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정혜>

zhixun1 2005.03.23 10:01:11
어떤 이는 발견이 아니라 하고 어떤이는 착각이라 하는 분분한 의견들을 접한 후, <여자,정혜>를 봤다.
이 영화가 발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착각은 아닌 것 같다.
이 작품은 상처받은 여자의 내면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답답하게까지도 할 수 있는 그런 여자들도 잘 표현 하고 있다고 본다.

처음에 정혜는 왜 저렇게 말이 없고 주변을 겉돌고 있을까?..생각했다. 애인도 한 번 없었나?..생각했다.
알고보니 정혜는 결혼의 경험이 있지만 신혼여행가서 남편이 "남자랑 처음 잤을때 어땠어?"라는 질문에, "아팠어." 라고 대답을 하고는, 잠들어 버린 남편을 두고 짐을 싸서 혼자 친정으로 돌아와 버린다. 정혜가 참 이해할 수 없는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혜의 그런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너무나 공감이 갔다.

정혜는 남자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내면 깊은 곳에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지독한 유교의식이 지배하고 정혜처럼 내성적인 여자에게는 그런 두려움은 클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상처를 받지 않고도 그런 두려움은 내재하기 마련인데, 여리고 내성적인 어린 소녀에게 고모부의 강간은 평생의 상처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다지 관련없는 얘기같지만, 상당히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얘기를 한 가지 하고 싶다. 대학시절, 여성학 강의를 들었는데, 여성과 남성의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해서 공부할때 들은, 한 남학생의 진솔한 경험담이다.
그 남학생이 고등학교 때 길을 가다가 교복을 입고 가는 여고생들의 엉덩이가 하도 탐스러워 그 중 한 명의 엉덩이를 장난으로 한 번 툭!! 치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분명히 엉덩이만 한 번 손으로 만진것 뿐 아무짓도 안했는데, 그 여학생이 갑자기 땅바닥에 털썩!! 쪼그리고 주저앉더니 세상을 모두 잃은 듯 대성 통곡을 하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도망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자신은 도망을 치면서도 그 여학생이 그렇게 까지 울 이유가 없는데 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여성학 교수님의 말씀이, 남성은 자신이 한 행동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여성에게 아무런 가해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은 느낌과 감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남성의 그런 행동이나 제스쳐만으로도 충분히 모욕감을 느끼고 순결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여성은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는 것이다.

정혜의 상처는 더 깊고 아플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고 하지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때문에, 정혜는 속으로 상처를 삭이느라 겉은 잔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속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감독이 핸드핼드를 고집한 것은 그런 정혜의 흔들리는 내면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거세게 때로는 잔잔하게 항상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고 자신의 틀을 벗어나고 싶지만 상처가 너무커서 어쩔줄 모르는 가련한 한 여자를 그린 것이다.

어떤 이는 영화가 꼭, 주인공의 갈등을 해결하거나 혹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후 결말을 맺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는것 같다. 하지만 <여자,정혜>와 같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여자,정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너무 많은 정형화된 얘기들 보다 <여자,정혜>에서 보여주는 사실만으로도 정혜와 같은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들의 존재에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혜와 같은 이들에게는 동지감을 느끼게 해줄것이다.

각설하고, <여자,정혜>는 상처받은 이의 마음을 참 잘 표현한 영화이다. "누구의 영화와 비슷하다.." 그런 생각을 하지말고 이 영화만의 표현상의 필요성을 생각하며 본다면,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표현의 기법은 누구한사람의 특허권이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