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junsway 2005.08.28 00:31:44
대략의 남자들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몇몇의 여자들을 만날까? 여기서 만난다는 것은 물론 남녀로서의 만남을 의미

한다.



대학때 술자리에서 친구 하나가 자기는 25년동안 대략 50여명의 여자와 사귀거나 잔 것 같다고 말해 좌중을 놀라게 했

다.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그 술자리에 있던 친구의 친구(이 녀석은 우리 학교 녀석은 아니고 우리 과 녀석의 동네친

구인데 우연히 술자리에 동석한.....)가 대략 한 800명 정도의 여자와 사귀거나 잤다고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술자리에 무거운 침묵이 엄습했다. 누군가 '거짓말'이라고 낮게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내뱉었다. 하긴 뭐....

하지만 그를 아는 주변의 친구들이 대략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긍정에 좌중은 잠시 혼란에 빠진다. 미친새끼 아냐?

물론 제정신으로 스물 다섯 먹은 녀석이 800여명의 여자와 사귀거나 잤을까?

그애의 눈을 보면서 난 그 녀석 배 밑에서 끝도없이 헐떡였을 800여명의 여자들을 상상해 보았다.

포르노도 아니고.... 이런.... 이건 섹스라기보다는 마치 숙달된 기계가 상품을 찍어내는 그런....

그래도 사실이라니 어쩌겠는가? 본인 말로는 절대로 여자와 술이 없이는 하루도 잠을 잘 수 없다고 잘라 말했고,

주변 친구들은 그 녀석이 걸렸던 수많은 성병과 부작용에 대한 나열로 우리를 입다물게 했다.

그 이후로 11년이 흘렀는데 그 녀석은 도대체 그 신기록을 얼마나 더 많이 갈아치웠을지.....

이름이라도 기억했더라면 싸이월드에 들어가서 얼굴이라도 확인해볼려고 했는데...


난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여자들을 떠올려 본다. 정말 보잘 것 없다.

내가 만약 800명의 여자를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영혼은 갈갈히 찢겨져 나가고, 몸은 잿더미로 타서 숯이 되지 않았을지...

김대우 작가가 작가가 된다는 것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된다고 말했는데....

800여명의 여자와 관계한 후 성불한 그런 기묘한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도대체 800명의 여자를 모두 기억할 수 있을까?

임권택 감독님이 100여편에 이르는 자신의 작품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시듯

그 녀석은 결코 그 여자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리라.

요새같이 카메라폰이나 디카, 인터넷이 발달된 사회에서야 기록으로 남길 수야 있겠지만....

그 친구와 정분을 나눴던 그 800여명의 여성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모두 잘 살고 있기나 한걸까?

이상하게 그게 궁금하다...


결국에 난 어떤 묘한 열정에 사로잡힌다.

800명의 여자가 아닌... 800개의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생각.

함량미달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듯이 쏟아 놓듯 강렬한 그런 시나리오를.....

그렇다면 이 800개의 시나리오를 모두 기억할 수도 있을텐데.....

800개의 영혼이 내 머리속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자.... 머리가 어지럽다... '존 말코비치 되기'도 아니고....

그래도 난 내 영혼의 자식들과의 교감으로 행복하게 이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래도 궁금증이 다시 되살아 난다. 그녀석과 관계를 가진 800명의 여자들 아니 그 이후에 업데이트 되었을 대략

1천명 이상의 여자들은 모두 다 잘 살고는 있는 것인지.... 그리고 작가가 800개의 시나리오를 쓸 수나 있는 것인지...



마틴 트레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