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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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난 여자가 좋더라....

junsway
2005년 07월 25일 12시 11분 34초 1473 5 5
얼마 전에 한 여자 시나리오 작가를 만났다.... 굳이 시나리오 작가 앞에 '여자'라는 말을 붙인 이유가 있다.

이 작가분이 흔치 않은.... 방송쪽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굳힌 분이 영화가 하고 싶어 왔다는 데 대한 감동의

표시이며.... 영화계에서 좀 잘나간다 싶으면 방송으로 휙 가버리는 여자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한 불만의 외침이며...

남성 위주의 정서속에서 정말로 여성의 감성이 필요한 한국영화계의 안타까움의 심정을 담은 그런 이유가 있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쓴다는 것이 시나리오를 쓰던 방송 드라마를 쓰던 소설을 쓰던 그 무엇을 쓰던 작가의 마음이겠지만

가끔 울화가 치밀데가 있다.

몇년 전 노희경 작가가 영화쪽으로 빠져나가는 배우인력 때문에 방송드라마에 캐스팅이 어렵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 한 워크샵에서 만난 김희재 작가(한국 최초의 1억 개런티 작가)는 방송드라마 대본을 쓴다고 했다.

한 참석자가 '왜 여자작가들은 기회만 되면 영화계를 떠나 방송으로 가냐고 물었더니... 김작가는 자신은 사전전작제

드라마라 기존의 여자작가들과 다르단다... 그 말이 정말 영화에 뼈를 묻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까짓거 영화나 드라마

나 잘만 쓰면 되겠다는 건지 그 뜻은 잘은 알 수 없었지만 가끔 난 혼란에 빠진다. 정말 여자 작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

고 있는지 말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로야 방송쪽이 대우도 좋고 영화처럼 압축된 정서가 아닌 쭉쭉 늘려서 아쉬워하며 잘랐던 이야기도

맘껏 이야기 할 수 있고, 지문보다는 대사 위주의 드라마 관행이 여자작가에게 맞아서 그렇다 하기도 하고.... 감독보다

작가의 힘이 쎈 곳도 영화보다는 방송이라느니... 온갖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저런 이유를 떠나서 '그냥 난 방송작가가 천직인거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문거 같다.

여자 남자를 떠나서.... 돈이 되는 쪽이라면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상업작가라는 것이 결국은 물질적 이해관계의 중요도가 큰 직업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방송쪽 입질이 있어서 한 때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사실 그것도 쉬운 문제가 아닌 거 같다...

능력도 안되고... 그동안 줄기차게 정진한 영화 매커니즘을 하루 아침에 버리기도 쉽지 않고.... 괜히 얼쩡거리며

남의 밥그룻 뺏어먹기도 뭐하고.... 오히려 영화보다도 경쟁이 심하다는 방송쪽에 가서 망가지기 보다는.....

경제적으로는 힘들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이 잘라내야 하고... 감독이나 피디의 눈치도 봐야겠지만.... 그래도

영화계에 계속 남고 싶다....

그리고 정말 의식있는 여자 시나리오 작가들이 많이 나와 한국영화계를 책임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이 소박한 한 남자 시나리오 작가의 마음을 알아들 주실까?

정말 성비가 균형잡힌 그런 영화계에서 살고 싶다.

난 오늘도 외치고 싶다.... '난 파트너로는 역시 여자 작가가 좋더라..'라고....




마틴 트레비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73lang
2005.07.25 17:08
-서울대 '2008년 논술형 본고사' 중에서


(여자에게도 남성 명사가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주로 남자들이 갖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가 특히 그러하다.)

Cette femme est un de nos meilleurs écrivains.
(저 여자는 우리 나라의 가장 우수한 작가 중의 하나이다.)

Q: 영화랑 방송이라넌 매체넌 숫놈인가? 암뇬인가? 요것을 논하시씨요

Q : 셰익스피어가 만약 현대에 태어났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에 대해서 영문으로 논술하시씨요



죄송험돠...하도 날이 더워서리... (__);;;
vincent
2005.07.25 23:25
뭐, 그다지 울화가 치밀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나이 든 남자 시나리오작가랑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 감독들이 별로 없는데다가
감독들 중 젊은 여성 감독들이 대다수라면,
방송 쪽으로 건너가게 되는 경력 있는 남성 시나리오작가도 많아지겠죠.

특별히 여성 시나리오작가의 감수성을 원하는 영화가 점점 적어지는 것도 이유가 될 겁니다.
(능력 있는 여성시나리오작가의 수가 적어서 그분들의 감수성을 담는 영화가 안만들어지는 거라고는 도저히...) 남성 보다 더한 마초 감성을 갖고 있는 여성작가라면 뭐 상당히 수요가 있을 거구요.
이미 지칠만큼 지치고 다칠만큼 다쳐서 건너가는 분들, 이왕이면 잘 하시라고 응원해 드리고 싶습니다. 거기 가서 하시고 싶었는데 안먹힌다며 까였던 얘기들 마음껏 풀어놓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아주 건너가시지 말고 자유롭게 오가셨으면 더 좋겠구요.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도 쓰는 분들도 있는데 드라마 각본도 쓰고 영화 시나리도 쓰는거야 뭐...

추신. 작가나 PD나 기본적으로 방송쪽 사람들은 영화에 대한 열망이 상당하더군요. '예술하는 것'에 대한 갈증인지. 속도전에 질린 탓인지. 둘 다인지. -_-;;;;
junsway
글쓴이
2005.07.26 11:55
빈센트님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여자작가가 많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마초가 아니라 섬세함의 정신.....
hkchohk
2005.07.27 05:45
저 맨 위에 언급한 여자 시나리오 작가란.. "인정옥"일 것이라고 아이 게쓰.
Profile
gotoact
2005.08.04 02:46
'영화'하고 싶어하는 드라마작가들 꽤 많습니다.
그러나 같이 작업하자고 했다가 물 먹은 경우나, 애써 시나리오 써서 건네줬더니 다 쳐내고
자기 필요한 장면만 살리는 감독들에게 상처를 받은 이들도 꽤 되더군요.
무엇보다 방송쪽을 선호하는 이유는 '수입'과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존중의 정도'에 있을 겁니다.
먹고사는 문제...별것 아니라고 초연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소위 글쟁이라는 사람들 치고
넉넉한 이들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작업기간 길고, 다 찍어놓고 크레딧 하나 못 올리는 영화로 끝이난 제 친구는
제 자식이 잘못된 듯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더군요. 그 후 드라마쪽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영화제작 메커니즘에 밝지 않은 작가들은(현장 경험이 없는)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막 쳐내고 감독취향으로 수정되는 면을 수긍 못하는 경우도 있는것 같아요.
영화가 '감독예술'이라는 것에는 일부분 알고 있지만, 겪는 당사자 입장에선 불유쾌할 수도
있으니까. ^^
주변에 시나리오 열심히 쓰고, 어떡하면 영화쪽에 연결시킬 수 있을지 고심하는 여자 작가들
많습니다. 그들에게 작품을 핑계로 수작(?)만 걸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가끔들 겪는다는데
위험부담, 기다림이 긴 영화작업보다 짧게 끊나고 보수가 나은 드라마판을 유혹적으로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솔직히 글 쓰는 사람은 소재에 따라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도 쓰고, 드라마도 씁니다.
단, 그게 어떻게 자신의 프로필이 돼느냐의 문제겠죠.
그래도 여자작가에 대한 애정을 표한 글을 읽으니, 한 여름에 예쁜 함박눈을 맞는 기분이
살짝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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