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사기 : 절박했던 병신

대학로에서충무로까지 2020.02.28 14:09:30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100억짜리 상업영화

이병헌이 주인공이라고했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감독은 어느 영상에서 나를 발견했고,

나와 딱 맞는 배역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게 절대로 믿기지 않았다.

감독은 딜을 했다. 기분이 나쁘지만 잡고 싶었다. 오디션을 보러오라고 했고, 오디션 진행 명목으로 진행비를 요구했다. 이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당황해하는 나에게 그는 내가 순진하다고 했다. 그렇게 오래 해보고도 이유를 모르겠냐며.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나를 꾸짖었다. 1000만원 이였다. 작은 금액이 아니였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많은 배우들이 이렇게 기회를 얻었던 것 이였나 생각해보았다.

몇 일간은 고민을 했다. 허나 이럴 시간에 나에게 찾아온 기회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출을 알아봤지만, 내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500이 전부였다.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친절한 미소로 나를 얕잡아봤다.

주변에 많은 동료와 지인들을 생각해도,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나중에 보증금이라도 빼서 갚으면 된다. 게런티를 받으면 그대로 갚으면 된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넣었다.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엄마에게 내가 사는 이런 부당한 세상을 알릴 수 없었다. 어미의 가슴도 찢어짐을 알기에.

차사고가 났다고 했다. 신고 전에 합의를 봐야한다고 했다. 그것이 최선 이였다.

그게 가장 뾰족한 수였다 나에겐.. 어머니는 겨우겨우 메꿔 놓은 퇴직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셨다. 자세한 것을 말해주지 않으셨고, 난 자세하게 물을 수 없었다.

그냥 2시간을 망설이다. 감독이 알려준 계좌로 돈을 붙였다, 확인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메일로 대본이 왔다. 쪽 대본 이였다, 일단은 작품이 분위기만 체크하고 있으면 된다고..

다음 주에 전 대본을 보낼 테니 미팅 후 전체 리딩 날을 준비하자고 하였다.

다른 출연하는 선배들을 만나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 이였지만, 무언가 내가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배역을 따낸 것을 혹시 그들은 알려나, 부끄러운 생각들도 들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대본을 봤다. 점점 슬픈 감정은 사라지고 설레임이 가득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쉽지만은 않지만 열심히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케릭터를 설정해보고, 대본의 전체 내용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관련 영화들을 찾아보며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어서 전 대본을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 이였다. 벌써 나도 모르게 암기가 될 만큼 달달 매일 밤 그것들을 읽어나갔다. 주변에 몇몇 동료들에겐 내심 자랑 아닌 자랑을 시작했다. 그들은 부러워했고.

그 핑계로 난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감독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바쁘니 문자로 주고받자고.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배역이 작아지진 않을까. 음료를 들고 영화사를 찾아가 볼까.

그 앞을 서성이다 오기도하였다. 나는 너무 작고 비루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주말동안 아무 생각없이 광주를 다녀오자 마음먹었고, 핸드폰에 알림이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다시 돌아온 서울. 월요일. 감독의 핸드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카톡이나 문자도 응답이 없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속이 타기 시작했다.

그 주 금요일 나는 영화사를 찾아갔다. 문을 열려있지 않았다.

그 앞을 한참을 서성이는데, 나와 비슷한 모양세의 여자가 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말을 걸었다.. 눈빛만 마주쳤을 뿐인데,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너도 나도 똑같은 병신 이였다는 걸.. 절박했던 병신들..

카페에 앉아 모든 걸 이야기 한 후 여자는 울기 시작했다. 내가 울 틈은 우리사이에 없었다.

그날 나는 바로 경찰서를 향하였고 우리는 신고를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대포통장이였다. 여자에게 전화를 해 부탁했다. 함께 조서를 쓰러가는 날을 맞추자고.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라도 기대고 싶었다. 세상아무에게도 말 못 할 그 일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그 여자밖엔 내 마음을 비출 때가 없었다. 경찰서 앞에서 만난 그녀는 지금까지 눈물을 멈춘 적이 없는 듯 젖은 휴지를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조서를 쓰는 내내 그 여자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점점 짜증이 났다. 그 여자의 울음소리가.

경찰서 앞 그녀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무작정 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다리가 아파왔고, 문득 일주일 가까이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었단 생각이 들었다.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샀지만, 뜯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그렇게 해를 쳐다보며 걷다보니 한강이 보였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생각났다. 잘나가는 사람들. 배우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비루하게 걷고 있는 내가 생각이 났다.

한강 난간에 기대에 빵 봉지를 뜯고 우유를 뜯었다. 말라 있는 입안에 우유가 아닌 빵을 먼저 한입 베어 물었다. 단 내가 났다. 설탕과 밀가루의 퍽퍽함과 달콤함이 이빨과 혀끝에 닿았다.

내가 살아있는 존재임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늑골 밑에서 알싸한 것이 목젖까지 올라오더니 이내 숨을 편히 쉴 수 없었다. 애써 삼켜지지 않는 울음을 밀어 삼키니 울음을 눈물구멍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코끝에선 콧물이 맺혀있었다. 입안에 빵 한입은 그대로 뭉개져 목구멍을 넘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나의 울음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서울우유는 바닥으로 줄줄 흐르고 있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하얀 우유가 흙과 섞여 회색빛 반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햇빛에 정수리는 점점 뜨거워졌고. 눈물이 말라 얼굴이 바삭바삭 해질 쯤. 나는 멍하게 한강 다리 밑 일렁이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들에 소리가 점점 살아졌다. 나는 그것이 무서웠다. “어쩌면 나 지금 죽을지도 몰라.” 라고 내가 내 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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