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을 꿈꾸며.... 두번째 이야기

kineman 2007.08.16 03:00:51
7월 13일 첫 촬영을 마쳣다.
천국과 지옥을 왕복달리기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앞 못보는 친구를 위해 20여년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
녀석들이 아니면 다시 영화를 만드는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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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전남 보성에 살고있다.
2003년 말 눈 안에 핏줄이 터져 피
가 떠다니는 초자체출혈과 망막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상태가 안좋은 오른쪽 눈을 먼저 손을 댔다.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전신마취 포함 한 5번의 수술을 받은것 같다. 가스를 넣기도 하고 기름을 넣기도 하고....
마지막 수술을 하고 얼마지나지 않았는데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몇대를 맞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중엔마양성분의 진통제까지 맞았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약 성분의 진통제를 맞으려면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기 떼문에 시간이좀 걸렸다. 비교적 절차가 간단한 진통제를 몇 대 더 맞았다.
결국 그날은 그렇게 잠을 잘수가 있었다.
통증이 심하니까 안보여도 좋으니 통증이나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젠장! 소원대로 됐다.
어떠한 감정을 느낄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수술도 마음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체력이 되지 않으면 전신마취도 안된다고 체력을 회복할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왼쪽눈도. 마찬가지로 전신마취 포함 4~5회의 수술을 받았다.다행히도 큰 무리없 히왼쪽 눈은 살렸다.
떨어진 망막을 붙여서인지 직선이 똑바로 보이지 않고 약간 요철처럼 삐뚤빼뚤하게 보였으나보이는것 만으록도 감사해야했다.
왼쪽눈의 떨어진 망막을 고정하기위헤 안구에 무엇인가(기름 또는 가스)를 넣어 1주일 넘게 앞을 못본적이있었다, 성격이 지랄맞아 다른 환자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아서....
아니다. 나는 병원생활에서 가장 싫었던게 병실 안 멤버가 바뀌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호구조사가 정말 싫었다. 어디살아요? 어떻게하다가 그렇게 됐나요?그병엔 뭐가 특효다. 등등....
새벽이었다.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다; 간이 침대에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웠다.전에는 조그맣게 엄마하고 부르면 벌떡뻐떡 일어나던 노인네가 꿈쩍도 안한다. 성질이 나서침대에에서 내려서며 발로 엄마를 흔들어 깨우려는 순간 조그맣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엄마를 깨울수가 없었다.
화장실은 병실을 나가서 11시 방향으로 다섯걸음만 가면 되었기 때문에 혼자 가기로 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금처럼 요령이없어서 그냐 병실을 가로질러 문으로 향했다. 가도 가도 문은 나오지않았다. 손을 뻗어 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한발한발 걸어가는데 허리부분에 뭔가 딱딱한 물체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침대에 걸린것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어쩔줄을 몰랐다. 간신히 간신히 내 침대로 돌아왔다. 화장실 생각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오른쪽 눈을 잃은 슬픔보다는 왼쪽 눈을 살렸다는 안도감이 커서일까 별 무리없이 병원생활을 마쳤다.
시력은 어느정도 찾았으나 체력이 문제였다. 10걸음도 걷지 못하고 숨이 가빠 헐떡대는 거의 최악의 상황이였다.
아는 분의 소개로 지금 사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첨에는 이곳에서 한 4키로더 들어가야하는 조그마한 절이였다. 첨엔 목숨이 왔다갔다하니까 예불도 꼬박꼬박 참석하느등 조심조심 셍활을 하며 낮에는 산책등을 하며 건강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이런... 시작하려던 이야기가 딴대로 샛네요 미안합니다..오늘은 여기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