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 영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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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1970~1979)

venezia70
2005년 06월 17일 16시 59분 34초 420151
1. 개요

70년대의 한국 영화계는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도 침체되고 암울한 시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TV의 전국적인 보급과 함께 유신 정국하에서의 가혹한 검열로 인한 표현의 제한은 한국 영화를 불황 속에 내던졌으며 영화의 질적하락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1972년 들어선 유신 정부는 73년2월16일, 제4차 영화법 개정을 시행한다. 영화사 등록 여건을 한층 엄격하게 규정하여 은연 중에 활동하던 개인 영화업자들의 움직임을 막아버렸으며, 1년에 4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하게 하는 의무 편수 조항을 적용했다. 물론 모든 영화는 유신 이념을 구현해야 했으며 초기 법령과 마찬가지로 20개 영화사는 독과점 형태로 영화 시장을 나뭐 먹기식으로 주물러 가며 다른 세력을 키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로 견제, 단합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외화 수입은 한국 영화 육성이라는 이유 하에 국산 영화 제작의 1/3을 넘지 않고 상영일수는 전체 상영일의 2/3을 넘지 않도록 규정하였다. 자연히 1년에 약 30편을 넘지 않는 외화는 희소가치 때문에 흥행은 보장되었고 외화 수입 쿼터를 싸고 계속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또한 영화의 검열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합작영화의 기준을 명시하여 위장 합작영화 방지와 그 밖에 배급 업무를 담당하는 ‘영화배급협회’를 설치 운영케 했다.
검열은 긴급 조치에 위배되는 것은 가차없이 잘라내었는데, 사전 대본 심의와 실사 심의가 공존했다. 이 때문에 사회적, 시대적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나타난 돌파구가 호스티스물 등이었다.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에 이은 호스티스물의 범람은 삶에 대한 냉소, 육체적인 자유 추구, 여성의 상품화라는 소비성 강한 사회 풍조가 크게 대두된 것이다.
우수 영화를 만들어 스크린 쿼터의 보상을 받는 제도는 60년대에 이어 문예영화를 양산하는 지지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는 사라지게 되었고 사회의식이나 작가의 비판은 당국의 강력한 통제하에 자취를 감추었다. ‘우수 영화는 국책 영화’ 라는 의식의 팽배로 대부분의 관객이 신파물, 호스티스물에만 시선을 돌리는 사이에, 여전히 ‘국난을 극복한 위인’을 다룬 영화나 독립 투사의 활약, 반공 영화, 계몽 영화들이 우수 영화로 지목되고 보상이 주어져 영화계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영화계는 산업화하지 못했고 소수의 영화 자산가를 만들어 내면서 영화감독들에게는 박탈감을 안기고 영화에는 질적인 퇴보를 가져왔던 것이다.

2. 유신 정권 하의 작품 경향

이 시대에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손쉽게 관객을 사로 잡을 수 있는 가벼운 내용의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60년대 말에 제작되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정소영의 <미워도 다시 한번(1968)>의 속편(1969-1971)들과 그 아류작들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류의 최루성 멜로 드라마들은 고정적인 여성 관객들을 확보하는 수확을 얻는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과연 당대의 리얼리티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 어렵다.
60년대 청춘영화의 계보 역시 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의 학창시절을 코믹하고 낭만적으로 그린 하이틴물 대체된다. 김응천의 <여고 졸업반(1975)>을 비롯하여 <고교 얄개(1976)>, <모모는 철부지(1979)> 등 수많은 하이틴 영화들이 만들어지지만, 이들 영화에서도 당대의 리얼리티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 영화의 또 하나의 경향은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자란 향락 소비문화의 희생자들인 ‘호스티스’와 ‘창녀’의 이야기들이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은 호스티스를 주인공으로 하였고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는 창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사회에서 불우하게 살아가던 일군의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였다. 특히 최인호의 소설을 영화화한 <별들의 고향>은 기념비적인 숫자의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사적 의미에서의 70년대를 열었다. 주인공 ‘경아’는 고도 성장의 그늘 아래서 부생(浮生)하던 많은 유흥업계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화들은 이후에도 계속 아류작들이 만들어져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에 희생된 여성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70년대에도 <별들의 고향(최인호 원작)>,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 원작)>를 비롯해 유현목의 <분례기(1971, 방영웅 원작)>, 최하원의 <독짓는 늙은이(1972, 황순원 원작)>, 김수용의 <토지(1973, 박경리 원작)> 등 많은 문예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이외에도 미국 UCLA에서 체계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하길종은 전위적인 작품 <화분>으로 당시의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하였다.
70년대 한국 영화계는 이들 작품들로 인해서 그나마 명맥을 이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말미암아 영화를 통해서 당대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내보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사회 의식이나 작가적인 비판정신은 사라지고 당대의 풍경을 가볍게 다루거나 제도권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소재나 내용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70년대 한국영화는 대중들로 하여금 불안하고 암담한 사회 상황에 대해서는 회피하게 하고 집단적인 마취상태에 빠져들게 한 셈이다.

3. 우울한 시대의 대표작들

1979년 김응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모모는 철부지>는 6-70년대 한국영화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는 청춘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당시 엄청난 흥행 성공을 했다. 대학생들이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는 기본 줄거리에 삼각관계로 인한 인물간의 갈등을 가미한, 지금 보기에는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진부한 이 영화의 내러티브가 당시 인기를 얻었던 이유은 무엇일까?
1979년이라는 시간대를 생각해 볼 때,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대학생은 흔치 않은 계층의 인물이다. 당시 20세 안팍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공장이나 회사에서 산업일꾼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는가 하면 깡패나 창녀가 되어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에게 대학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자 했던 심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주인공들 모두가 부유층에 속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삶이야 말로 이상적이며 완벽한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결국 당대에는 이런 영화를 통해서나마 고단한 현실을 잊고 장미빛 꿈을 꾸려는 관객들의 욕구와 그것을 만족시키려는 영화 제작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들이 붐을 일으키며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1974년 최인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은 자본주의의 휘황찬란함 뒤에서 이름없이 시들어가는 ‘호스티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70년대는 공업화, 산업화가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1차 산업에 종사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생업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고 이러한 때에 많은 시골 젊은이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노동자가 되었던 것은 일반적인 현실이었다. 여성들은 공장을 전전하다가 좀더 돈벌이가 나은 직업을 찾게 되는데, 그 일이라는 것이 바로 호스티스나 매춘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회적 여건 속에서 주인공 ‘경아’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인물의 삶이란 절망과 두려움 뿐이었다. <별들의 고향>은 겉으로는 휘황찬란한 모습을 보이는 우리 사회의 뒷골목 인생들을 조명하고 그녀들의 삶의 실상을 파헤쳤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하길종 감독의 <화분(1972)>은 당시의 관점으로 보나 오늘날의 관점으로보나 한국영화사상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다. 이효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는데, 사건의 의미들을 뚜렷하게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인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가히 새로운 형식이었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괴이한 분위기가 영화를 지배하고 있으며 인물들의 표정이나 화면까지도 모종의 음모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원작에서는 인물들의 애정관계를 방탕하게 보여주고 있는 반면, 영화는 이들의 애정관계를 지극히 단순화시킴으로서 비교적 절제있고 심도 깊은 효과를 얻어낸다. 이 작품은 당시 안일하게 영화를 제작하던 영화인들에게 상당한 자극을 주어 우리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대중들에게 공감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비판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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