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호장룡]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가 오래 남았던 영화...

warmforest 2003.09.02 02:11:58
영화 [와호장룡]을 통해 본 “정상에 오른 사람의 책임”

‘와호장룡’은 “영웅과 전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라는 뜻을 가진 고대 중국인들의 속담이라고 합니다. 영화 안에서 이 메시지는 ‘영웅’이라기보다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른’이 부재한 시대, ‘어른’의 모양은 있으되 ‘어른’의 능력은 찾기 힘든 이 시대에게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깊은 침묵과 오랜 호흡으로 말해주는 이 영화는 마치 한편의 정갈한 ‘클래식’을 듣는 듯 했습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 이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사람, 그이는 이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오르는 과정에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남은 것이 냉혹함과 무자비함이었는지, 긍휼과 사랑이었는지에 따라 정상에 오른 후의 내리막길이 회한의 길일지 감사의 길일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정상에 오른 자는 내려올 때, 이제 그 길을 오르는 사람에게 바른 길을 안내 해 줄 일입니다. 길 내려오는 즐거움은 바로 거기에 있으므로.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영화는 중요한 한가지 가르침을 전합니다.
‘해야 할 것은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 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명제는 영화를 통해 내내 반복됩니다. “리무바이”(주윤발)와 “용”의 대결에서 초조함과 다급함에 쫒기는 “용”의 몸놀림에 비해 거의 움직임이 없다가도 결정적인 한번의 몸짓에 상대를 제압하는 “리무바이”의 움직임은 가장 경제적인 움직임입니다. 허튼 호흡, 허튼 손짓, 허튼 발놀림 하나 없이, 꼭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쓰고도 상대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남기는 것이 진정한 실력자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고의 자리에 이르려고 해도 ‘독’을 품고 있는 자는 결코 그 자리에 이를 수 없음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르게 인도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힘’의 위력을 맛보면서 은밀하게 자신 안에 키워내는 ‘힘’을 향한 갈망은 또 다른 독이 되어 자기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저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에만 집착하는 아이는 그 최고의 자리에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 없이, 목표를 이루는 것 자체에만 몰두함으로써 정상에 오르는 길에 핀 꽃도 돌아볼 겨를이 없고 만나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독’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막함 중에 울려퍼지는 북소리와 참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주윤발의 좋은 연기 그리고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영화 “와호장룡”,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든 지금 다시 보아도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