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이기에 감동을 주는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Myn 2014.03.05 03: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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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은 물론 분장상까지 수상한 영화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영화가 남우 주조연상을 모두 타는 건 꽤나 의미 있는 이야기다. 그만큼 론 우드루프 역의 매튜 맥커너히와 레이언 역의 자레드 레토의 연기가 빛을 발한 영화라는 뜻도 된다.

맥커너히와 레토는 에이즈 환자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를 엄청나게 감량했다. 난 몸무게 감량하면 떠오르는 배우가 둘이 있다. 크리스챤 베일과 김명민이 그들인데 베일과 김명민 모두 메소드 연기에 능한 배우다. 그렇담 맥커너히와 레토 역시 메소드 연기에 능한 배우들이냐는 비약을 할 수 있는데 이건 이제 비약이 아닌 사실이 되었다. 그들이 아카데미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수상만이 능사가 아닌 극 중에서 역시 그들은 이미 매튜 맥커너히와 자레드 레토가 아닌 론 우드루프와 레이언이었다.

사실 난 영화를 보는 내내 레이언, 아니 자레드 레토에게 실망을 했다. 조연상을 받은 배우치고는 비중이 작다는 것에서 오는 실망감이었다. 허나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난 조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요즈음 영화나 드라마는 주연을 능가하는 조연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내가 바로 그것에 물들어 조연의 참된 의미를 잊었다. 레토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였다. 레이언은 말 그대로 조연 그 자체였다. 이야기가 원활히 흘러가게 해줄 뿐만 아닌 자신조차 충분히 빛나는 그런 조연이 바로 레이언이었다. 사소한 데서부터 나오는 연기가 바로 레이언이었다. 론 우드루프 역시 소화하기 힘든 배역이다. 하지만 난 레이언이 좀 더 소화하기 힘든 배역이라 생각한다. 허나 레토는 성공적으로 배역을 소화했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여성관객의 탄식을 일으키는 다리 또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그는 레토가 아닌 레이언이었음을 반증한다.

이 영화는 실화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우드루프는 로데오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극 중에선 남성미를 강조하기 위해 로데오를 즐기는 모습이 추가되었고, 실제 우드루프는 딸이 있었음에도 극 중에선 딸은커녕 부인도 없이 홀로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 딸 하나 있는 에이즈 걸린 전기 기계공보단 도박과 마약, 매춘을 일삼다 에이즈가 걸린 남자가 더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가.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살이 잘 붙은 영화다. 뼈대가 아무리 좋아도 살이 엉성히 붙으면 영화는 재미가 없어지는데, 이 영화는 살이 없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연출함으로써 살이 잘 붙게 된 그런 영화다. 또한 그러한 살 중 하나인 자극적인 장면은 오히려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느껴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개인적으로 뼈대가 좋은데 살이 잘 붙지 않은 영화는 <더 퍼지> 등이 있다)

그렇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단순한 에이즈 환자의 투병기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우드루프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남은 생을 정리하는 그런 뻔한 투병기를 다룬 영화였으면 이 영화는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단순한 에이즈 환자의 투병기가 아닌 한 사람, 혹은 (에이즈가 걸리지 않은)대다수 사람들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어바웃타임>과 일맥상통한다 생각한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는 전적으로 죽기 직전까지의 인생을 다룬 영화다. 론 우드루프는 예기치 못하게 30일이란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여기서 문득 든 생각은 내가 30일밖에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할까란 생각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회사를 그만둔다. 여행을 떠난다 등의 30일 후 죽는 걸 가정한 일정을 짜곤 한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우드루프는 자신은 죽지 않는다 말하며 에이즈를 이겨낼 해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우린 다소 순응적으로 사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인생은 정해져 있는 것과 만들어가는 것,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는 절대적으로 자기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 말한다. 또한 시한부의 삶 내내 하루하루가 소중함을 강조한다. 우드루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끔은 살려고 애쓰다가 정작 삶을 누릴 시간이 없는 거 같아.”라고. <어바웃타임>과 비슷하지 않은가? 완전히 다른 내용과 다른 이미지의 영화에서 같은 느낌을 받다니 참 아이러니한 기분이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영화 내내 이명을 동반한다. 삐-소리를 통해 우드루프의 두통을 표현한 것인데 이명은 꽤나 효과적으로 우드루프의 고통을 나타낸다. 흐릿한 시야, 쓰러지는 인물에 곁들여 이명까지 들리니 관객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고통을 동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에이즈에 걸린 적이 없기에 에이즈에 걸리면 어떤 느낌인지(물론 알고 싶진 않지만) 전혀 알 방법이 없지만 이러한 간단한 시각, 청각적인 효과만으로도 에이즈 환자가 어떻게 아픈지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에이즈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들 또한 꽤나 적나라하게 표현돼있다. 그러므로 우린 좀 더 깊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는 에이즈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동성애자에 관해서도 다루게 된다. 솔직히 아직 난 그런 장면들에 대해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그만큼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잘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우드루프 역시 나와 같은, 아니면 그보다 더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영화 내부에서 변화하는 과정이 어찌 보면 이 영화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분명 에이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우리들의 이야기 같은 신기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