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시작점까지 기어올라온 기분입니다.

파레토 2017.05.14 20:59:28

안녕하세요. 다음주 수요일에 단편영화 촬영을 앞둔 예비 영화인입니다.

오늘도 일을 끝내고 책상에 앉아서 영화 준비를 하다가 그냥 갑자기 문득 감정이 복받쳐와서 글을 적어봅니다.

 

참..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솔직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굳이 시작을 정해본다면, 좋아하는 영화에 당당하게 바이센테니얼맨과 가타카를 쓰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엄마가 기뻐하는게 좋아서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던 학생, 그리고 자연스럽게 명문대에 들어가 사촌 형들이 다닌다는 회사에 취직하는게 꿈이었던 학생. 네, 제 시작은 엄청 진부하더라구요.

중학교 시절 몇 번의 꿈이 있었지만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내 꿈들을 지탱해줄만큼 우리집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도, 그리고 강하게 보이기만 하는 우리 엄마가 사실은 엄청 아프고 눈물도 많이 흘린다는걸 생각하면 나는 그냥 공부만하는게 맞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꿈을 지나보냈습니다.

시인, 소설가, 디자이너, 작곡가들을 거쳐 고1때 찾아온 영화감독.

굳이 계기를 찾자면 고1 여름방학 때 원어민 교사와 영어캠프에서 찍었던 영어 영화가 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저는 입학 후 1학년 2학기 때까지 반에서 작은 따돌림은 당했어서 아마 지금 찾아보면 되게 자신감없고 찌질하게 찍혔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역시 이런 모습이 있긴하지만요.

그 당시 그냥, 엄청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영어로 된 시나리오 외우는게 힘들었지만, 카메라를 켜놓고 연기를 한다는게, 카메라를 잡고 친구를 찍는다는게, 다같이 보여 어떤 컷을 쓸지말지 이야기를 하는게, 편집하는게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내놓고 다같이 영화를 본다는게, 그냥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전 사실 이전의 꿈처럼 그냥 사라져버릴 마음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전 살이 20kg 가까이 빠졌던 고3 시절,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가르침을 받았던 대학교, 지금의 내 성격을 만들어 준 주방생활을 거치면서도 그 꿈은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시나리오 쓰는 법을 몰라 시놉시스로, 소설로 적어보기도 하고, 강의가 끝나고 스쿠터를 타고 혼자 영화관에 가서 4편을 한꺼번에 보기도하고, 전 알게모르게 이 꿈을 소중하게 간직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2015년 겨울, 그 꿈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영화공부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게 그 때였습니다.

'영화공부'라곤 하지만 그 땐 그냥 많이 보면 되는줄 알았습니다.

그냥 보고, 다시 보고, 영화 틀어놓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잠들어서 못본거 마저보고, 북적이는 버스 안에서는 귀에 이어폰만 꽂아서 소리만 듣기도 하고, 정말 미련하게 보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KOCW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하고, 시나리오를 쓰다가 몇 번 갈아엎고 고치고 하다가, 바로 다음주에 촬영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지만 사실 배우는 한 명에 제가 나머지 모든 파트를 맡아서 하지만요.;; (ㅋㅋ)

 

햇수로는 8년, 기간으로는 7년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제가 영화적인 재능은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아 나갔습니다.

대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기에 맡게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요리할 때도 그랬으니까요.

쓰다보니 두서도 없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글이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ㅋㅋ)

촬영준비란게 혼자하다보니 정말 뭘 해야할지 몰랐는데 지금 이 순간도 뭘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3월부터 준비한다고 영화를 거의 못봤다는게 너무 아쉽습니다.

촬영이 끝나면 가타카를 다시보고 싶습니다.

얼른 시작점까지 치고 올라가, 되돌아갈 힘도 남기지않을만큼 출발해보고 싶습니다.

그냥 많은 선배님들께 이제 겨우 시작할 힘을 얻은 후배가 남기는 말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