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직후 (1945~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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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6월 17일 16시 58분 38초 *.120.36.55
1. 개요

일제 식민지 하에서 해방된 한국영화계는 새로운 질서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영화계 현실은 영화인들의 노력이나 영화계 고유의 동력에 의해 주도적으로 결정될 상황이 아니었다.영화계 자체 입장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동향이 영화계를 좌우하는 상황이었는데, 영화는 그 자체의 특성상정치적인 선전 목적으로 무한정 이용될 수 있고 자본주의적 이윤추구 목적에 의해 무한정 지배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윤백남을 위원장으로 한 <조선영화 건설본부>의 발족은 일제의 <조선영화 주식회사>의 시설과 기자재를 인수하였다. 이어서 1946년에는 좌익계의 <조선영화동맹>과 <조선영화감독구락부>가 결성되어 한국영화의 새로운 질서의 형성과 함께 혼란이 예견되었다. 1946년 미군정청이 공포한 법령 제68호와 115호는 새로운 영화법령으로 또다른 차원에서 우리 영화계의 활동을 제재하였다. 그러한 와중에서 영화 배급과 흥행 계통의 혼란은 이후 한국영화의 미래를 양적으로만 팽창시킬 뿐 실속이 없는 악순환적인 현실을 직면케 한다. <조선영화 건설본부>는 <조선영화 주식회사>에서 인수한 껍데기뿐인 열악한 기자재와 시설을 가지고 미군정청의 뉴스영화 제작 의뢰를 맡아 영화제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 한국영화계의 한 쪽 구석에서는 연쇄극이나 16미리 무성영화가 출연하는 한국영화 기술의 후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고려영화협회>의 재건과 최인규의 <자유만세(1946)>의 개봉은 광복 영화의 효시로서 출발한다. 이 시기의 광복 영화는 애국투사, 순교자, 의사의 전기와 투쟁사를 통해서 민족해방을 위한 겨레의 아픔과 수난을 그리고 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되면서 한국영화계의 손실은 치명적이었다. 영화인의 납북과 월북, 기자재의 파괴, 기존필림의 유실 등이 그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물자 부족의 현실은 민간인 차원에서 영화를 제작하기가 벅찼고, 그나마 활동했던 영화인마저도 군영화 제작 활동에 투입되었다. 미502부대의 <리버티 뉴스>, 부산 정훈국의 <국방뉴스><백만인의 별>, 공보처의 <대한뉴스> 등 전시의 한국 영화는 일반극영화 보다 기록영화 제작에 혼신을 다했다. 그러나 서울의 환도는 다시 한국영화 제작의 활기를 구가하였고 1954년도의 제작편수는 18편으로 전쟁 전의 수준으로 복귀하였다. 작품경향은 전후방에 걸친 시국적인 계몽영화와 전시 사회를 배경으로 범죄를 다룬 서스펜스물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밖에 기록 영화의 활성화는 동란기 한국영화의 특진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영화사에 있어서 50년대 후반은 20년대 후반처럼 한국영화의 제2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1954년 한국 영화계에 대한 면세조치는 영화 제작에 있어서 양적인 증가를 유도했고 영화 산업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1955년에 불과 15편 제작으로 시작된 전후 영화는 59년에 이르러 109편 제작을 달성하는 영화 산업의 성장을 과시했다. 과거의 영세한 수공업 형태의 보따리 장사에서 어느 정도 현대적인 스튜디오와 기자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영화계는 대거 새로운 영화인을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인의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 기관인 <서라벌 예술학교>(1953)를 시작으로 설립되었다. 전란으로 파괴되었던 극장들은 빠른 시일 내에 복구가 되었고 신축된 극장의 증가는 영화 시장의 확대를 유도했다. 그 결과 한국영화계의 급속한 성장은 다양한 영화예술을 가능케 하였다.
민중오락의 대표적 매체로서 군림하게된 영화는 대중의 호응도와 함께 산업으로서의 성장은 물론이요, 영화의 예술적인 면에서도 괄복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1956년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은 ‘제4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특별 희극상을 수상하여 처음으로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기억될 만하다.

2. 광복 후의 영화

광복의 기쁨은 1945-50년 사이의 한국영화에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고 누리려는 욕망이 이 시기 영화의 주조를 이루었다. 소위 ‘해방 영화’’광복 영화’라 불리우는 일련의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1946년 10월에 개봉된 최인규의 <자유만세>가 바로 그러한 ‘광복 영화’의 대표적 작품이다. 대일 항쟁을 위해 싸우는 독립 투사들의 모습이 활극 형식으로 다루어진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는데, 조국의 광복을 위해 사랑도 외면한 주인공이 악착같은 일본 순사의 추격을 피해 끝까지 항전하다가 광복을 눈앞에 두고 장렬하게 죽어간다는 내용은 당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외 대표적 작품으로는 윤봉춘의 <윤봉길 의사(1947)><유관순(1948)>, 전창근의 <해방된 내 고향(1947)>, 이구영의 <안중근사기(1946)>, 신경균의 <새로운 맹세(1947)>, 이규환의 <민족의 새벽(1947)> 등이 있다.
또한 해방과 함께 새사회를 건설하자는 계몽적인 영화와 국민 계몽을 목적으로 만든 정책 영화의 제작도 활발했다. 새로운 농촌 건설과 사회 계몽, 아동 교육에 이바지 할 것을 다짐하는 계몽 영화로서 <그들의 행복(1947)><해방된 내 고향(1947)><사랑의 교실(1948)> 등이 있으며, 정책 영화로는 선거 제도 계몽용으로 만들어진 교육 영화 <국민 투표(1948)>, 한국 농촌의 풍물을 소재로 한 해외 홍보영화 <희망의 마을 (1948, 최인규)> 등이 있다.
이러한 계몽영화와 정책영화의 홍수 속에 윤대룡의 <검사와 여선생(1948)>, 최인규의 <죄없는 죄인(1948)>, 윤용규의 <마음의 고향(1949)>, 홍성기의 <여성일기(1949)> 등 멜러드라마와 활극 오락영화 그리고 반공 영화를 비롯한 차분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등장했다. 해방 이후 부족한 기자재와 시설 탓에 16mm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검사와 여선생>은 전형적인 신파조의 멜로드라마에다 변사의 해설을 들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전국에서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마음의 고향>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예술적 성과를 인정받은 작품인데,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각색해서 만든 이 영화는 1949년 ‘제1회 서울시 문화상 영화부문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홍성기의 <여성일기>는 한국 최초의 컬러 영화로 기록된다.

3. 폐허 속의 영화

해방을 맞은 지 5년 만에 우리 민족은 사상 유례없는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경험하게 된다. 1950년의 참사는 우리로 하여금 좌절과 절망감을 준 다분히 숙명적인 것이었으나 이러한 자기 반성의 계기는 오히려 일제 36년을 벗어난 단순한 해방감만 느끼던 8.15 직후와는 다른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질 문화와의 마찰 속에 국민 의식에는 변화가 왔으며,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은 정신적인 방황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 시기는 한국 영화의 두번째 공백기였다.
전쟁 기간인 1950-3년까지 거의 모든 영화인들이 정부기관과 군대에 소속되어 영화제작을 계속 하였다. 전투 현장이나 후방의 상황을 찍은 보도 영화등의 기록 영화가 주를 이루었으며 소수의 극영화도 제작되었는데, 대개 적의 만행을 고발하고 승전의 의지를 고취시키는 반공 계몽 영화의 형태를 띄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전쟁과는 별도로 제작된 한국 극영화으로는 신경균의 <애인애사(1950)><3천만의 꽃다발(1951)>, 이경손의 <흥부와 놀부(1950)>, 윤봉춘의 <성불사(1952)>, 전창근의 <낙동강(1952)>, 민경식의 <태양의 거리(1952)>, 신상옥의 <악야(1952)>, 이만홍의 <애정산맥>, 정창화의 <최후의 유혹(1953)>, 손전의 <내가 넘는 삼팔선(1951)><공포의 밤(1952)> 등 전시 중 년 5~6편 제작 수준에 머물었다.

4. 새로운 도약기

1954년 서울로 환도한 영화인들은 폐허가 된 서울거리를 재건하는 과정을 그린 <빛나는 건설>을 공보처에 납품했다. 서울의 빛나는 건설 못지않게 곧 영화계에도 빛나는 봄이 도래하는데, 휴전 후 사회 분위기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영화 제작도 평상 수준을 회복해 갔다. 1959년에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한 해 영화 제작 편수가 100편을 넘어서게 된다. 작품 경향에 있어서도 문제 의식이나 형식, 영화 장르나 소재도 전에 없이 다양해 졌다.
1955년 국방부에서 문교부로 영화 행정 이관, 영화인의 상호간의 단결을 의미하는 각종 협회의 조직, 국산 영화에 대한 보상책 등이 한국 영화의 활성화를 위해 보탬이 되었고, 외국 영화는 국산 영화의 내용과 질에 있어 많은 노력을 촉구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1955년에 개봉된 이규환의 <춘향전>과 한형모의 <자유부인(1956)>의 흥행 성공과 화제거리는 한국영화 중흥의 횃불을 밝혔다. 보수적 윤리를 다른 역사극 <춘향전>과 전후의 혼란 속에서 새롭게 직면한 자유주의의 만연된 풍조를 그린 <자유부인>은 우리의 혼란된 윤리의식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 시대의 민중오락의 갈증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50년대 후반의 작품 경향은 사극, 멜러물, 코미디 영화, 액션, 예술물 등 다양하다. 이규환의 <춘향전>이 흥행하자 먼저 사극영화의 붐이 일게 되는데, 고전 소설, 왕조비사, 야사의 로맨스 등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야기가 주는 재미와 함께 화려한 의상과 무대 세트가 관객을 끄는 요인이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김기영의 <양산도(1955)>, 전창근의 <단종애사(1956)>, 안종화의 <사도세자(1956)>, 신상옥의 <무영탑(1957)> 등이 있다.
또한 우리 영화의 가장 전통적인 장르로서 50년대 후반 다시 등장한 멜로드라마는 당대의 세태를 현저하게 반영하여 주목을 받았는데, 홍성기의 <실락원의 별(1957)> <청춘극장(1959)>, 신상옥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동심초(1959)>, 유현목의 <잃어버린 청춘(1957)> <구름은 흘러도(1959)> 등 낡은 윤리나 도덕, 기성 관념 등이 변화하는 세태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눈에 띄게 코미디 영화가 많아진 것도 이 시기 영화의 특징이다. 일제 치하와 6.25를 겪으면서 그간 한국 영화계는 발디딜 곳이 없었던 것이다. 1956년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과 홍일명의 <벼락감투(1956)>가 초기 코미디 영화의 대표작이다. 이후 권순영의 <오부자(1958)>, 유현목의 <인생차압(1958)>, 김화량의 <뚱뚱이와 홀쭉이, 논산훈련소에 가다(1959)> 등 서민생활을 그린 세태의 풍자로 당시 인기 코메디언들인 이종철, 구봉서, 양훈, 양석천, 김희갑 등이 감초로 출현했다.
이러한 50년대의 다양한 장르적 접근과 실험 덕분에 우리 영화계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해방 후부터 고착되어온 분단의 불안정성과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상이 6.25 전쟁으로 더욱 완고하게 굳어져 버린 감은 없지 않지만, 60년대 4.19로 표상되는 민주, 자주, 자유의 바탕과 토대를 마련한 시기였던 것이다. 50년대 영화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르의 세분화, 소재의 다양화, 제작편수의 급격한 증가 등 이 모든 징후가 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를 배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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