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봤답니다. 소름!

eyethink 2001.08.02 11:05:45
우선 감사말씀부터 드리고 싶네요.
영활 보러 가는데 관계자분이라고 전화를 주셨더라구요.
혹시라도 극장 입구에서 헤맬까봐 그렇게 일일이 다 전화를 하셨나봐요.
나중에 image220한테 물어봤더니 그분이 오구리님이시라고...
감사합니다. ^^

영화 참 잘 봤어요.
특히 음산한 건물과 피부로 느껴질 듯한 공간 내부의 어둠이 참 좋더군요. 뭔가 덫에 걸린듯 하면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절망적인 느낌 같은 것들이 그 어둠 속에 참 잘 살아있다고 느꼈거든요. 또 인물 얼굴에서 깜빡깜빡하는 블랙컷 느낌도 참 좋았어요. 약간 많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요.

좀 아쉬웠던건 이야기의 중심축이 인물들에게로 좀 더 맞춰줬었더라면 하는 점입니다.
남자는 자신이 고아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든 싸움이든 뭐든 열심히 합니다. 그러다 첫번째 장애물을 만나지요. 남자는 장애물을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완벽하게.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았겠죠.
당연한듯 하지만 재미있는건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물불 안가리고 살았던 그가 결국, 자신의 타고난 운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는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오죠.
장진영 또한 마찬가집니다. 김명민이 구타를 시작했을 때, 자신의 반복되는 구제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한탄하듯 말하죠. '팔자 쎈 년!'이라고.
위험한 불장난으로 남의 소설을 훔쳐와도 결국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나 죽은 애인에게 집착하는 여자나 모두 어떻게 발버둥을 쳐봐도 도저히 자신의 삶 속에서 헤쳐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죠. 그들이 생각하는 귀신은 어쩌면 밑바닥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바둥거려도 나란 인간은 여기까지다. 이게 끝이다 생각하면......
근데.. 영화에서는 공간 자체를 너무 부각시켜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보여지는 인생의 한계, 절망감 같은 것들이 좀 더 강조되고, 귀신에 대한 설명들을 조금 만 더 모호하게 흘렸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구요.
제가 워낙 정리를 잘 못해요... 오히려 감상에 방해나 되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음... 끝으로, 옆관에서 쥬라기 공원 상영 하느라 그 효과음이 겹쳐져서 영화 감상하는데 좀 방해가 된 듯 하더군요. 극장 내부도 많이 밝았구요. 그래서 더더욱 아쉬웠지만. 암튼, 재밌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