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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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이상한 노래, 이상한 놀이

vincent
2002년 09월 24일 19시 20분 34초 6146 9
어릴 때 가을이 좋았던 이유는,
고무줄하기 정말 좋은 날씨가 이어졌기 때문...
지금도 그렇지만 운동신경이 너무 둔해 고무줄을 잘 하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인간관계에 신경을 써, 아이들은 주로 깍두기로 붙여줬는데...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깍두기가 있어, 너무 잘 해 누구든 자기 편으로 데려가고 싶어하는
그런 깍두기가 있는가하면, 너무 못해 아무도 데려가고 싶지 않지만 의리상 빼고 할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서로 공평하게 약점을 나눠갖자는 의미인.. 그런 깍두기가 있는데...
나는 당연히 후자였다.
언젠가 딴지일보에도 소개된 적이 있지만 고무줄 놀이 때 부르던 노래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의미가 아리송하거나 아이들의 고무줄 놀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곡들이 꽤 있다.

"월화수목금토일!!"처럼
심플하고 의미가 확실하긴 하지만, 왜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요일이름을 대야하는건지 아리송해지는 경우,

이의 변형으로 보이는 "월계 화계 수수 목단 금단 초단 일"처럼,
왜 "토단"이 아니라 "초단"이냐는 일부의 의혹을 사는 경우,

"월남마차 타고 가는 캔디 아가씨"처럼,
뜬금없이 '월남마차'나 '캔디 아가씨"라는 이국적인 풍물이 등장하는 경우,
(월남마차=>아마도 '씨클로'를 말하는 거겠지, 쩝...)

"일!!(이, 삼, 사...) 공주마마 납신다!!"처럼,
공주마마가 납셔서 뭐 어쩌라는건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또, "살랑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온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대요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를 한다
      간질간질간질 발가락이 간지러워 병원에 갔더니 무좀이래요
      엄마엄마 엄마엄마 나는 어떡해"처럼,
1절과 2절의 유기적 연관관계가 없고, 과연 '무좀'이라는 소재가 아이들 고무줄 놀이에
적당한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하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면서 폴짝폴짝 고무줄을 뛰어넘었으니)
"고무줄을 많이 하면 발가락에 무좀이 생기니 적당히 하라는 교훈을 담았다"는
억측스런 해석을 낳기도 했다.


황당한 노래의 백미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스 마요네스 케키는 맛있어
                                인도 인도 인도사이다 사이다 사이다 오 땡큐"라는 노래로,
별 연관 없어 보이는 단어들을 고르고 골라 절대로 의미 파악이 안되도록 만든
외계인의 암호문 같은 노래도 있는데,
'마요네스 케키'라는 상상만해도 느끼한 음식을 만들어내곤 맛있다고 하는 이 엽기적인
가사는 부를수록 속이 느글느글해진다. 고무줄을 하면서 불러야만 속을 진정시킬 수 있는
노래였지 않을까.

기억이 잘은 안나지만 "망가망가망가씨! 망가망가망가씨!"라는 주문같은 인트로를 넣은 후
시작하는 노래도 있는데, 열대과일 '망고'의 씨앗을 뜻하는건지.. 추측해본다.

고무줄 놀이 때 부른건 아니지만, 손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신데렐라'라는 노래도
이상한 여흥구와 마무리로 유명한데,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미움만 받았드래요
샤바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슬펐을까요
샤바샤바 아이샤바 천구백팔십이년."
'샤바샤바 아이샤바'는 '얄리얄리얄라셩 얄라리얄라' 못지않은 낯선 음운들의 조합이었다.
게다가 노래를 부른 해를 명시하면서 마무리로 하는게 신데렐라 이야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요즘 부르면 정말 어색할 듯.  "샤바샤바 아이샤바 이-천이-년")

고무줄과 손놀이 외에 여러 사람이 모이면 하는 '4박자게임'이란 것이 있는데
(요즘도 하는진 모르겠다)
가장 많이 했던 것이
"아이 앰 그라운드 자기 이름 대기!"로 시작하면서 갖가지 상표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삼아
"(쌍권총을 쏘듯이 하며) 뱅뱅!" "(손가락으로 나이키 표식을 그리며) 나이키!"
"(한 손의 검지와 중지를 모아 안대처럼 눈에 대었다 떼며) 캡틴 큐!"
"(샤워 타월로 등을 닦듯이 마임동작을 하며) 킹콩 샤워!"등을 외치며 소개를 한후
불리워진 사람이 자기 이름을 댄 후 다른 사람을 지명하는 식으로 쭈욱 돌아가는 놀인데,
"아이 앰 그라운드~"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될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킹콩 샤워"라는 상표가 있는지, 그 때나 지금이나 알 수 없다.

또다른 4박자게임으로 "누가 꿀떡을 먹었나 항아리에서"라는 게임이 있는데
다함께 "누가 꿀떡을 먹었나 항아리에서"를 외치며
'항아리에서 꿀떡을 먹은 사람이 대체 누군지'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후엔 "빈센트가 먹었지 항아리에서~"라고 누군가 하면, 빈센트가 받아서
"내가?" 라고 반문을 하면 모두 다 함께 범인은 너다!라고 지목하듯이 "그래 너!!"라고 외친다.
그러면, 당연히 지목받은 사람은 "난 아냐"라고 발뺌을 하는데,
그러면 또 다 같이 "그럼 누구?"라고 위협적인 질문을 던진다. 흡사 심문하는 형사들처럼.
그러면, 지목받은 사람은 "@@이가 먹었지 항아리에서"라고 다른 사람을 걸고 넘어진다.
이 게임은 얼마만큼 억양을 많이 꺾어가며 흡사 연극이라도 하듯 과장을 할 수 있는가, 가 관건인데
옆에서 게임을 안하고 지켜보는 사람은 닭살들이 많이 돋는다.
왜 꿀떡을 항아리에 넣어두는지, 꿀떡을 먹은 사람은 항아리안에 들어가서 먹은게 확실한지,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범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온갖 동물의 발바닥이름을 하나씩 걸고 '손바닥'을 내밀고 뒤집으면서 하는 "발바닥놀이"나
(하긴, 발바닥으로 이 게임을 하면 실감은 나겠지만, 정말 고난위도 게임이 될 것이다.
급하면 다들 "발따박"이라고 발음해서 걸려 맞는다)

"디비디비딥! 딥딥딥!"도 출처가 불분명하다.

또 "공공칠 빵!"은 왜 총 맞은 사람이 아니라 옆사람들이 양손을 번쩍 치쳐들면서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인지도 알 수 없고,

"3, 6, 9"게임은 왜 어깨를 붙이고 날개가 작아 날지 못하는 중닭처럼 퍼득대며 해야되는것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여간.... 의미야 어쨌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놀이들을 하며 깔깔대던 그 때가 그립다. ㅡㅡ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jelsomina
2002.09.24 19:32
샤바샤바 아이샤바 ,,, 좋은 음율인데요 ~ .. 그리고 깍두기의 의미도 새삼스럽네요..다 알구있던거지만
서로 약점을 나누어 갖자는 의미의 깍두기. 애들이 별걸 다 했네요. 어른보다 나아 보인다
Profile
hal9000
2002.09.24 21:21
글을 읽은 나는 왜 불현듯 '부루마블'.. '이스탄불'.. '아이템풀'.. 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르는지..
저도 질문) 뒷꿈치로 뱅그르 땅파서 하는 구슬게임'봄들기' ('오야'라는 단어도 생각나네)
집단 깽깽이 전술프로그램 '오징어이상'(일부지역 '오징어가이상')은 대체 무슨
뜻이죠? ;; (g)
vincent
글쓴이
2002.09.24 21:35
"돈까스"라는 놀이...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넣고(혹은 밟을만한 돌을 하나 던져놓고) 그것을 밟고 건너편으로 뛰며 "돈까스!"를 외친다.
다들 그렇게 해서 건너편으로 뛴 후, 서로의 발등을 밟을 때는 "까스!!"라고 외치며 밟습니다. 이걸 잘 피해야되는데...
돌을 밟고 갈 때는 또 "돈까스!"...
왜일까요.. 이 돈까스..까스..는.. (x)(x)(x)
videorental
2002.09.25 05:46
흠..글을 읽으니 몬가 말은 해야 될꺼 같은 기분이...쩝
다른 놀이보다...학교 끝나면 가방 던져놓기가 무섭게 아파트 단지 놀이터 옆 공터에 누가 모이라구 한것두 아닌데 다들 모여서 짬뽕..이라구 불리우는 야구변형경기를 한게 생각이 남니다..가끔..돈 좀 있거나..한참 유행에 엄마 졸라서 디지게 얻어맞거나해서 야구 방망이며 글러브 같은걸 하나 둘 들고 모이면..실제 야구와 같은 경기를 한적두 있엇습죠
지금도 의문인건...그당시 하드볼(실제 야구 경기에 사용 되는 공)...홍키공...경식..준경식..이라구 불리우던 수많은 변형 야구공들...도대체 누가 이름을 붙인걸까???....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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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ennssee
2002.09.25 10:05
(~)교복치마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무줄을 '만만세' 까지 올려가며 허공으로 발질을 해대던 기억, 중학교 이학년.:)
pakji
2002.09.26 13:22
아 옛 생각 많이 나는 글이네요....
정말 잼나게 읽었습니다...
전 어릴때 신발 숨기기 하면서 놀았는데....
신발을 숨기면 술래가 찾는건데....
그땐 열심히 해야겠다는 일념으루 신발을 숨겼는데 집에갈때까지 못찾아서(제가 숨기고, 숨긴곳을 까먹어서리....)
엄마한테 디지게 맞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어머니가 큰맘먹구 나이키를 사주셨었는데....
신발 잃어 버리구 담날부터 잡표(요즘은 보세 라고 하죠...)신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filmaker
2002.09.26 15:28
아! 생각하면 흐뭇한 기억이네요...
전 전봇대를 하나두고 술래를 피해 손으로 찍고 도망가는 놀이를 많이 한거 같은데 놀이 제목이 생각이 안 나네요...
기억나는 분 가르쳐 주셈!!!
그리고 읽다보니까 007빵은 왜 그런지 알겠다. 아무리 총을 쏴도 주인공은 안 죽고 주위의 사람만 죽으니까 007 영화는..... ㅋㅋㅋ
wanie
2002.09.28 17:18
다망구.. 진돌.. 시마차기..
Profile
sandman
2002.10.01 15:47
가벼운 지나칠 만한 이야기들을 추억으로 이끌어 내는 님의 힘 ^^;
한국 영화의 힘입니다.
(퍽~~~ 넘 오버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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