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죽음의 미스테리

sandman 2001.07.07 04:40:00
먼지가 소복히 쌓인 하드 디스크 (ㅎㅎㅎ)에서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이순신 장군....
전 세계 장수중 유일하게 패전을 기록하지 않은 유일한 장군..
일본의 역사상 많은 해군 제독들이 존경을 표한....

(갑자기 왜 눈물이 찡하지요?
우린 이렇게 대단한 조상과 역사와
세계적으로 한글이라는 독특한 글도 있고...
누가 제게 "넌 지독한 제국주의 사고를 가졌다라고 하던데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 뉴스가 일본 교과서
한국역사 왜곡에 대한 것인데
지금껏 제가 올린 대부분의 것들이
일본인들의 추악한 잔행을 덮는
정치인들에 대한 한탄의 느낌의 글이었는 데..
JP는 독도를 폭파해서 없애려는 시도를
하려고 했던 것 아시나요?
정말 웃기는 정치인들입니다.
영화만이 국민들의 의식을 개조 할수
있는 데...
이데올로기의 복화술..
제가 영화를 이야기 할때 제일 즐겨 쓰는 단어지요.)


그러나 당시 임진왜란, 조선시대
당파싸움으로 인해서 숱한 전공으로
이미 영웅이 되어 있던
이순신 장군(이하 장군 호칭 생략합니다 ^^;)은
'역적에 버금가는 네 가지 죄목'으로 체포 되었습니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했고,
죽기 일보 직전 일부 신하들의 만류와 상소로
죄수의 신분으로 백의 종군하기 위해 다시 남해로 내려 갑니다.
(전 우리나레에서 젤로 웃긴 시위의 유형중 하나가
준법투쟁 입니다.
그 준법 투쟁을 막으려고 전경이 투입되는 게..
참나..
법을 지키는 데 그 법을 지키지 말라고
정부에서 공권력 투입이 말이 됩니까?
그럼 법을 바꿔야지 않습니까?)

다시 우리 장군님 얘기...
당시 순신 형님께선 고문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가는 길에 어머니의 죽음까지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대신 삼군 수군통제사에 있던 원균이 대패하고 죽자,
다시 삼군 수군 통제사의 자리에 오릅니다.

남은 배는 12척.
그 전력으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다음,
그 이듬해 후퇴하는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25척의 전선으로
마지막 전투가 되었던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적의 유탄에 맞아 숨을 거둡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이 죽음을 놓고
이순신 스스로 계획적으로 택한 죽음이라는 해석과
'죽음을 위장한 은둔' 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의문이 드는 걸까요?

"나의 죽음을 적에게 말하지마라..."
이건 영화 제목입니다.
이 글 읽고 난 후엔 수많은 느낌으로 다가 오시길...

그 말이...
"나의 죽음을 조선 조정에 알리지 마라..."

?

다시 당시 상황..
그는 이미 '역적에 해당하는 네 가지 죄목'의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차 전쟁
(임진 왜란)이 끝나자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조정의 움직임을 보아서,
2차전쟁(정유재란)이 끝나면 틀림없이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이라는 점을 능히 알 수 있었겠죠?

토사구팽...

이런 사례는 이미 의병장 김덕령의 경우에도 나타난 바 있는데,
그는 조정의 무고로 모진 고문 끝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순신은 말단 무관으로 뚜렷한 당파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평소 그를 아끼고 왜란에 공이 컸던
동인(파)의 영수(대장? ^^;)
유성룡조차(유일한 조정의 이순신 지지자)
그가 죽기 한 달전에
영의정 자리에서 쫒겨나 벌을 기다리는 입장에 처해있다는 것은
이순신 스스로 자신의 앞길을 훤히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죠.

그의 직속 부하였으며 후에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는
유형(柳珩)은 후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이 평소 마음 속을 보이며 말하기를
"옛부터 만약 자신의 전공을 인정 받으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면 대개는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적이 물러나는 그 날에 죽음으로써 후환을 없애도록 하겠다."
고 했다. 이는 원균이 장군의 전공을 시샘하여 왕에게 거짓보고를 올리고 헐뜯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 전쟁 영웅 대접을 받은 선무 일등공신으로는
이순신과 권율과 함께 원균, 이 세 사람 밖에 없었지요.
(이 가운데 원균은 원래 이등공신이었으나, 선조의 입김으로
일등공신으로 추서 되었지요 ^^;)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살아있는 영웅'은
왕에게나 권력을 잡고있는 조정 중신들에게
모두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토사구팽'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혹시도 있을 토사구팽의 뜻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한 개는 삶는 다는...
사기의 회음후전...
즉, 요긴한 때는 소중히 여기다가도
쓸모가 없게 되면 천대하고 쉽게 버림을 비유하는 말..
- 맛이간 영화 제작할 때와  틀린게 없군요 ㅎㅎㅎ
뭐 그런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순신 장군은 일부러 죽었거나
죽음을 위장하여 은둔 생활을 했을까요?

<<참고 문헌>>  
'쟁점으로 본 한국사'
출판사와 지은이가 없네요 ^^;
검색엔진 있지요?
찾아보시길 ^^;.        

책에는 좀더 상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의 사망 당시의
거북선 임종을 지켜본 사람이
동생인가(오래되서 ? 쩝)
가까운 친척이고
이순신 장군의 유해는 일주일인가 지나서
어떻게 처리되고
여하간 의심가는 곳이 꽤 있더군요.
일일이 다 적지 못한 점 양해 드리고
책 찾아서 한번 읽어 보세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역사 과목 점수 젤 안좋았는 데
영화하면서
역사가 더 재밌어 지더군요...

최소한 우리 영화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혹은 민족의 분노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복화술이기 때문입니다.
* 제다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03-17 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