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 영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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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

venezia70
2003년 12월 31일 12시 54분 12초 13066
1. 시적 리얼리즘의 배경

1930년대에 프랑스의 두 영화 독점사였던 파테와 고몽의 해체는 소규모 독립 영화 제작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1935년 이후에는 전체 프랑스 영화의 90%를 소규모 독립 영화사에서 만들어졌는데, 이는 프랑스 영화 산업에 있어서 행운이었다. 독립 영화 제작자와 감독들은 이 기간에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었고 대형영화사의 배급망뿐만 아니라 그들의 스튜디오 와 기술까지도 이용할수 있어 프랑스 영화의 독자전인 미학을 활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독립 영화인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장 비고,마르셀 까르네, 줄리앙 뒤비비에, 장 르노와르 등을 포함하는 한 집단은 시적 리얼리즘 학파라는 이르으로 묶여진다. 할리우드 메이저들이 1차 대전후 국제 시장을 완전히 석권한 상황에서 이들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쇠퇘해가던 프랑스 영화의 국제적 명성을 되살렸다.

또한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은 인민 전선의 부상과 몰락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인민전선은 1936년에 권력을 쥐게 되는 좌익 연합 정당이었다. 낙관적 분위기 속에서 이 정당은 사회적 개혁의 발판으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경제적인 문제와 전쟁 위협으로 온전히 수행될 수 없었다. 이 정당은 1000일 동안 권력에 머물렀지만 출범 6개월 후에 이미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개혁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그대로 시적 리얼리즘의 영화에서 재현 되었다.장르노와르의 <랑주씨의 범죄(1935)><인생은 우링게 달려있다(1936)>등은 인민전선에 대한 초기 낙관론이 그려져 있으며 마르셀 까르네의 <안개 낀 부두(1938)><새벽(1939)>과 르노와르<게임의 규칙(1939)>등은 인민 전선의 쇠퇘와 전쟁의 불가피성에서 느끼는 비관적 인 경향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2. 시적 리얼리즘의 경향

시적 리얼리즘 영화는 미장센을 강조한다. 실내 장식이나 세팅 그리고 조명에는 치밀한 주의가 기울여졌지만 독일 표현 주의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다. 시적 리얼리즘은 다큐멘터리식의 사회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하나의 재창조되 리얼리즘이다.이러한 견지에서 이 리얼리즘은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하는 매우 양식화한 것이다. 예를들어 파리의 일부분이 스튜디오 내에서 재창조되는데, 이것은 거의 비현실적인 리얼리즘이다.

미장센을 양식화한 이 리얼리즘은 내러티브 내에서 시적 상징주의와 조화를 이룬다. 내러티브는 숙명론으로 가득차 있고 일반적으로 남성 주인공에게는 불우한 운명이 지어져 있다. 영화의 "디제시스"는 잘 짜여져서 주인공 분위기에서 파멸을 느낄수있다. 이것은 고통을 당하는 남성의 미장센이다. 세팅,몸짓,움직임,유무언의 의사소통 등은 모두가 파멸의 상징이다. 조명 효과도 마찬가지다. 측면 조명은 주인공의 얼굴에,부분 조명은 그가 자신을 발견하는 공간에서, 그에게 상징적인 가치를 갖는 대항물에는 하이라이트 조명이 사용된다. 특히 여기서 대상물들은 영화에서 그것들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주인공이 반응함으로서 그의 파멸 상태를 가늠하게 한다. 이 대상들은 영화 전체를 통해 영향을 주며 상당히 추상적인 상지으로 기능한다.

영화 과정의 모든 측면들이 잘 결합해 이러한 시적 리얼리즘의 분위기를 창조 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이 영화들이 공동 작업의 결과 였다는 점에 있다. 감독뿐만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도 있었고,무대 감독,조명 감독,영화 음악을 위한 작곡가도 있었다. 예를들어 마르셀 까르네는 그의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서준 시인 자끄 프레베르와 함께 일했으며 그의 무대 감독은 알렉산더 트로네르였고, 조셉 코스마는 그의 단골 작곡가였다...

3. 대표적 감독과 작품들

1) 장 르노와르
1894-1979. 아버지는 인상파 화가. 형은 배우인 예술가 집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도시적 문화와 전원의 자유로움
속에서 보냈다.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수학 과 철학을 공부했으며,1910년대 후반 채플린과 스트로하임의 영화를 보고 감독이 되기로 결심한다. 영화와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 시대의 화려한 개화에 선도적 역할을 했는데,프랑스 정신의 인간성과 예술적 기교를 전형화하는 주력했다.러시아에서 개발 된 몽타쥬 기법을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딥 포커스,소리와 시각을 일체 시키면서 영상의 풍부함을 확대 시켰다.<나나(1926)>를 최고작으로 꼽기도 하나 <암캐(1931)>에서 <게임의 규칙(1939)>까지 30년대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이야기가 되어진다. 1941년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5편의 작품을 연출했으나 평균작 수준이라 평가를 받았다.

2) 장 비고
1905년 파리 태생으로 복잡한 가정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아버지는 호전적인 무정부주의 운동가로 그의 나이 12살때 감옥에서 사망했고, 어머니는 발작으로 병원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영화 제작 단계에서 장 비고의 재정적 어려무을 가장 많이 도와주고,그의 모든 작품에서 촬영을 맡은 보리스 카우프만과 함계<니스에 관하여(1930)><다리(1931)><품행제로(1933)><라따랑뜨(1934)> 단 네작품을 만들고 29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개인적 자유에 초점을 맞춘 이들 영호는 시적 리얼리즘의 강렬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3) 마르셀 까르네
마르셀 까르네는 시인이며 시나리오 작가인 자끄 프레베르와 공동으로 걸작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함께 시적 리얼리즘의 전형을 완성하였는데,숙명적인 사장의 주제와 꽉짜인 구조,그리고 실제 현실 세계를 환기 시키는 상징적인 스튜디오 개조물들이 그들의 독특한 미학적 특징을 이르었다.그들이 만든 2편의 위대한 영화<안개 낀 부두(1938)><새벽(1939)>은 사회를 향한 어둡고 절망적인 그들의 시각을 일관성있게 보여 주고 있다.<새벽>은 노동자층의 권익을 위해 애쓰는 프랑소와즈가 같은 이름을 가진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겪는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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