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image220 2002.03.22 03:45:36
지난밤에는 과음으로 H의 집에서 신세를 졌었다.

'김장독'이라는 상호의 식당에서 김치를 넣은 부대찌개를 정신없이 먹고 있을 무렵,
(역시 김치가 맛있었다) 핀란드와의 평가전이 한창이던 그 무렵부터 비는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들 중 아무도 우산을 가지고 온 사람이 없었다.
바로 그래서 인사동 한빛은행 앞 포장마차에 앉게 되었다.

스탠리 큐브릭을 많이 닮은 서양인이 화랑 사람들 같은 중년들과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두 여성분들은 먼저 집으로 갔고, 나머지 셋은 여관 이야기였던가를 한참 하고 있었다.
누군가 춥다고 하여 난로불을 피우자, 마차 안은 석유냄새로 가득찼다. 바닥은 점점 빗물로 덮였다.
그 바닥에 K는 모자를 떨어뜨렸고 나는 펼친채로 스케치북을 떨어뜨렸다.
비를 맞고 오줌을 싸러 두어번 다녀오기도 했다.
어느 한식집 처마 밑에 서서, 바닥에 엎어진 빈 박스위에 오줌을 누었다.
손님이 우리 밖에 없을 무렵, 바람이 세차게 포장 사이로 들이닥쳤다.
천정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천막 귀퉁이에 받쳐둔 기둥 두 개가 땡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천정을 받쳐들었다.

H의 집에서 우리는 맥주를 마신다고 외할머님이 해두신 갈비찜을 먹어버렸다.

H가 우스개소리를 했다.
난 내가 할머님을 모시고 산다고 생각하는데, 할머님은 당신이 나를 데리고 사신다고 생각하시지.
그의 외할머님은, 죄송스러워 이불을 뒤집어쓰느라 얼굴은 못뵈었지만
여든일곱의 연세에도 세련된 멋쟁이시라고 손자가 말했다. 할머님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했다.
아침에는 할머님 친구분들도 놀러와 계셨는데,
내가 문을 잠그고 웃통을 벗은 모습으로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을 때는
그, 두꺼비알을 개구리알로 잘못알고 날로 삼키는 바람에 유명을 달리한 이에 대해서 말씀들을 나누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