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sadsong 2010.12.24 01:20:27

며칠 전, 다섯 살 조카 은우가 갑자기 피를 한웅큼 토하는 바람에 응급실에 입원을 했습니다.
내내 곁을 지키던 엄마(저에겐 형수입니다)를 잠시 집에 가 쉬게 하고
할머니(저에겐 엄마입니다)가 대신 간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삼촌입니다. 잠깐 들렀죠.

 

형수가 다시 오겠다던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조카는 자꾸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를 바라보며 벌써부터 목을 빼고 기다립니다.
정작 시침 분침도 제대로 볼 줄 모르면서 말이죠.

 

"지금 몇시지? 엄마 언제 오지? 엄마 빨리 오면 좋겠다."를 반복합니다.

 

할머니 : 은우는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어?

은우 : 은우는 엄마를 제일 사랑하니까.

 

웃기거나 귀엽습니다. 다섯 살이니까.

 

할머니 : 그래, 원래 사람들은 자기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 거야.

 

기다렸다는 듯 조카 은우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은우 : 그럼 아빠(저에겐 형입니다)는... 할머니를 제일 사랑해?

할머니 : 할머니가 아빠의 엄마니까.

은우 : 그럼 삼촌은 누구를 제일 사랑해?

삼촌 : 삼촌도 할머니지.

은우 : ...그럼... 할머니는 누구를 제일 사랑해?

할머니 : ......

은우 : 왕할머니?

할머니 : 그래 할머니의 엄마는 왕할머니니까. 근데 왕할머니는 돌아가셔서 안 계시잖아.

 

은우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머쓱한 듯 입을 엽니다.

 

은우 : 근데... 그래도... 땅을 파보면 거기에 있잖아.

 

아마도 제딴엔 '제일 사랑할 엄마'가 없는 할머니를 위로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표현이 좀 거칠긴 했지만... 그런 은우에게 엄마와 전 그저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아직 죽음이 무언지도 잘 모르는 은우의 왕할머니, 저의 외할머니. 엄마의 어머니.
다섯 살 조카의 말처럼, 외할머니가 차가운 땅속에 몸을 누이신지 오늘로써 1년이 되었습니다.

하늘 아래 엄마의 둘도 없는 현명한 벗이었다고
제가 그토록 눈물로 아끼고 사랑한  친구였다고
그것을 잃은 슬픔 제발 알아달라고
피 토하며 외칠 일이야 있겠습니까.


다만,

'엄마 잃은 엄마'의 심정을 좀 더 헤아렸어야 했는데...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계실 할머니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반발짝씩이라도 내디뎠어야 했는데...

 

엄마가 마음 놓고 수다를 떨 말벗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일년이 지난 이제야 깨달았을 뿐입니다.

결국 건강하지 못한 정신으로 어둡고 부끄럽게 산 것으로 기록될 또 한 번의 한 해가 쌓였을 뿐입니다.

 

 

꿈에서 만난 할머니는 저를 보며 눈물 짓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벌써

한 해가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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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장터 오늘은 일요일
해 뜨기 한참도 전 대야를 이고 향하는
할머니의 꿈 우리 건강한 꿈
빌고 또 비는 할머니의 꿈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 루시드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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