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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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2003년 8월7일 새벽.... 슬픈 꿈 이야기.

sadsong sadsong
2003년 08월 08일 03시 42분 33초 1184 2
생맥주 두잔을 마시고, 수요예술무대를 보고, 머리를 살짝 깍고,
3시를 조금 넘겨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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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버스 안.
창가쪽에 선 나는 무슨 공부라도 했던건지, 조그만 책을 펴들고 있었다.
옆으로 누군가 다가와 선다.
여자. 무척 예쁘다.
그녀의 손에도 내것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책(크기는 다른)이 펼쳐져 있다.
책을 보던 그녀가, 나도 비슷한 책을 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수줍게 입을 연다.
자기 책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 이게 뭐예요?"

그제서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그녀는, 해맑게 웃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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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학과가 모여있는 교양과목 강의실.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엔 그녀가 앉아있다. 웃고 있다. 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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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전공은 연기, 또는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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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식당.
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다.
저만치, 친구들과 함께 식판을 들고 걸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 그녀도 내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난 손을 들어 인사했고, 그녀도 특유의 웃음으로 손을 들어 밝게 인사한다.

난 그녀가 좋다.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이제부터, 이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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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나는 하던 일 제쳐두고 학교 뒷마당을 가로질러 그녀에게로 달려간다.

난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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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을 장면>

-아마도-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한번쯤 한다. 깡패 역이거나 군인 역이다.
내무반처럼 보이는 공간에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보조출연자들?)
그 중에, 고등학교 동창, 태권도부였고 순하고 착했던 'OOO'로 보이는 사람이 있어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몇마디 나눠보지만,
그 사람은 OOO이 아닌 것은 물론, 착한것과는 거리가 먼,
두눈에 살의가 느껴지는, 진짜 깡패다. 눈에 힘을 주고, 뭔가 살벌한 말들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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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을 장면>

그 보조출연자들과 스탶들? 아니면 학교 학생들? 수십명의 사람들 틈에서 밥을 먹는다.
비닐포장이 쳐져있는, 마치 거대한 비닐하우스처럼 보이는 공간(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아까의 학교 식당이 이 공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적다.)
난 친한 친구 두명쯤과 함께 있었는데,
이때, 밖으로, 비닐건물을 빙 돌아서 입구를 통해 식당 안으로 들어오려는 □□을 발견한다.
뜻밖의 발견. 난 내 친구들에게 "내가 아는 여자야. 영화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의 머리모양이 새롭다. 짧은.. 남자 어린아이처럼 짧게 쳐올린 머리모양.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도, 그저 저 멀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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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그녀와의 사랑.
그녀와의 교감.
학교 안팎에서 나눴던 그 아름다운 감정들.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포근하고 꿈결같았는지,
내 가슴에 지금도 또렷이 남아있지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질 않아.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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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이 모여서 밥을 먹고 있었다.
한 선배(친구?)가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궁금하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그가 한쪽을 가리킨다.  "저기, 쟤야."
그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면....  
그곳엔 밝게 웃는 그녀가 서있다.

그는, 진심어린 사랑을 담아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내 가슴은 갈기갈기 찢겨진다.

그는, 그녀와 나와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이 선배(친구)의 존재조차 모른다.
그녀는 날 사랑한다.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
이미 이 감정은 그렇게 만만한 수준의 가벼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난 그의 소중한, 새롭게 피어나는 사랑을 막을 수 없다.
아니, 막아도 되지만, 막아야 하지만,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내가 양보하고 아파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가 꿈속에 녹아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저멀리 친구들 틈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웃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맑게, 수줍게, 웃는다. 웃고있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꿈이 이끄는 대로.... 난 이제 그녀를 놓아주어야만 한다.

그녀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내 가슴은 서럽게 처절하게 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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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디론가 급히 불려간 곳.
많은 남자들이 몹시 긴박하게 전투준비를 갖추고 있다.
내가 속한 단체 사람들? 혹은 모르는 사람들?
우리는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전투복을 입고 군화까지 신었던가?) 어디론가 출동한다.

헬리콥터에 올라탄다.
헬리콥터는 시골길 위를 따라 날기 시작한다.
그냥 보통의 좁은 한국 시골길. 양옆으론 논밭이 있는.
겨우 지상 2~4 미터 높이로 날던 헬리콥터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낙하산을 펼치며 뛰어내린다.
(하지만 지상까지의 낙하시간이 몇초는 걸리는.... 마치 사람들의 몸이 깃털이라도 된 듯.)

내 차례가 다가오고.. 난 낙하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인솔자에게 묻지만,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렇게 하면 돼"라고만 설명할 뿐이다.
뛰어내린다.  이때는 헬리콥터의 고도가 2미터 정도밖에 안돼 보인다.
한박자 쉬고, 낙하산을 펼치기 위해 고리를 잡아당겼지만,
막 펼쳐지는 동시에 내 발이 땅에 사뿐히 닿는다.

이제 나는 -이미 뛰어내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한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손에는 총들이 들려져있다. 기관총.
난 계속 달리면서 옆사람에게 말한다.
"전 총이 없는데요."
그 사람이 품안 어디선가 총을 하나 꺼내 준다.
투박한 소음기가 달린 권총.

인솔자로부터 명령이 하달된다.
"모두 사살하라...."

누굴?

총을 든 사람들이 시골마을 여기저기를 달리며 표적으로 삼는 것은.
회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들.

어떤 동아리(학과? 단체?)에서 이 시골마을로 농활(?) 엠티(?)를 왔다.
그들은, 단체로 맞춘듯한, 옷깃이 있는 회색(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다.

우리는 마치 시위진압군의 위치라도 되는 듯 했고,
그 회색옷을 입은 학생(?)들은 시골마을에서 어떤 음모라도 꾸미고 있던 비밀단체라도 되는 것인가?
이것 역시 꿈이 결정해주는 것일 뿐, 다른 설명같은 것이 따르진 않는다.
-나도 함께 쏘았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우리는 회색옷을 입은 사람들이 발견될 때마다 그들에게 총을 쏘아댄다.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회색옷의 학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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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로 된 문을 바라보면서 몸을 숨기고 있다. 옛 한옥.
그 문밖으로 시골마을 풍경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있는 곳이 문 안쪽인 것도 아니다.  
내가 있는 곳도 '밖', 저 문 너머도 '밖'.  
저쪽과 이쪽, 그 사이에 그저 '삐걱' 소리를 낼 것 같은 낡은 나무 문과 담장이 있을 뿐.

나는 열려있는 문을 향해 총을 겨눈 채,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잠 시 뒤, 문 오른쪽으로부터 회색옷을 입은 누군가의 모습이 '프레임 인' 되듯이 나타난다.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같은 순간....

내 두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미소.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웃음을 짓는 그녀.
언제나 보던 그 맑고 환한, 수줍음 깃든 웃음.

찰나.

회색 옷을 입은 그녀의 가슴에 구멍이 난다.

그녀 입가의 웃음은 이제, 아주 천천히....  희미해져 간다.

무아지경에 빠진 채, 난 두 번 정도 방아쇠를 더 당기고....
그녀의 몸에선 '퍽' '퍽' 하는 소리라도 나는 듯하다.

왜, 왜....

그녀가, 회색옷의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제 흙바닥에 곱게 누운 그녀의 얼굴에....  미소는 사라졌다....
....
....

소리내어 울고 있는지, 소리죽여 울고 있는지 모를,
내 가슴이 찢어지고 있는지, 이미 다 찢어져버렸는지 모를,
미쳐버릴 것만 같은, 이미 미쳐버린 것만 같은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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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잠에서 깬 것 같다.

잠에서 깨고도 몇시간 동안 침대에서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곱던 얼굴이 한동안 또렸했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미소가 한동안 또렸했기 때문에....
꿈속 가상의 인물, 그 얼굴이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아있던 적이 있었는지....

온몸에 힘이 풀린 난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미안함으로.

한참만에 겨우 일어나 잠시 주저 않아 있으려니,
그 버스 안, 첫 만남에서의 그녀 모습이 떠올라 잠시 눈가가 촉촉해진다.

씻고, 밥을 먹고....
그녀의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급히 컴퓨터를 켜고 기억을 하나 둘, 더듬어본다.
다시한번 몰려오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눈물 한방울 툭 떨어지려눈 순간.
바로 그 순간, 기가 막히게 휴대폰 전화벨이 울린다.

"뭐해, 사무실에서 이야기좀 할까?"
서둘러 감정을 정리한다.



열두시간쯤 지난 지금, 이제는 거의 지워져버린 그 얼굴, 그 웃음....
하지만, 그 사랑했던 느낌들은 아직 내안에 그대로.
그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그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몽헌님의 갑작스런 죽음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가,
오히려 난 이제 좀 밝게 살아보겠노라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녀는 내 변심이 싫었던 걸까....
며칠 더 어둠속을 헤맨다고, 그녀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지금 흐르는 이 눈물을 보면 그녀도 가슴 아파할까....
다음 세상에 만나면, 그녀는 날 알아볼까.. 그 미소를 다시 보여줄까....
"누구..세요....?"라며 눈 크게 뜨고 곱게 미소지을까....


"왜.... 왜.. 너는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니.... 왜....
나는.... 이렇게.. 널 느끼는데.... 알아보는데...."


sadsong / 4444 / ㅈㅎ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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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작은 숲" - piano 정재형, featuring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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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uni592
2003.08.08 12:12
또 한번 지독한 열병을 하셨네요...
Profile
xeva
2003.08.08 13:25
병이다.....지독한......꿈속에서도 누군가의 죽음을 보았다....슬펐다.... 내주위의 그 친했던 3명을 보내면서도...이런 저런 사정아닌 사정으로 마지막가는 길을 보지 못했는데....얼핏스친 사람의 죽음...마지막가는길을 보기위해..분양소를 찾고...돌아오는길에...내눈에 눈물이...하염없이 내리는건...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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