血의 淚 Blood Rain

pearljam75 2005.05.12 23:48:26
시나리오를 읽다가 중간에 덮었다.

이런 영화는 직접 극장에서 확인하는 재미를 놓치면 안되니까.

그런데 이런 제기럴, 어제 미팅이 있어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누군가에게 들었다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나훈아(가명)가 범인이다!”

내,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김을 빼버리다니.
김빠진 김에 얼렁 영화를 보러갔다.

사실 범인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요즘은 “왜?”가 중요한 법이지.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를 떠올렸다.
피와 살이 무지막지하게 튀는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들 지은 죄는 모르면서 다섯 번째 발고자의 피를 보려는 섬사람들.
그들이 휘두르는 낫에 흐르는 피로 사람들은 죄를 씻어보려 하지만
죄의식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원규, 죄의식의 연좌제쯤? 혹은 원죄?
그 섬에 있는 누구하나 죄의식의 그물망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관객인 나에게도 무척 촘촘하게 느껴진 걸로 봐서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걸 가지고 있나보다.

탁! 잘려나가는 혹은 대롱대롱 매달린 채 피를 뿜어대는 생닭 대가리- 로봇 닭이 아니라면,
닭에 관한 한, <혈의 누>는 치킨 스너프 필름이다.- 사람의 것 대신 뿌려지는 게 분명한 닭 피,
사지를 찢는 거열
(한 번도 극장에서 눈을 가린 적이 없었는데 나는 왠지 그 장면을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곱창을 사다가 작업했다는 얘기를 스탶에게 들어서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눈 감고 보니 역시 상상력이 제일 잔인한 씬을 연출한다.)

우물에서 솟아나는 핏물, 하늘에서 뿌려지는 피비.
연속적으로 망막을 장악하는 이 붉은 이미지들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즐기며 보았던 <킬빌>이나 <올드보이>같은 잔혹함과는
무척 다르다고 생각되었는데
같은 극영화이지만 미술적으로든 뭐든 간에 ‘날것rare’의, 덜 가공된 느낌 때문이지 않았나싶다.
아님,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이렇게 죄의식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탓일 수도 있고.


와! 난 최영환 촬영감독님의 팬이 되었다! 조명은 어떻고!
90회차 이상 고생했을 얼굴도 모르는 의상팀, 미술팀을 포함한,
사극이라 사이다 한 캔 협찬도 못 받고 산속과 섬에서 굴렀던 모든 스탶들과
수많은 배우들에게 깔깔한 질감과 깊이감있는 화면 보게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난 정말 착한 관객이다.

스포일러 한 토막!
멀미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다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