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카드' 제작일지16 '부산촬영'

yekam 2003.02.18 03:25:14
2003년 2월 18일 / 날씨 춥습니다 / 촬영 42회차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5박 6일의 널널함과 동시에 완벽에 가까운 스케쥴을 들고 갔습죠.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 했더랬습니다. 도미와 농어에 푹 빠져 살겠다는등. 경상도 가스나를 기필코 꼬시겠다 또는 해운대, 광안리 바닷가를 걸으며 추억에 빠져 보겠다는등... 야심찬 계획과 야무진 상상을 짊어지고 떠난 부산 촬영... 3박 7일 이라는 무시무시하고 비인간적인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저 역시 꿈에 그리던 완월동땅을 밟아 보려 했습니다만 꼰대의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에 휘말려 완월동은 커녕 숙소 바로뒤에 있는 해운대 홍등가 조차 구경 못했습니다. 

-촬영 첫날. 전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신 꼰대는 저녁까지 거나하게 한잔 걸치시고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평소 습관처럼 미리 해놓은 헌팅을 깡그리 무시하시고 생전 처음 보는 바닷가를 다시 헌팅 하셨습니다. 첫날은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았고 별로 어렵지도 않은 장면 이었기에 초저녁에 촬영을 마칠수 있었습니다. 휫바람을 불며 시원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오는 스텝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죠. 꼰대의 치밀하고 잔인한 계획의 시발점인걸 꺠닫지 못한 스텝들의 어리숙함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촬영 둘째날. 오후 늦게 잡힌 촬영으로 인해 C1을 들이부은 스텝들 대부분은 볼살과 이마에 눈이 감춰진 채  촬영에 임했고 6대의 차량을 박살 낸 뒤  아침햇살을 받으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날까지도 촬영은 별탈 없이 진행 되었습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스텝들은 룰루랄라 였죠. 그 모습을 고즈넉히 바라보던 꼰대의 모습에서 언듯 비치는 살의의 눈빛을 읽은건 저 뿐이었을까요? (아. 제길 '그것이 알고싶다'를 너무 많이 봤나?  왜 정진영씨 말투가 닮아 가는거지?)  

C1은 부산에서 한창 유행하는 소주 (C1)시원소주를 지칭 하는 말입니다. 참이슬 애호가인 저에겐 별로 였지만 많은 분들이 애음하시더군요.

-촬영 세째날. 실질적으로 제대로 잠을 잔 마지막날 이었습니다. 롯데호텔측의 친절하고 적극적인 도움 덕에 촬영은 나름대로 순조로웠습니다. 특히 프론트 설지영씨의 촬영견학은 많은 남자스텝들에게 큰 힘이 되었죠. 비록 호텔 로비에서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로 자동차 유리를 아작내고 새벽4시에 호텔에서 단잠을 자는 고객들에게 "개새꺄"를 연신 외쳐대며 무자비하게 총을 난사하는 동근이를 제외하면 별 탈없이 분량의 반도 못채운채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해가 뜹니다...

-촬영 네째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스텝들은 졸리운 눈을 비비며 나이트클럽으로 향했습니다. 이날부터 무박행진은 계속 되었습니다. 계속 촬영 했습니다. 밤이 되자 어제 못찍은 분량을 찍으러 또 호텔로비로 향했습니다. 계속 촬영 했습니다. 또 욕하고 총쏘고 거기다 이번엔 몽둥이 찜질 까지 했습니다. 그때 롯데 호텔 사장님이 빙긋이 웃으며 그 모습을 보십니다. 해가 또 뜹니다. 나이트 클럽으로 향했습니다.

-촬영 다섯째날. 나이트클럽 촬영 중간에 희소식을 접했습니다. 어체 촬영 현장을 '빙긋이 웃으시며' 보시던 롯데호텔 사장님이 '빙긋이 웃으시며' 다신 촬영을 하지 말라 셨답니다. 아... 이젠 잘수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습니다. 촬영 중간에 동근이와 정진영씨가 잠시 어딜 다녀옵니다. 잠시후 비보를 들고 네멋대로 그것을 알려주는 동근이와와 정진영씨가 돌아왔습니다. 하루 더 찍으랍니다. ㅠ.ㅠ 호텔로 향했습니다. 견딜만 했습니다. 까짓 촬영 하루이틀 합니까? 잠못잔건 견딜만 했지만 프론트 설지영씨는 비번이었습니다. ㅠ.ㅠ 남자스텝들의 더딘 발걸음이 느껴집니다. 허걱 어쩌지? 단 하루 촬영 허가를 받았는데 역시 다 찍지 못했습니다. 꼰대 고민에 빠집니다. 고소했습니다. 아주 고소했습니다. 차안에 들어가 잠시 고민하시던 꼰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와 스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서울가서 찍지 뭐" 순간 꼰대의 얼굴이 문희준처럼 보였습니다. 참고로 전 TV에서 문희준만 보면 재떨이를 집어 던집니다.

-촬영 여섯째날.  나이트클럽 마지막날 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 못찍었습니다. 호텔 로비도 나이트 클럽도.... 호텔이야 서울가서 찍으면 그만이지만.... 예정에 없는 일정을 하루 더 있어야 했습니다.

-촬영 일곱째날. 별로 많지 않은 분량인지라 일찍 끝냈습니다. 문제는 토요일 꼰대의 차를 몰고 부산에서 서울로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꼰대는 어디갔냐구요? 촬영 끝나자 마자 김해로 뜨셨습니다. 꼰대의 차를 몰고 4시에 부산을 출발 했습니다. 6시쯤 대구에 도착 했습니다. 꼰대에게 전화가 걸려 옵니다.

꼰대: 어디냐? 존만아.
나:    대구쯤 왔는데예..(일주일간 매일 150명의 부산의 보조출연과 뻐꾸기날린 후휴증입니더)
꼰대: 캬캬캬 난 집인데...
나:    캬~~ 벌써예?  지깁니더...
꼰대: 딴데 새지말고 부지런히 와라. 존만아.
나:    택도 없심더.걱정 마이소. 내일 촬영 아닌겨...(이가 갈립니다. 일주일간 죽어라 고생 시켜놓고 다음날 또 촬영 이라니..)

하늘과 땅 차이를 여실히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밤 한시가 되더군요. 그대로 와서 뻗고 6시에 일어나 촬영을 했습니다. 아무도 제 주변에 오질 않습니다.
네. 못씻었습니다.  
 
-이제는 끝이 좀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