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369 개

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잊을수없는 기억....이 될듯...

kinoson kinoson
2006년 07월 22일 07시 55분 48초 1580 4
1.
어제밤에도 어김없이 항상 가던집에서 소주를 미친듯이 먹고
살아남은 (하필이면 꼴보기 싫은 넘이 몇 남았네) 근처 바로 갔다..

- 마무리는 발렌타인으로 깔끔하게 가자.
- 지랄..그 돈으로 애들 차비나 줘라...

물론 난 소심해서 입밖으로 꺼내지는 못한다.
우리는 긴바에 앉았다. 어김없이 별 이상한 철학들이 나온다.
영화판 얘기가 나온다. 영화 얘기가 나온다.
스트레이트로 연거푸 3잔이었나? 여튼 마셨다

속이 울렁거린다. 화장실로 비틀비틀 걸어가 모퉁이를 도는데
한 여인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잠시 바라봤다.
그 여인도 얼굴을 들어 나를 본다. 황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계속 세수를 했다 정신이 좀 맑아지는듯하다.
화장실에서 나와 아까 그 자리를 슬쩍 봤다.
테이블 위에는 기네스맥주 빈병이 3병가량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성. 그곳으로 갔다 다시 여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 좀 앉을께요.

말하고 내가 놀란다. 난 소심한데...술기운이 아직 남아있구나
하긴 세수 몇번에 사라질리가 없지...
그 여인 내가 앉던말던 관심도 없다. 그렇게 말없이 앉아있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일어나야지...

- 담배 하나만 피고 일어날께요..

왜 난 항상 안해도 될말을 할까?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낸다.

- 저도 하나만 주실래요?

같이 담배를 하나씩 물었다. 그 여인은 다시 맥주를 주문했다
2병...담배 한가치의 보상이 꽤 좋네...

- 인제 한병만 더 마시면 제 기록깨는거에요
- 일일이 세면서 마셨어요?

여인이 웃는다. 다행이다.
자신은 영국에서 왔다고 한다. 6년전에 유학을 갔단다.
이제 거기서 살거란다. 런던에 직장도 구했단다.
근데도 오늘은 죽고싶은 날이란다.
죽지마라 그랬다.

뜬금없이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
영화 만들고픈 사람이라 했다..

- 재밌네요..좋겠네요
- 뭐가요?
- 그냥요..
- 어쨋든 기록은 넘어섰네요..

2.
영동대교를 걷고있었다..함께
조금은 대화가 익숙해졌다.

- 내 얘기 영화로 만들면 사람들이 볼까요?
- 맥주 기록 깬거요?

살짝 웃는다.

- 헤어진 연인을 못잊는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 많이는 안볼꺼 같아요..
- 그렇죠?

다시 걷는다.

-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당신 당황스럽겠죠..
- 뛰어내리지 마세요...요즘 안그래도 머리가 너무 아파요
- 아까 아는사람이 생선초밥을 싸줬어요..
- 저 생선초밥 좋아해요..

그 여인이 들고있던 쇼핑백 안에는 잘 포장된 생선초밥 한팩이 있었다.
영동대교를 내려왔다. 내려와서도 걸었다.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서 밖에 앉았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갑자기 강하게 내렸다. 파라솔 덕분에 접이식 간이 테이블은 무사하다.
맥주에다가 초밥을 먹었다.

- 집이 어디에요?
- 런던이요.
- 여기서 런던까지 택시타고 갈꺼에요?
- 여긴 집 없어요.
- 부모님은요?
- 호주에요..

다시 맥주를 사왔다. 비는 더 강하게 내리고 있다.

비오는데 편의점앞에서 캔맥주에 초밥을 첨보는 여자랑 먹고있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 그럼 지금은 어디서 자요?
- 메리어트 호텔요
- 반포동에 있는거요?
- 해운대에 있는거요.
- -_- (이런 표정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표정을 짓고 싶었다)
- 여기는 서울인데요

오늘이 자기가 사랑했던 한 남자의 결혼식이라 했다.
2년전에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만났단다.
헤어지고 다시 영국에 갔다가 결혼식 때문에 왔단다.

- 그래서 자꾸 즉고싶다 그런거에요
- 네
- 제가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네요
- 근데 그쪽분 없었어도 안죽었을 거에요
- 왜요?
- 무서워서요

이번엔 내가 웃었다...그리고 참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눴다.
첫차타고 내려간단다. 날이 점점 밝아왔다. 비는 어느새 그쳤다.
택시를 잡아줬다.

- 영국에 오면 한번 보고 싶네요. 메일 보내세요
- 평생 한번이나 가볼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힘내세요. 조심해서 내려가시고...
- 오늘 고마워요..

내가 지을수 있는 최대한 밝은 웃음을 지었다.
성공했는지 그 여인도 웃는다.
그리고 택시는 떠나갔다

나랑 빈캔맥주 세캔이랑 3분에1정도 남은 생선초밥을 남기고...
이젠.....

좀 자야겠다..
[불비불명(不蜚不鳴)]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73lang
2006.07.22 13:38
이게 끝이 아닐꺼인디...우겔겔

다음편을 기대하마;;;
Profile
sandman
2006.07.22 20:22
kinoson님 작가구나..
저렇게 글을 맛있게 쓰고 이야기도.. ^^;
어찌 잘 해보시지요^^;
서로 느낌이 좋은 것 같은 데..^^;
아름답고 아픈 얘기군요...
자세한 대화들 더 듣고 싶네요...
속편 올려주삼...
73lang님은 뭔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듯
하하하~~
유럽국가들과 인접되어 있어...
hose0403
2006.07.22 21:47
속편 기대 할께요.~ 다음편은 아프리카인가 ;;;;
-_- (저도 이런 표정을 짓고......)

ㅎㅎ
Profile
crazypunk81
2006.09.01 01:23
크크크..어떻게든 술은 먹네요.ㅋ
이전
17 / 69
다음
게시판 설정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