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편의 비디오

vincent 2001.08.29 08:30:04
1. <스내치>
가이리치의 두 번째 양아치 영화인 <스내치>는 전작인 <록 스탁 & 투 스모킹 배럴즈>보다 양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전작이 '총 두 자루'와 '마약'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인물들을 얽어놓고 엎치락 뒤치락 재배치하는데서 재미를 줬다면, 이번엔 '82캐럿짜리 다이아몬드'와 '내기 권투'라는 만나기 힘든 것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인물들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느라, 영화가 사실 좀 힘겨워보인다.
의외의 보너스는... 그야말로 '브래드 피트'인데...
짚시로 나오는 그의 국적불명의 억양과 발음이 얼마나 웃기는지 이 땅에 사는 나로선 제대로 감지해낼 수 없지만... 여튼... 평소의 브래드 피트와 180도 다르다는 것만은 학실(!)하다.
누가 번역한건지 자막 때문에 연신 웃었는데 브래드 피트를 비롯한 짚시들의 대사를 충청도와 전라도를 넘나드는 요상한 사투리로 나열해놓은 자막은 이 비디오의 백미다.
상상해보라. 지저분한 브래드 피트가 멍청하게 고개를 외로 꼬고 정말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뭐라 하는데 밑에 자막으로 이런 말들이 지나간다. "우리 엄니는 뽀다구 나는 퐈랑을 좋아하쥐. 알간디?"
데뷔작보다 훨씬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더 낯 익은 배우들(브래드 피트 뿐 아니라 업 그레이드 된 브래드 피트, 베네치오 델 토로도 나온다. 허망하게 사라지지만)이 등장하고, 이야기도 더 꼬아놔서 그런지 정말 정신이 없다. 아예 다 모르는 얼굴이었으면 균등하게 시선을 줬을텐데...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동안 내내 낄낄거린 영화.

2. <웨딩 플래너>
매튜 매커너헤이는 군인이나 경찰보다는 확실히 이런 미끄덩거리는 역이 어울린다. 나로선 전혀 매력을 못느끼겠는 여배우 제니퍼 로페즈는 왜 이렇게 멋진 남자들과 잘 나오는건지. (<표적>에서도 조지 클루니와 공연하지 않았던가)
남의 결혼식은 정리(?)해주면서 정작 자기 결혼은 처리(?)하지 못하는 웨딩 플래너가 자기 고객과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는 너무 뻔하고 단순해서 김 빠지는데, 이런 김 빠지는 얘기들이 근사한 선남선녀들과 몇몇 재치 있는 대사들과 뽀사시한 그림에 담기는 미국 로맨틱 코미디의 그물에만 잡히면 왜 재미있어 지는 것인지...
아, 정말정말 연구대상이다.

3. <미션 투 마스>
막판, 인류가 화성에서 온거라는 비약(?)이 거슬리긴 하지만 용기있게 집어든 비디오가 의외로 재미 있었다. 정말 화성에 온 것이 아닐까, 정말 우주 정거장에서 찍은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정교한 미술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된 SF를 만들기 위한 '정신'도 '무기'도 갖추지 못하고 섯부르게 전장에 나가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얼마 전에 밝혀진 화성 사진에 찍힌 거대한 인간 얼굴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더 재미 있었을 영화.

4. 해롤드 래미스의 영화들
<7가지 유혹>을 보는 김에 아직 못봤던 <애널라이즈 디스>도 보고, 내친 김에 <멀티 플리시티>, <사랑의 블랙홀>도 다시 봤다.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힘이라면 해롤드 래미스는 그에 관한한 정말 천재적이다. <7가지 유혹>이나 <멀티 플리시티>, <사랑의 블랙홀>이 누구나 현실에서 한 번 꿈 꿔봤음직한 "꿈"에 착안한 환타지라면, <애널라이즈 디스>는 조금 특별하다.모든 웃음이 두 사람의 직업(?)과 관계, 그리고 그 두 배우의 아우라에서 터져나오는 이 영화는 '뒤트는 재미'가 무엇인지 교과서처럼 가르쳐준다. 그리고, 정말... 코미디는 어렵다는 새삼스런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