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전화중독증을 치료하는 방법.

ryoranki 2003.03.29 15:52:39
술 취했을 때 전화 못하게 핸드폰을 찾기 힘든 곳에 숨겨놓는 지혜를.
--[2003/03/29 03:21]

3월 29일에 모놀로그에 올라온 글입니다.

모놀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낀 나머지..
만취한 상태에서 전화중독증을 고칠수 있는 저의 고육책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나라는 인간이 음주 전화중독증으로 인한 피해사례, 아내 가해사례를 간략하게 나열하겠습니다.

우선 제 전화번호에 불행히도 저장이 되어있던 여러분들게 다시한번 과거 망나니같은 전화폭력을 행
사하지 않을 것임을 편안한 마음으로 다짐합니다.
4년여 동안 영화를 하면서 저장된 전화번호가 70개 정도 됩니다. 그중 촬영하면서 수시로 전화를 해야
했던 스텝들의 전화번호도 많고 전화번호는 받았으나 전화할일은 가뭄의 콩나듯 하는 사람들 등등 모
두를 저장해 놓았습니다. 저장해 놓았다니 보다는 지울필요를 못 느꼈던 거죠.

우선 음주전화중독증을 단계별로 알아보면 단순하다면 모든 것이 그렇듯 단순합니다.
술을 먹는다 - 전화를 한다 - 다음날 통화목록을 보며 놀란다 - 사우나에서 후회한다
- 다시 전화를 해서 은근슬쩍 확인을 해본후 별일없으면 인사치례. 뭔가 분위기 이상하면 솔직히 자백, 용서 혹은 배째라 한다.
이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럼 저의 경우를 자백합니다.

저는 주로 술을먹고 택시를 타면서부터 술기운이 올라와 가물가물해지면서 전화를 함과 동시에 짚더미
에 기름붓고 불붙이듯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우선 첫 코스는 전 여자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게됩니다. ([전]남자친구의 혀 꼬인 목소리는..[현]남자친
구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새벽3시에 듣는 것보다 확실히 괴로울 것입니다. ) 물론 신사적으로 간단
하게 통화를 합니다. 거기까지는 기억을 합니다만 온순히 전화를 끓고나서 금새 다시 전화를 하는 모양
입니다. 새벽 3시쯤에 그런 전화를 몇번씩이나 받으면 대부분 전화기를 꺼놓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입니다.
나는 전 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전전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전전전전 여자친구의 전화번호
를 찾다가 없으면 전전전전 여자친구의 친구의 전화를 번호를 용케도 기억해내서 내 전전전전 여자친구
였고 너의 친구인 누구누구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는 전전전전 여자친구에게 기어코 전화를 합니
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게되면 어느순간 집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일년에 몇번 안되는 희귀
한 케이스입니다. 대부분 통화가 가능하지 않죠. 좋아? 전화를 안받는다? 그렇다면 친구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혜화동에 거주하는 하 모시기와 삼각지 근처에서 기거하는 택 뭐시기에게는 별로 전화를 안하는 편이지만
은경, 경화 누님들에게 전화를 한번씩 해서 노래를 불러줍니다. 노래입니다 노래. 주로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꺼지면~ 이렇게 한곡조 뽑다가 ’이거 누구 노래야?’ 라고 물어도 착하기 착한 누이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습니다.
이사람들이 아무말도 하지 않는건 아마도 ‘어.. 효석이구나..’라는 의미일껍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다음날 전화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프렌드들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침에 일어나 혹시나
하고 확인해보면 은경,경화누이들의 이름들은 3~4일전에 전화했던 번호처럼 깊숙히 자고있고 그 이름도 확연
하게 무슨무슨 필름 대표님 아무개. 무슨무슨 픽쳐스 이사님 누구누구. 술자리에서 한번 봤던 pd분.누구누구.
들의 이름이 찍혀있는 겁니다. 시계태엽 로봇처럼 사우나에 가서 앉아있다가 온탕 냉탕 오가다 보면 어느순간
슬그머니 떠오르는 어제의 대사들. 함께 촬영했던 소품기사님한테 전화를 해서
'기사님 창고에 내 물건들 있단 말예요! 그거 가져가야 하는데 기사님 언제 차좀 빌려 태워주실래에요?'
‘왜 그때 귀가비 안준거요? 회사에선 줬다지 않소?’
라고 내게 쿠사리를 먹은 어느제작실장님. 등등 끔찍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었습니다. 아직도 어젯밤 술기운이 빙글 도는 가운데 모든 전화번호들을 삭제하기 시작
했습니다. 삭제된 전화번호는 고스란히 컴터에 옮겼습니다.
그리곤 작은 종이에 인쇄를 해서 가방 깊숙히 가지고 다녔습니다. 크기는 축소복사를 몇번이고 해서 손바닥보다도
못한 크기로 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저는 끝내 전화번호부를 끄집어 내고 택시 실내등을 키고 부산을 떠는 수고를
감수해내며 전화를 하고 말았습니다.

또 어느날은 굵은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전화번호부를 버릴것이냐? 말것이냐로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전화번호란 사실 제정신일 때 굉장히 필요한 것들이라 쉽게 내버릴수가 없습니다. 외우면 되지 않냐? 외운다? 외운다는 것은 그 번호로 새벽3시에 전화를 한다는 것과 같지요.
그래서 어느날인가 기름붓고 라이타 켜기전 다시말해 술을 먹고 택시를 타기전, 어느 착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부탁이 하나있다. 너가 정말 나를 좀 도와줘야 겠다.’
간곡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너가 내 전화번호를 모두 가지고 있어줘라.’
마음씨 좋은 친구가 망설이다 간곡한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이제 감독님 전화번호가 생각안날때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친절히도 가르쳐 줍니다. 그렇게 아다리가 맞을때만
해도 나는 그런 계획을 기획해내고 실천에 옮기고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실용하는 나에 대해 잠시나마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술이었습니다. 술이 없었다면 애초에 아무일도 없었을 것이고 여자가 없었다면 갈등도 없을 것입
니다만 지천에 널린게 술이고 내손에 쥔 것은 전화기라 애꿎은 착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전전 여자친구 전화번호를
가르쳐 줘라!’ 아니면 ‘전에 잠깐 만났던 여자의 전화번호가 거기 어디 있을 것이다.’ 이런식이 되버리고 말았으니 결과
는 같습니다.
그래서 술먹고 전화를 해도 되며 나의 전화번호를 송두리째 관리하고 있는 그 친구에게 약속을 함과 동시에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니 나는 자신없으니 너가 나에게 약속을 좀 해줘라.라는 통보였습니다.
내용인 즉 내가 12시 이후에 전화를 해서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절대 가르쳐 주지 말아라.
내가 12시 이후에 전화를 해서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절대, 절대 가르쳐 주지 말아 달라!


정리하면...
모든 전화번호를 다른사람에게 맡겨라.
12시 이후에는 절대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도록 다짐을 받아라. 혹은 아예 전화를 받지마라.

그동안 전화가 뜸하다고 실망 혹은 안도를 하셨던 분들에게 한마디만 곁붙입니다만 현재 제가 이렇게 노력은 하고
있으나 언제 다시 전화할지는 모르오니 인사불성의 전화가 걸려와도 바로 수화기를 내려놓지 말고 잘 타일러서 집
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근데 그 노래 제목이 뭐요? 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