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우리학교를 지켜주세요

sun226 2009.05.30 01:12:24
한예종은 국립대입니다. 그런데 교육부가 아니라 문광부 산하에 있어요. 그래서 교육부가 정한 입시 형태를 취하지 않고도 자립적인 입시 체제를 취할 수 있는 겁니다. 한예종은 "예술실기 및 예술이론의 전문적인 교육을 통한 창조적인 문화예술인 발굴" 이 그 설립 취지입니다. 상위 기관이 교육부가 아니므로 학위의 이름도 좀 다른데요. 학사는 예술사, 석사는 전문사입니다.

한예종이 처음 출범할 때부터 타 사립 예술대의 항의가 거셌습니다. 학벌과 연고주의라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현상 상,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화예술계라는 이 좁은 곳에서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알력이 있습니다. 한예종이 올해로 개교 19년째입니다. 타 대학의 역사에 미루어 볼 때 굉장히 짧은 시간이죠. 초기에는 부지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1기 학우들은 남산문화센터와 구 안기부 건물(지금은 폭파됐음) 등을 전전하며 힘겹게 수업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 한예종의 체계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 이강숙 총장이 세운 마스터플랜이 아직 시행단계입니다. 협동과정은 그 그림의 일부고요. 지금은 체계가 차츰차츰 정비되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요, 한예종이 국립대기 때문에 단순히 학칙을 개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설치령이라는 법령에 세부 뼈대를 추가해 나가야 하는 형태입니다. (여러 상위 기구의 승인을 받고 동의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 법령 마련의 절차도 타 대학의 견제상 힘겨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컨대 예술사는 학사 학위를 인정받으나, 전문사는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없어요. 2005년에 국회에서 한예종 전문사 학위 인정 문제를 놓고 논의하였으나, 타 예술계 교수들의 빗발치는 반발로 무산되었던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체제가 점점 정비되고 졸업생들이 생기면서, 한예종의 입지가 점점 커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예술대학들의 견제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결국 속된 말로 "밥그릇 싸움"입니다만, 이것이 단순히 "밥그릇 싸움"만이 아닌 이유는,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예종의 구조조정이 단행된다는 문제에 있습니다. 이것은 교권 침해입니다. 한예종이 문광부 산하 기관에 있다지만 엄연히 교육 기관입니다. 교육 기관의 구조 조정을 관료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것은 어떤 것보다도 최우선으로 보장받아야 할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 (혹 해리 포터 읽으신 분들이 있다면 엄브릿지가 호그와트에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특히 이명박 정부가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효율성'.... 그리고 이들이 그 근거로 주장하는 내용이 애초에 실기 교육을 중심으로 세워진 학교니 이론 교육을 하지 말고 실기 교육만 하라는 얼토당토않은 논리입니다. 이론 없는 실기가 가능합니까?


황지우 총장님이 올해 학위수여식에서 한 말을 잠시 빌리자면, "20세기 모더니스트들이 한 일은, 그린버그가 그의 ‘Modernist Painting’이라는 글에서 썼듯이,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자기 정의(Self-Definition)이었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밖에서 혹은 작품을 통해서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이런 거야” 하고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잘 그리고 잘 만드는 것 이상으로 생각을 잘 하고, 때로는 그 생각을 적절할 때 말로 잘 하는 것이 필요해진 겁니다."


현대예술이 이런 경향들을 무시했다면 마르셀 뒤샹의 "변기"나 퍼포먼스 형태의 예술 작업 등은 그 입지상 나오기 힘들었겠죠. 논란의 여지가 아주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분명 새로운 예술에 대한 담론의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현대 예술은 "도대체 어떤 것이 예술인가"에 대한 부분을 놓고 계속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 이론 교육을 폐지하고 실기 교육만 하라는 교육부의 주장을 다시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너희, 공부하지 말고, 몸만 써."
한예종은 2~3년에 한번씩 감사를 받는데요. 물론 산하의 예술교육 기관으로 감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죠. 그러나 5월 18일 한예종의 감사 내용에는 행정적인 시정 조치만이 아닌, 교육관과 관련된 구조 조정 지침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정치적인 컨텍스트에서 나옵니다. 보수 언론은 한예종을 '좌파'들의 온상으로 몰고 있습니다. 색깔론 논쟁을 교육 기관에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그 치기어린 천박함에 한숨만 나올 지경입니다. 국립 예대로서 한예종이 받는 혜택들이 분명히 있고(예산 배정 등), 이것을 말하자면 다른 예술대학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같이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죠. 그러나 이것은 서로의 협의와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지요. 한예종이 폐교된다 하여 타 예술대학 학생들이 받는 교육의 질이 월등히 좋아집니까? 그것은 단순히 예산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커리큘럼과 시스템의 문제의식이 선행되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사학의 문제도 분명 얽혀 있을 터입니다. 여론을 호도하면 안 됩니다. 상대방이 샘나서 싫다고 토막살인 내는 것이랑 무엇이 다른지요? 황지우 총장이 사퇴문에서 언급하였지요. "그가 돌아갔고, 이내 감사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환영했다. 종합검진처럼 잘 받으면 그만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건강성이 입증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 검진이 아니라 생체 해부에 가까운 쪽으로 흘러갔다."


MB 정부의 한예종 대책 중장기 플랜(3단계)
MB 정부는 출범 이래 계속해서 아직 임기가 남은 문화예술 기관 인사들을 압박해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필두로 끝끝내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마저 표적 대상이 된 것입니다. MB 정부의 한예종 대책 중장기 플랜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 단계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사퇴 추진과 예산 삭감입니다. 실제로 회계 교비 단일화, 즉 국고 보조가 줄어듦에 따라 그 동안 한예종에 대한 실질적인 예산 삭감이 진행되어 왔고, 올해 한예종 UAT 교육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으며, 5월 19일 “본교에 몰려 있는 수압을 덜기 위해서” 황지우 총장이 사퇴하였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작금의 사태, 표적 감사와 아우른 서사창작과 폐지와 이론과 축소 및 폐지, 협동과정 폐지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속칭 “한예종 괴담”으로 불리는, 6개원 해체입니다. 이것을 더 이상 한낱 루머나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일이 아닌 것은, 2005년 발족한 이후로 한예종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는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과 뉴라이트 계열의 ‘문화미래포럼’이 한예종의 구조조정에 대한 주제발표회를 공동 주관으로 계속 진행시켜 왔고, 최근 문화부의 감사결과 발표와 동시에 ‘문화미래포럼’이 “연극원, 무용원 등은 음악원으로 통폐합하고, 미술원과 함께 두 개 단과면 충분하다, 특히 전통예술원은 기존의 국립기관들이 많기 때문에 한예종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그 속셈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08년 9월 3일, 예교련과 문화미래포럼의 공동 주관 아래 진행된 주제발표회에서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정재형 교수는 “한예종은 지난 정부의 실패작이며,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한예종의 구조조정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한예종 설립이 당시 국내 예술대학 풍토와 학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되어 국내 예술대학과의 불필요한 경쟁을 야기했으며, ‘사실상 종합대학체제’로 불릴 수 있는 한예종의 ‘6개원 체제’는 구 공산권 나라인 중국, 소련의 몇 곳을 제외하곤 선례가 없는 이상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각 원의 이론과 및 협동과정은 물론 타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모든 전공을 폐지하고, ‘대학’이 아닌 조기영재교육만을 담당하는 본래 취지를 살린 ‘작은 대안학교’로의 전환” 등을 주문했다.
서우석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는 “해체를 우리가 직접 주장할 필요 없이 정부가 진행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된다”며, 다만 “해체 이후의 인력과 기자재 배치 문제를 논의하는 공청회 를 하자”며 ‘후속모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토론자로 나온 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은 “과거 수도공대가 홍익대에, 서라벌예대가 중앙대에 넘어갔듯이, 해체 이후의 배치 걱정을 하지 말라”며, “부분 인수할 대학도 많고, 입찰을 붙여서 띄워주면 간단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지금 한예종 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대책 마련에 바삐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법적 단계는 이렇습니다.

1. 감사가 내려옴
2. 이의제기 신청(약 한 달의 기간) 지금 한예종이 처한 상황. 일단 이의제기를 한 다음부터는 손 쓸 수 없음.
3. 이의제기 검토, 그리고 다시 감사를 내림. 이 때는 시행령. (이 때에 시행령은 법적인 효력을 가집니다.)
4. 령 개정안-공청회(여러 사람이 참석하는 공청회도 있고, 한 명도 참석하지 않는 눈속임 공청회도 있음)-국무회의(장관급 회의)

그리고 국무회의(대통령 및 각 부처 장관급 회의)에서 통과되면 한예종은 없어집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말하는 "이론과 학생"들의 범주인데요.


처분요구서의 사항을 보니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네요. 특히 <2009년 이론학과 신입생 출신고 현황>에서 연극원 17명, 영상원 75명, 협동과정 15명이라고 한 부분 때문입니다.
연극원 17명이 이론학과라면 연기과·무대미술과를 제외한 연출·극작·연극학과 신입생 모두를 말합니다.
또한 영상원의 경우는, 총 87명의 신입생 중 12명의 애니메이션과 신입생을 제외한 영화과·방송영상과·멀티미디어영상과·영상이론과 전체를 말하구요. 이론과 폐지가 단순히 '연극학과'나 '영상이론과' 같은 과들에 한한 얘기가 아니에요. 몰이해도 이렇게 몰이해를 하고 있을 수가 없죠. "이론과만 폐지하네?" 하고 단순히 넘겼다간 큰코 다칠 문제입니다. 이게 통과되면 한예종은 폐교돼요. 그리고 남은 과들과 기자재들은 갈가리 찢겨져서 다른 사립 예술대가 회수해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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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자신의 권익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좌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고 철저히 없앱니다.
자기들의 권익, 자기들의 부, 자기들의 영달, 자기들의 심신이 편한 것, 그것에 어긋나 보이는 것은 무조건 뿌리뽑습니다.


저는 서사창작과 학생입니다. 다니던 과가 정치적 희생양이 된 채 없어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여론 형성이 필요합니다. 이 카툰과 글을 여기저기 퍼뜨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