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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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버뮤다 삼각해역

vincent
2001년 10월 19일 05시 09분 42초 2830 9 6
가을이라 그런가. 어디 가고 싶은데 없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는다. 일 때문에 봄, 여름을 고스란히 홀로 실내에서 보낸 탓일까. 가을이 되자 사람들이 내가 안보이는 사이에 몰래 자기들끼리 약속이라도 했는지 신기하게 같은 말들을 건낸다. 아니면, 가을은 원래 어디론가 떠나봐야하는 계절인가.

질문을 받으면 나는 고개를 가로 젓거나 그냥 웃고 마는데, 그건...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그 질문에 내포되어 있는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그렇다.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요?"라고 진지하게 묻는 사람한테 "있어요. 버뮤다 삼각해역.. 거기 가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면 그 사람은 얼마나 황망한 표정을 지을 것인가.
얘가 지금 장난하나, 모르긴 몰라도 그 다음에 아무 말도 하고 싶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어릴 때 정기구독했던 <소년중앙>에서는 여름만 되면 납량특집 기사로 늘 우려먹는 얘기들이 뻔하게 등장했다. 1년만 보고 마는 애들이면 몰라도 나같이 정기구독하는 사람들은 그 기사 목록을 거의 꿰차게 마련인데... 열거하면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바다속에 숨어 있는 거대한 괴물 오징어(문어로 바뀌기도 했다, 가끔), 네스호의 괴수 네시(백두산 천지에도 이런 괴물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내용도 함께), 거꾸로 인어(머리가 물고기이고 다리는 사람인 너무나 안동화스러운), 각종 ufo 목격담, 사진에 찍힌 유령, 더 나아가 유령선과 마주쳤다는 옛날 선원들의 기록,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 멸망설,  피라미드의 저주, 이스터섬의 모아이상, 나스카의 거대한 거미 그림, 미스테리 써클, 마의 삼각지대 버뮤다 삼각해역 등등...

그 중에서도 버뮤다 삼각해역에 관한 이야기는 늘 내 마음을 빼앗았는데 그곳을 지나다 실종되었다는 비행기나 배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진 그 기사에 광분했던 그 때 그 시절에 대해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3차원은 고사하고 1차원 2차원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내가 무작정 4차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요지의 그 이야기에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아리송해지기도 한다.

<소년중앙>이 폐간되고 나서 서서히 뉴스에 재미를 붙여갈 무렵, 나는 해외토픽이나 세계는 지금.. 따위의 꼭지로 넘어가면 늘 귀를 쫑긋 세우곤 했는데 실망스럽게도 단 한 번도 버뮤다 트라이앵글..어쩌구 하는 보도를 들은 적이 없다.
누군가 4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만들었다가 하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니까 닫아버렸거나 다른 곳에 새로운 문을 만든 것임에 틀림 없다고... 그렇게 이해하기로 하고 나이가 들면서 그 많은 심령사진이 어떻게 찍혔을까, 보다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 그 조작방법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나이가 되면서 자연스레 잊게 되었다.

그러다 요 얼마간의 끔찍하고 답답한 일들-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국제 정세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고-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끔찍한 세상에서 완벽하게 차단되고, 사라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올린 곳이 버뮤다 삼각해역이었다.
누가 아는가.
이제 사람들의 관심도 사라졌으니 그동안 닫혀있었던 4차원의 통로가 다시 열려 있을지. 아니면, 그 옛날 사라졌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튀어나와 세상이 왜 이렇게 됐나, 같이 한숨 쉬어줄지.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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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somina
2001.10.19 05:34
새벽에 잠 안자고 무슨 공상을 그렇게 ..^^..
그러지말구 나랑 어디 바람이나 쐬러 가요 ..날 잡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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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man
2001.10.19 17:04
님아... 얼마전 과학자가 버뮤다 삼각지에서 실종된 배들은 바닷속 기포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때 전 생각 했지요. 그럼 비행기는....
버뮤다에서 사라지면 대체 어디로 갈까요? 아님 밑의 jedi님 이론 대로 다른 곳에서 사라진 제가 한국에 나타난 걸 까요? 기억을 모두 잊은 체 ^^;
mee4004
2001.10.19 17:42
빈님...버뮤다 삼각지에 관한 트리트먼트도 하나 있단말야!!
simplemen
2001.10.19 22:19
버뮤다섬들에 비밀기지들이 있어서..숨기기위해...지나가는 항공기를 폭파시키고 루머를 유포했다는 루머아닌 루머도 있져....거기에 태권브이가 있는 게 아닐까 마징가제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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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1.10.20 11:33
그런 궁금증들과 함께하던 소년중앙 김정흠(?) 박사님은 지금 어디에.... 스따리 스따리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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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I
2001.10.21 03:13
아..반갑습니다..저 역시 '소년중앙 키드'랍니다.^^
vincent
글쓴이
2001.10.21 07:42
김정흠 박사님 얼마 전에 돌아가셨을걸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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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1.10.21 22:03
이런.... 정말입니까.... 우주의 신비가 아직 채 벗겨지지도 않았는데.... 그 카랑카랑한 음색이 아직도 귀에 선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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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2.01.05 10:22
2002년 1월4일, EBS 통해 김정흠박사님 건재함을 확인. 빈센트님께서도 확인. 꿈과 희망의 김박사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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