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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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하늘보기.

로단테
2002년 12월 14일 20시 21분 32초 1310 2


오늘아침은..굉장히 추웠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법원이라는 꿀꾸리한 건물이
틀어박힌 공기좋은 외곽 주택단지 근처의 외로운 외딴섬단지..
라고 표현해도 모자랄만큼 귀찮은 곳이라..
보통, 다른 단지내에선 느낄 수 없는
바람과.. 구름과.. 햇살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참...
...뭐같은 곳이죠.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물론, 안쪽의 덧문이요, 덧문..-_-;;)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늘을 볼 수 있답니다.
눈앞에 아무것도 걸리는것 없이, 오직 하늘만을.

우리집은 15층이예요.
그리고 주변엔 다른 아파트라던가..
아니면 다른 동이 없어서, 그렇게..
아침이 되면 하늘을 볼 수 있답니다.

여러가지 구름이 있지요.
새털구름, 양때구름, 기형구름..일명 무지갯빛 구름.
그 구름을 보고 전 오늘의 날씨를 예상합니다.(기상캐스터?;;)

아침안개가 끼는날은..
하얀 한지를 가득 발라놓은듯, 창밖에 온통 하얀 물내음이 가득찹니다.
손에 쥐면 쥐어질것 같은..
왜, 그런거 있잖아요.
구름이 손에 잡힐것 같아 잠자리채를 휘둘러 본 기억..같은거.

아침놀이 지는날은..
창밖이 온통 치잣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주황색인듯 하지만 치잣빛처럼 옅은 분홍색이죠.
그런날이면 전 제 남색 우산을 꼭 챙깁니다.
비가 오는 날이니까요.

창밖이 온통 새파란날은..
손수건을 챙겨듭니다.
엄마가 새로 사주신 새하얀 공주님 손수건.
레이스가 곱게도 달린, 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손수건이죠.
많이 더운날입니다.
땀이 흐를땐, 손으로 닦는것 보다는 손수건으로 훔쳐내는게
보기에도, 피부에도 더 좋으니까요.

구름이 적당히 끼어 있고..
그 구름이 눈을 깜빡이는 동안
친구 손을 잡고 저 멀리 날아가는 날이면
전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니까요.

아침일찍 일어나,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입니다.
제 평균 수면 시간은 세시간.
많이 모자라죠.
여섯시면 레퀘엠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일어나자마자 음악을 끄고, 욕실로 달려가요.
여름이나 겨울이나 찬물에 세수하고 머리도 감고..
미리 챙겨뒀던 교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듭니다.
엄마가 깨우러 오시면 그때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는걸 도와드리죠.

가방은 전날 다 챙겨놓지만
아침이 되어도 가방안에 들어있지 않는 물건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필통과 두꺼운 공책 한권.
그게 전부입니다.

방을 나서기전,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고 창문을 닫습니다.
하늘은..여전히 파랗죠.
오늘 아침은 옅은 비취색이었습니다.

아파서..혹은 일이 있어서..
아니면, 야자를 빠지는 날이 되면..
집에 일찍 돌아옵니다.
그러면, 얼른 책상 앞으로 달려가
벽면의 반이상을 차지한 커다란 창문의 덧문부터 엽니다.
왼쪽창이죠.
제방 오른쪽엔 붙박이 장이 하나 있고..
거대한 책장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이의 기둥에는, 엄마와 함께 만든
지점토 장미 거울이 붙어있어요.
거울은 항상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습니다.

그리고 기다려요.
해가지기를.

일곱시 즈음 되면, 해가집니다.
요즘은 더 빨리 지나요?
그러면, 전..
가만히 침대에 기대앉아, 아무것도 없는 왼쪽 벽을 바라보며 멍하게 있습니다.

노을이 제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니까요.

정 남향인 우리집...
내 창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에선 아침해가, 왼쪽에선 저녁해가 보이죠.
거울은 저녁해 만을 비춰냅니다.

주홍빛 홍시같은 저녁 해가 방으로 들어옵니다.
제방은..
온통 주황색으로 가득차죠.
그 시간이 제겐 가장 행복한 순간중의 하나랍니다.

나를 감싸오는 주황색의 따뜻한 빛.
예쁜색깔.
기분좋은 바람,
촉촉한 풀냄새.

노을은 자주 볼 수 있는게 아닙니다.
노을이 지지 않는 날도 있게 마련이죠.

노을이 지는 날의 하늘은..
참 많은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내가 살아온 날들, 얼마안되는 짧은 시간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하고싶은 일들, 아직은 할 수 없는 일.
내가 꿈꿔왔던 일들, 내가 품어왔던 꿈들.
그런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한번 떠올릴 수 있게 해주죠.
그래서 전 그 시간이면 행복해 집니다.

오늘은 노을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침하늘은 볼 수 있었죠.
비가 조금 왔지만, 여우비였습니다.
하늘에선 태양이 빛나고 구름은 하얗고, 하늘이 파란데
작은 안개같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아침, 저녁, 오늘 하루를 살다 가는 빛을 바라볼 기회라는건
잡기에 어려운게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기회를 항상 놓치곤 하죠.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건 아닐거예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깐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는건
말도 안되는 것이잖아요?

잊고 있었을 겁니다.
항상 곁에 존재하던 것이었으니까.
늘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지금 당장 보지 않아도, 언제고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하늘을 보는 그런 소중한 기회를
사람들은 잡지 못하는 겝니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것 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입맞춤을 하는 것 보다도
사랑하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는 것 보다도 더
소중한 일입니다.

몇초간 늦춘다고 지각하지는 않아요.
잠깐 눈을 깜빡인다고 사랑하는 이가 달아나진 않아요.
잠깐 눈을 감아도 아이는 투정을 부리지 않아요.
하지만 하늘은 달라요.

지금 보지 않으면 언제 다시 돌아올 기회일런지.
언제고 다시 볼 수 있다 생각하지만, 그건 지금과는 다른 기회일뿐.

글을 쓰는 작가라면,
순간, 가슴을 파고드는 새벽의 찬 이슬같은 아름다운 싯구를 생각할 수도 있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나이드신 할머니라면
어린 손자의 귀여운 모습을 볼 수도 있죠.
사랑을 하고있는 사람이라면
그 파란 하늘이 사랑하는 이의 미소로 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
다음에도 언젠가는 그런 가슴벅참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지금'과는 다른 '다음'인걸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먼저 아침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세요.

점심을 먹고난 후 남는 시간,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기 보다는 하늘을 먼저 바라보는
그런 가슴을 가져보세요.

집에 돌아오기전, 밤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세요.

하늘은 참 많은것들을 내게 가르쳐 줍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겪을 많은 일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하고싶은 일을,
내가 원하는 것들,
내가 바라고 있던, 내가 꾸어왔던 어린날의 꿈들.

하늘을 가만히 바라다 보고 있을때면..
나도 모르게 하늘을 날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항상 답답한 공간에서
틀에 짜여진,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늘안에서 자유를 찾겠지요.

하늘을 보세요.

잠깐이면 되요.
눈을 깜박일 시간, 아주 짧은, 일초가 되지 못하는 시간이라도
하늘을 한번 바라봐 주세요.
그리고 많은것들을 느껴보세요.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무언가 감명깊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면
그 아이를 티없이 맑게 키워 보고 싶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아름다운 것도 있노라고 일러 주고 싶다면
하늘을 보세요.

그냥 파랗기만 한 하늘이 아니예요.

하늘은 참 많은 색을 담고 있으니까.
파랗다는 가을 하늘에도, 빨갛고, 노란, 꿈같은 조각들이 박혀있게 마련이니까.

하늘을 보세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것도 있노라고 느껴 볼 수 있는
그런 짧고도 소중한 시간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고
저녁에 들어와 흐린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고.
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

내가 하늘을 보는 그 순간만은
그 넓디 넓은 하늘이 내것이 됩니다.

하늘을 보세요.



-by 로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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