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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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서둘러야 돼...-.-

ty6646
2008년 01월 11일 01시 00분 13초 1487 2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친하게 지내는 아줌마가 한분 계시다.
누가 질문하거나 맞장구를 쳐주면 그에 대해서 혼자서 30분은 떠들어 대신다^^
말도 많고 잘 웃고, 성격도 밝고, 나이와 몸매만 아니라면 10대 소녀라고 할 정도이다.

하루는 심하게 감기에 걸려오셨다.
난 경계를 해야했다. 왜냐하면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인지라
조심하지 않으면 아줌마의 감기가 내게 옮겨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일이 있고 아줌마가 맡은 일이 따로따로 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아줌마가 들어오셨다.
난 간단하게 인사만하고 내 일에 집중했다.
행여나 내게 말걸어 오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고개를 깊숙히 숙이고...^^

아줌마는 감기에 걸린 경위에 대해서, 밖에서의 영업에 관해서 등등
한참을 팍 쉬어버린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해 주시다가 아르바이트생인 20살짜리 여자애가 들어오더니
그 애에게 다시 감기에 걸린 경위와 밖에서의 영업에 관해서 등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치 재방송을 보고 또 보는 듯한 기분이지만 어쨌건 나로서는 다행이다.

최대한 아줌마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아줌마의 눈길밖으로 도망가야한다.
그래서 난 일에 속도를 붙였다. 평소면 1시간은 걸리는 일이지만
그날은 30분만에 끝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줌마는 20살짜리 여자애에게 다가가서
감기에 걸린 경위와 밖에서 영업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등을 귓속말까지 보태어 재탕삼탕했다.

나도 지겨운데 저 아이는 얼마나 지겨울까. 아니 무섭겠다..^^
아줌마의 재방송이 무서워졌다. 그때문에 잠시 감기의 공포를 잊어버렸다.
어쨌건 나는 저 20살짜리 여자애가 일을 마치기 전에 내가 먼저 마쳐야했다.
20살짜리가 일을 마치고 먼저 나가버리면 그땐 이 가게에 남은건 나하고 아줌마뿐...
그러면 아줌마는 다시 내게로 다가와서 어쩌면 귓속말까지 보태어
감기에 걸린 경위와 영업하다가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20살짜리 여자애의 얼굴에 걸린 공포스러운 썩소와 빨라지는 그녀의 손놀림이
마치 나랑 경쟁하는 듯 했다. 아줌마는 아예 일을 손에 놓고 혼자서 웃고,
혼자서 상대역 성대묘사까지 해가며 재연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의 재연도 무섭고, 감기도 무섭고, 20살짜리 여자애가
나보다 빨리 끝내는 것도 무서워서 나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을 했다.
내가 먼저 일을 끝냈을때의 만세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왔다.

일이 끝나면서 동시에 인사를 끝내고 밖으로 탈출하듯 나왔다.
쇼생크탈출의 한장면처럼 팔을 양옆으로 쫙 벌려 바깥 공기를
깊숙히 들이마시고나서 가게안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에어리안의 무리에 갇혀
엑기스가 빨리며 생매장되어가는 수색대의 모습처럼 20살짜리 여자애가 조금 안되보였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chonwoun
2008.01.11 20:45
그런 사람들 있죠... 그냥 속편하게 "닥쳐","닥쳐주세요" 할수 있으면 참 좋은 세상이 될텐데 말이죠.
Profile
sandman
2008.01.23 15:10
만약 그 아줌마가...
누구의 몸매와
누구의 얼굴과
누구의 머리카락과
누구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밤을 세워 같은 얘길 한다고 해도..
지겹지 않을 텐데..

아쉽지만.. 경제만 살리면 되듯이..
이쁘면 다 용서 된느 것도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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