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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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마리꼬를 만나다.

sadsong sadsong
2001년 08월 13일 15시 39분 11초 1411 4 9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라기보다 대학동창....)가 있다.
작년겨울, 그의 일본인 친구인 마리꼬와 한국에 잠깐 다녀갈 때 함께 만난적이 있었는데,
'한국을 좋아하는' 그 마리꼬가, 다니던 회사마저 그만두고 지난 6월부터 한국에 와있다.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연세대 어학당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두달째 살고 있는 마리꼬를 어제 처음으로 만났다. 대학로에서.
떠듬떠듬.... 어렵게나마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한 상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내가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듣고,
나역시 쉬운 단어 골라가면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준다.

내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만큼 "자신있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는게 흥미롭다.
한국말을 잘한다는것만으로 이렇게 우위를 점하게 될줄은....
게다가 내가 고등학생때 배웠던 일본어중에 생각나는걸 가끔 말해주면 굉장히 좋아한다.

설명해주기 참 난감했던 질문들.
'신난다'와 '재미있다', '더럽다'와 '지저분하다', '특이하다'와 '특별하다'.... 그 차이를 묻는데....
그 미묘한 느낌의 차이를 기본적인 단어들만 가지고 어떻게 설명하랴.

재미있었던 일도 많았는데, 음.... 생각나는 몇가지.

# 동동주를 마시면서 "동동"에 대한 설명을 어렵사리 마치고
그와 비슷한 막걸리 얘기를 하다가, 막걸리의 뜻....
'막' 도 '거르다'도 알지 못한다.
'막'은 '대충'이라고 설명이 되었는데 '거르다'를 설명하기가 참....
더러운 물이 흐르는 곳에 그물을 쳐놓고 더러운 것들이 걸리면, 그것이 "거르는" 것이라고
설명해주니까 이해한다. 사실 그렇지만도 않은데 --;;
(그물 설명할 땐 여덟개의 손가락을 교차시켜가며...)



# 마리꼬의 휴대폰에 친구가 사줬다는 조그만 '졸라맨' 고무인형이 달려있었는데,
  귀엽다고만 할뿐, 다른데서 본적도 없고 어떤놈인지도 모르고 있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설명해주고 이름을 설명해주려는데....
  일단 '맨'은 영어의 맨이라고 쉽게 넘어가고.... 그리고 "졸라"....  --;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말로 영어의 "very" 와 같다고 말해줬다.
  욕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좋은 말은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하숙집 아줌마나 선생님한테 쓰면 안돼요?"
  "마리꼬.... 그러면 안돼요 ^^;;;"
  

# 벽에 낙서가 되어있는 주점이었는데,
  세군데나 써있는 "낙서금지"라는 걸 보더니 "낙서"가 뭔데 못하게 하냐고 묻는다.
  여기까진 부드럽게 넘어갔다.
  "짱"이라는걸 보고 묻길래, 어린애들이 쓰는 말로 "최고"를 뜻한다고 했더니....
  그럼, 김건모의 '아주좋은 노래'  "짱가"는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한국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더라는 것이다.
  나역시 제목만 알았지, 그 노래 가사를 잘 몰라서.... 생각하다가....
  그 노래제목의 뜻은 모르겠고, 보통 한국에서 "짱가"라고 하면,
  옛날에 티비에서 했던 로봇 나오는 일본만화라고,
  "짱가 몰라요?" 했더니.... 전혀 모른다.  음.... 발음이 다른가??
  아톰이나 코난 댔더니 잘 안다면서 캔디도 아냐고 응수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티비로 수많은 일본만화를 보면서
  열광하며 자랐다고, 그때는 일본만화인지도 모르고 본 어린이들이 더 많았다고.
  적나라하게 설명해주었다.   마리꼬, 가볍게 웃는다


# 낙서중에 "머리가 아파여... 아~ 싸!!" 가 있다.  이걸보고 묻는다.
  일단 "여"는 "요"인데 귀엽게(?) 보일려고 어린애들이(?) 주로 인터넷에서 쓴다고 알려줬다.
  (자기는 외국인이라서 그게 왜 귀여운 느낌인지는 모르겠다고....)
  그 다음, "아~ 싸!!"  ....이것이 참....
  "맞다! 마리꼬, 혹시 이거 일본말 아니예요?"
  "아니예요."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으쌰'와 '아싸'를 혼동했다.
   전에 어디선가 '으쌰'는 일본식 표현이라서 '영차'를 써야한다는 캠페인(?)을 들은바 있다.)

  바른말은 아니지만 '기분 좋을 때' 하는 말이라면서 주먹쥔 손을 뻗으며 가볍게
  '아싸'를 외쳐줬는데,  이해를 잘 못한다.
  번뜩 생각이 들어 영어의 "오~ 예!" 와 비슷한 말이라고 했더니 금방 알아듣는가 싶더니....
  "왜 머리가 아픈데 기분이 좋다고 해요?"   ㅡㅡ;;;;
   웃길려고 쓴 말일거라고 설명은 해 줬으나, 마리꼬의 의심어린 눈빛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실, 그건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낙서녀(아마도)가
   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아~ 싸!"를 외쳤는지....


   마리꼬, 그녀가 "앗싸! 안성탕면!"의 경지에 올라설 날이.... 오긴 할지....


sadsong / 4444 / ㅈ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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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상황을 망각하게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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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revo89
2001.08.14 00:53
글과는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sadsong님 글의 말미에 꼭 등장하는 단어 4444 / ㅈㄷㅈ 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물어봐도 실례가 안될까여?
반복적, 지속적으로 등장하게되니....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네여.....
Profile
sadsong
글쓴이
2001.08.14 18:30
4 : 운명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그래서 '4'자가 '네개'. 남들이 하나,둘,셋! 외치고 뭘 한다면 전 넷!까지 외치죠. 운동할땐 팔벌려뛰기를 44번 합니다. 또.... / ㅈㄷㅈ : 제 이름이죠. 굳이 영문 이니셜을 쓰는게 우습다는 생각을.... ^^
videorental
2001.08.14 20:50
음..확실하진 않치만..막걸리가...대충 걸러낸 술이 아니구...지금 막 걸러낸 술이란 뜻이람니다...역시 어떤게 맞는지 저도 잘 모름니다만...제 짧은 지식엔 지금 막 걸러낸 술..이라는게 맞는거 같내요...쩝
arie
2001.08.15 00:29
아하싸! 안성탕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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