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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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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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14일 03시 27분 25초 1462 5 1
이야기

무라카미 후유키(村上冬樹)



어느날 밤 길을 가다가, 그는 발밑에 떨어진 봉투를 주웠다.

이런 것이 떨어져있다니.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노란색 서류봉투였다.

그 봉투의 입구는 두터운 종이테입으로 막혀있었으며,
반대편 위에는 매직글씨로 큼직하게, '이야기'라고 달랑 석 자가 쓰여있었다.

그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춥고 늦은 밤에 그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안에 뭔가 값나가는 것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아니, 사실 봉투를 발견한 순간에 그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럴법해 보이는 봉투였다.
혹시라도 그렇다면, 그냥 가져버릴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잃어버리고 간 사람의 잘못인 것이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봉투를 열었다.
종이테입 떨어지는 소리가 치익 하고 났다.
그가 봉투를 거꾸로 하자, 그 안에서는
먼저 담배 한 갑과 커피믹스 한 봉, 냅킨 따위가 차례로 떨어졌다.

그가 더 이상 뭔가는 없는 것인가 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드디어 스윽 하고, 작은 동물의 털있는 살갗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를 내며
이야기 - 그것은 그가 말로만 듣고 있었던 이야기란 것의 모습이었다-
한마리가 부드럽게 빠져나오더니
작은 고양이처럼 바닥에 톡 하고 내려앉았다.

그 남자는 잠깐 멍해져서 그 놈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습게도 그는 그것이 갑자기 난폭하게 튀어 올라
자신의 얼굴을 할퀴거나 깨물지는 않을까 두려워졌다.

그런데, 잠시 후에 이야기는 그 남자를 한번 슥 올려다보고나서는
소리도 없이 사사삭, 저만치로 달아났다.
그의 집과는 반대방향이었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 남자는 빈 봉투를 들고 잠깐 서 있다가
손에 들고있던 담배 - 그것은 러키 스트라이크였다- 의 포장을 뜯어 한개피 붙여물고는 걷기 시작했다.
그는 커피믹스 봉투의 끝을 쥐어 탈탈 털며 생각했다.
'인스탄트지만, 커피를 마실 수 있겠군.
이걸 마시고 잠이 안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아도 잠은 잘 들고 있지 못하니까.'

그는 냅킨을 펴, 언 코에서 나오는 콧물도 닦았다.

차가운 어느 겨울밤의 일이었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jasujung
2002.12.14 03:39
멋지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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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220
글쓴이
2002.12.14 21:57
아니, 조회수 300이 넘을 건 또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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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va
2002.12.14 2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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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2.12.15 00:37
당황, 긴장(?)하지 마세요. 지금 필커에선 조회수 대폭발 사건이 간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누구 소행인지, 제다이님한테 발각되면 광선검에 쑤심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알고 있구요....
물론, 언제나의 이미지님 글은 조회수 300도 아쉽습니다.(y)
vincent
2002.12.17 05:44
음, 조회수 대폭발 사건, 때문에 저도 적잖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부시가 옆에 있다면 이 '사건'의 배후에도 후세인이 있다고 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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