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초콜릿 공장

pearljam75 2005.09.18 00:15:28
찰리와초콜릿공장.jpg

찰리와팀버튼2.jpg

단테의 <신곡>... 영화 <세븐>의 브래드 피트처럼 요약본으로도 안 읽었다. 도전은 한번 해봤지만...


1. 탐식 Gluttony
초콜릿강에서 세례 받을 일 있나? 이 비만소년, 다섯 아이들 중에서 첫 번째로 ‘탐식’에 대한 댓가를 치룬다.
절제할 줄 모르는 음식에 대한 탐욕. <세븐>에서 스파게티가 식도까지 차올라 죽은 첫 번째 희생자처럼 가련하다.
(‘탐주’가 죄악으로 규정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영화가 <찰리와 소주 공장>이었다면 나 역시 초대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주를 열라게 마시고 소주 뚜껑 같은 곳에 붙어있는 황금티켓을 발견, 그 공장에 초대되는 순간 ‘탐주’라는 죄명으로 댓가를 치룰 것이다. 소주의 강물이 흐르는데... 내가 정신못차리고 ‘첨벙’ 빠져버리는거지.)

2. 시기 Envy
‘승부욕’은 교만과 시기 중간쯤 있는 마음 같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한다.
블루베리가 된 이 아이는 승부욕 그 자체이다.
남을 이기지 못하는 자를 패배자라 단언하는 이 아이, 푸르러진다. 얘네 엄마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어린이에게 지나친 승부욕을 키워주지 말아야 만사가 편할것이다.

3. 탐욕 Greed
불타는 소유욕의 소유자. 이 아이가 불량호두라는 걸 알아차린 다람쥐들은 가차 없이 쓰레기 통로로 아이를 밀어넣는다. ‘훈련받은 다람쥐’들의 정교하고 기품 있는 노동력에 감동받았다. 그 기막힌 상상력이란! 근데, 윌리 웡카가 말못하는 다람쥐들을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니었겠지?
이 아이의 소유욕이 끝없이 충족될 수 있는 근원인 아이의 아버지 땅콩공장 사장은 다른 세 어린이 죄인의 부모보다 더 고달픈 죄값을 치룬다. 부자부모가 그 자녀에게 탐욕을 가르치지 않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

4. 교만 Pride
R. 스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장엄하게 흐르며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어떤 인류가 등장하는 그 장면에서는 윌리 웡카 초콜렛이 버젓이 서있다. 초콜릿 공장 초대장인 황금티켓도 해킹으로 얻었다지? 그렇게 잘난 척을 해대니 그 꼴로 귀가하는거다. 쯧쯧...


초콜릿 공장 사장 윌리 웡카가 어린이 다섯을 초대하면서 보호자 1인을 대동하라고 한 것은 그 부모들에게 책임을 물기위해서다. 불량어린이들에 대한 하자보수책임말이다.
애가 미련하게 먹는데 목숨을 건다거나, 남한테 지는 건 참지 못하고 1등에 집착한다거나, 뭐든 멋지고 좋은 건 갖고 싶어서 부모에게 사달라고 지랄을 한다거나, 세상만사가 다 자기 의지와 능력대로 될 거라고 믿고 까부는 자난척하는 어린이는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윌리 웡카는 생각하는거다. 그러면서도 그는 parents라는 말 자체를 입에 담지 못하고 부모라는 인간들은 자식을 억압하고 상상력을 짓밟는 존재라고 가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찰리에게 쉽게 말해버린다. 그러다가 결론은... 이게 웬 스필버그 감독인가 싶지만 남자들은 아들이 태어나면 그렇게 변하나보다. <빅 피쉬>부터 팀 버튼 애 아빠 티를 허벌 냈는데 이번에도 그러하다.

이 영화의 원작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여기 나오는 막강한 상상력이 원작의 힘인지 오로지 팀 버튼의 연출력인지 <빅 피쉬>에서부터 팀 버튼과 작업한 작가 존 어거스트의 능력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초콜릿을 위해 스위스로 떠날테야!”라며 집나가는 소년 윌리 웡카의 의미심장한 얼굴에 오버랩 되는 만국기가 윌리 웡카의 모험이 아닌 만국기 박람회였다라는거나 젖소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휘핑크림과 날아다니는 투명 엘리베이터라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이었다.

팀 버튼 영화의 미술과 상상력은 언제나 일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나리오로 마케팅비용 빼고 순제작비 1500억원 모아서 영화 만들면 ‘팀 버튼‘같은 고유 브랜드와 장르가 생겨나는 걸까? 헐리우드의 막강한 자본력이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조카들을 데리고 영화를 봤는데 말 안 듣고 떼 쓸때마다 다람쥐를 상기시키며 협박하면서 우려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