본선에 올라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던 작품으로 6.25동란으로 헤어지게 된 남녀가 휴전 후 30년이 지나 아들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극적 감정을 전혀 배제한 카메라의 객관적 응시를 통해서 시간적인 매몰 속에 묻힌 분단 민족의 전쟁과 찢겨진 남녀의 애정, 그리고 끝내 친자 확인을 거부하는 인간의 변화에 깊은 비판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그렸다. <길소뜸>은 또한 시카고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정진우가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1963년 <외아들>로 였다. 25세에 감독이 된 그는 60년대의 청춘영화의 기수로 젊은 세대들의 욕구불만과 센티멘탈리즘을 담은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편 그의 1982년작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는 도시의 가난한 처녀가 돈에 팔려 어느 낙도에 작부로 가는 데서 시작한다. 낙도로 팔려간 작부는 뱃군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며 생선 한마리 값에 몸을 팔아야한다. 그녀는 한 선원과 사랑을 하게 되면서 섬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정진우는 남해 낙도에 로케이션을 감행해 자유를 갈망하는 한 여인의 처참한 생존 싸움을 고발적으로 묘사했다. 조직적인 폭력배의 그물 속에서 이처럼 생존의 자유를 위해 몸부림치는 여인을 치열하게 묘사한 작품은 보기 힘들었다.
70년대 데뷔한 이두용과 이장호는 임권택과 함께 80년대 대표 감독들이었는데, 이두용은 70년대에 <잃어버린 면사포>로 데뷔했다. 그는 지금까지 50여편 가량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피막(1980)><최후의 증인(1980)><욕망의 늪(1982)><물레야 물레야(1983)><장남(1984)><뽕(1985)> 등이다. 이중 <물레야 물레야>는 그의 가장 중요한 대표작으로 이조시대 유교적 신분 계급사회의 제도와 관습하에서의 여인의 비참한 운명을 다룬다. 그러나 이 영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거의 금욕적일 만큼 높은 의식성의 미학을 보이게한 영화 스타일의 확립이다. 이 영화는 엄격하게 억제된 모든 화면과 결백하리만치 정서가 억제된 영상의 쌓아 올림을 통해서 아름답고도 슬픈 한 여인의 비극을 의식화했다. 이 영화는 1984년 깐느영화제에 참가해서 ‘어떤 시선’부문의 한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이 밖에 이두용은 현대의 한국 가정에 있어서의 장남의 역할과 가족구조의 의미를 다룬 <장남>과 일제 식민시대에 있어서의 삶의 고통을 성적 해학으로 묘사한 <뽕>을 만들었다.
이장호는 80년대 한국영화에 가장 정력적인 영화활동을 했는데, 그는 영화의 흥행면에서도 방대한 관객동원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문제작이나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는 면에서 또하나의 작가적인 개성을 뚜렷이 하고 있었다. 이장호의 작품으로는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어둠의 자식들><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바보들의 행진><과부춤(1983)><어우동(1985)> 등이 있다. 그의 영화에서 지적될 수 있는 특징 중의 하나가 그가 만든 작품들이 심각한 주제나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대중적 공감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인데, 흔히 예술작품은 관객이 적고 흥행작품엔 예술성이 빈곤하다는 영화계의 통념을 이장호는 보기 좋게 깨뜨렸다. 이러한 예술성과 대중성의 동조를 보게 하는 그의 주요작품들의 주인공은 거의 현실사회의 밑바닥에 깔린 비천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비천한 인간들을 취급한 감독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장호는 이러한 인간들을 다양한 영화미학을 통해 호소력 강하게 그리고 있다.

3. 에로티시즘류의 멜로드라마

80년대 만들어진 한국 영화 중 뚜렷한 기세를 회복한 것은 멜로드라마이다. 70년대에 만들어진 애정물이나 통속물은 전체 제작편수의 약 40% 정도였는데 반해 80년대의 비율은 15%상승한 55%이다. 이로서 긴장되고 정서가 메마른 시대에는 멜러 드라마가 감소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80년대의 멜로드라마의 회복은 그런 의미에서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의 완화를 대변하며 내용 부분에 있어서는 짙은 에로티시즘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 1981년 박봉호의 <자유부인>과 김성수의 <색깔있는 여자> 그리고 이두용의 <욕망의 늪(1983)>, 이장호의 <무릎과 무릎 사이(1984)>가 있다. 이러한 영화는 대개 기혼 여성들의 사생활을 다루었다. 청춘영화와 10대 청소년영화는 김응천과 문여송이 집념을 가지고 만들어 왔다. 특히 김응천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살려는 청춘군상을 그려 왔으며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사랑, 우정, 노동 등을 통해 긴장하게 그려내면서 뮤지컬 영화로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갈채><깨소금과 옥돌매>(1982-83) 등이 그러한 작품들이다. 문여송도 <사랑만들기><연인들>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1983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배창호는 <철인들><적도의 꽃><고래 사냥><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84)와 <고래 사냥2><황진이><기쁜 우리 젊은 날>(1985-87) 등을 만들며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4. 사극 영화의 새 경향 및 80년대의 신인 감독들

80년대의 영화제작 경향의 하나로 사극 영화의 부활을 가져다주는 의미는 크다. 1970년대의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한 후 실상 제작비가 많이 드는 역사극은 영화제작에서 거의 그 자취가 사라지고 대신 안방 극장의 단골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역사극은 새로운 모습으로 영화 제작에로 복귀되었다. 5-60년대 사극이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야사나 고전 소설을 각색한 사극 멜러 드라마와 궁중 비사, 권력간의 싸움을 그린 궁중 사극 이었던데 반해 80년대의 사극 영화는 이것과는 훨씬 다른 의미의 작품으로 역사 속에서의 낡은 제도와 관습을 비판하며 그것을 새로운 영화미학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이두용의 <피막(1981)><물레야 물레야> 등 다수의 작품들이 제도와 관습을 비판하면서 보다 더 서민적, 민중적 입장을 취했고 임권택의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4)>, 이장호의 <어우동(1985)> 등이 그것이다. 이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과거의 사극에서처럼 왕후나 권신 또는 역사 속의 유명한 위인이 아니라 비천한 서민들이며 이들은 제도와 관습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들이다. 서민 사극으로 되살아난 이같은 역사에 대한 영화감독들의 태도에는 영화미학에 관한 관심과 함께 6-70년대 이후 폐쇄되어온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이장호의 <어우동>은 사극영화로는 최대의 흥행적 성과를 거두어 사극제작의 촉진제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영화계는 또한 신인 감독들에게 보다 많은 등장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는데, 이러한 신인 감독들 중에서 비교적 주목해야할 사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배창호는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꿈> 등 활발한 활동으로 자신의 영화스타일을 확립하였고 하명중은 <땡볕><태>(1982-85)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이 중 <땡볕>은 1985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영화적인 감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은 장길수는 <밤의 열기 속으로(1985)><레테의 연가(1987)> 를 만들었고 정지영은 <거리의 악사(1987)><위기의 여자(1987)>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한 신승수는 1985년 <장사의 꿈>과 1987년 <달빛 사냥꾼>을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뇌를 유연한 감성으로 표현했고, 박철수는 <어미(1985)><안개기둥(1986)> 등 현대사회의 모순과 가정생활의 위기를 다룬 작품들을 만들었다. 대개 80년대 신인 감독들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그들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그려내었는데, 어느 면에서 이들은 선배들이 제시하고 있는 심각한 주제나 소재, 그리고 원숙함이나 실험성 등이 결여되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90년대 한국영화의 또다른 창조적 기여를 위해 최선의 노력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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