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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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스크린쿼터...

cinema
2004년 06월 17일 13시 20분 03초 1279 2 13
빅 죤과 홍길동 선수의 복싱 경기!

경기장을 가득 메운 전세계 여러 나라의 관람객들. 빅 죤을 응원하는 관람객 수가 압도적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아야할 경기장엔 야유와 조롱이 가득하다.

링 위를 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빅 죤은 3m가 넘는 장신에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300kg에 육박하는 거구의 선수이고, 홍길동은 170cm가 조금 넘는 키에 운동선수 같지 않은 몸매가 볼품 없는 80kg에도 못 미치는 선수다.

공이 울리고 홍길동 선수가 일방적으로 얻어 터진다. 아니 처참히 짓밟힌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게임이 안된다.
빅 죤은 전세계 관람객의 열렬한 지지를 한 몸에 받고, 홍길동 선수는 자국 관람객들에게도 야유를 외면하기 힘들 지경이다.
홍길동 선수가 처참히 짓밟히는 경기는 그 이후로도 계속된다. 관람객들은 홍길동 선수가 '오늘은 어떻게 짓밟히는가?' 궁금해서 경기장을 찾는다고 비웃고 있다.

사태가 이 정도니 약간이라도 공평하게 경기를 치루기 위해 빅 죤의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한쪽 팔도 끈으로 묶어 사용할 수 없게 하였다.
그리고 몇 경기를 치렀지만, 여전히 홍길동 선수가 무너진다.
빅 죤이 팔에 묶은 끈을 살짝 느슨하게 하고선 경기를 치른 것이다.
심판의 엄중한 경고 하에 팔에 묶은 끈을 고쳐 맨 빅 죤과 홍길동 선수의 재대결.
홍길동 선수는 빠른 발을 이용하여 한 방, 두 방 펀치를 날리기 시작한다. 마치 날파리가 황소 주위를 맴도는 듯 하지만, 황소에게도 약간의 타격이 가해지긴 하는 듯 하다.
경기가 계속될수록 조금씩 우위를 점하는 홍길동 선수.
이제 제법 경기가 재미있어진다.
아무리 빅 죤이라고 해도 한쪽 눈과 한쪽 팔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홍길동 선수가 만만치 않은가 보다.
서서히 홍길동을 응원하기 시작하는 한국의 관람객들. 몇 몇 아시아 국가의 관람객들도 이 작고 초라한 동양선수의 선전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열심히 운동을 한 결과 키가 10cm나 더 자란 홍길동 선수. 이제는 몸무게도 100kg에 육박한다.
탄력 받은 홍길동 선수는 링 위를 종횡무진 누비며 빅 죤을 괴롭히고 있다.
빅 죤과의 상대전적을 30패 35승으로까지 역전시킨 홍길동 선수.
장하다, 홍길동! 늠늠하다, 홍길동!

심판진의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빅 죤의 매니저측에서 지금처럼이라면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홍길동 선수에게 주어진 어드벤티지를 없애달라는 요구다.
심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제는 홍길동이도 예전과 다르다, 빅 죤과의 수많은 경기를 통해서 실력을 쌓았고, 빠른 발을 이용한 날렵한 경기운영으로 빅 죤과의 정면승부를 할 만한 실력이 되었다.'
'옳다. 우리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경기를 할 수 없다. 그 사이 홍길동 선수의 키가 10cm나 자랐고, 몸무게도 100kg에 육박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정정당당하게 싸워볼만 하다.'
'으샤으샤...'

오랜 논의 끝에 홍길동 선수에게 주어진 어드벤티지를 없애기로 결정이 났다.
홍길동 선수 측에서도 약간의 반발이 있었지만, 이내 곧 수긍을 했다. 이제는 한번 제대로 붙어볼만 하지 않느냐는 판단이 선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빅게임이다.
몇 년만에 빅 죤과 홍길동 선수의 정식 시합이 열리는 순간!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든다. 심지어 도가니탕을 먹으며 관람하는 사람도 보인다. ㅡㅡ;

공이 울리고 빅 죤과 홍길동이 탐색전을 하느라 바쁘다.
1회전은 약간의 견제타들만 오고 갔을 뿐 별다른 난타전이 없었다. 오히려 발빠른 홍길동 선수가 빅 죤을 약 올린 1회였다고나 할까?
라운드 걸의 시원한 워킹이 끝난 후, 2회전 공이 울리고 좌우로 스탭을 밟으며 접근해 오는 홍길동 선수의 왼쪽 턱에 적중하는 빅 죤의 라이트훅!
그 동안 묶여 있었던 빅 죤의 오른 손이 시위라도 하듯 허공을 크게 갈랐고, 허공을 가른 주먹은 정확히 홍길동 선수의 왼쪽 턱을 강타했다.
홍길동 선수의 몸이 링 위로 10cm 가량 뜬 뒤 철퍼덕 쓰러졌다.

'...9, 10! 땡땡땡'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하는 빅 죤과 환호하는 관람객들, 여전히 링 위에 뻗어 움직임이 없는 홍길동선수.
홍길동 선수의 코칭스탭들이 급하게 링 위로 오른다. 곧 링닥터가 홍길동 선수의 눈동자를 확인하고 들것을 부른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홍길동 선수의 양팔이 힘 없이 들것 아래로 떨어진다.

그 날 9시 뉴스엔 홍길동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이 탑 뉴스로 전파를 탔고, 우리는 더이상 홍길동 선수의 경기를 볼 수 없었다.
ㅠㅠ;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vincent
2004.06.17 14:49
우리의 '땀'과 '피'를 보여줄 수 없는게 치명적이군요. -_-;;;
73lang
2004.06.17 16:47
뒤져가는 놈 링겔 꽂아 줘봤자 뒤지기는 마찬가진거 같슴다.

더 이상 손쓸 겨를이 없어지기 전에 우리 모두 뼈를 깎는 자성과 빈센트 님의 말씀처럼 땀과 피가...눈물이 필요할꺼 같슴미다.



뱀발 : 이종격투기로 묘사했으면 더 재미났을꺼 같은디요...



우겔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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