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백남준,,,,

sandman 2006.02.01 01:04:03
백남준.jpg

내가 감히 나보다 나이가 할아버지 뻘 되는

백남준이라는 분을 호칭도 없이 쓰는 것이 과연 올바를 까...

아니 하나의 역사적 인물로 생각하고 이야기한다면

그는 호칭이 필요없는 고유명사가 될 것이다.

이중섭이 이중섭이고

샤갈이 샤걀이고...

채플린이 채플린이듯이....

뭐...





-중략-

내가 백남준이란 사람을 안 것은 모두가 다 그렇듯

1984 굳모님 미스터오웰 이다...

하지만..

난 뭐 그러려니 했다...

나이도 아니려니와

예술을 이해하는 수준은 아직 멀었으니...



내가 백남준을 다시 알게 된 것은...

죤 케이지 떄문이었다...

90년대 초반에 불어온..

그 무슨 주의 였더라?

네오 (생각이 안난다..

인터넷에 잘 못쓰면 큰일 나니..

나중에 보충하기로 하고,,,,)



뭐 여하간...

정확히 90년이나 91년일 것이다...

한참 피나바우쉬라는 독일 무용가에 미쳐 있었을 때다...

(그 떄 영화는 그냥 영화였다...
저정도 상상과 스토리는 나도 한다는 안하무인에 젖어 있을 때....
^^;<= 무수한 추측성 글)

그런데 그런

아하... 앞에 생각 안난 것...

포스트 모더니즘이었다...

초반기 시끄럽기 마악 시작할 때

(한국에서 제일 시끄러웠을 떄가

아마도 92 혹은 3년 정도이었나? 늦어도 94년 즘이었다)

여하간.. 포스트 모더니즘의 최고 주자였던

피나바오쉬는 나를 또 다른 예술의 한 정의를

공연한 편보고 소름끼칠정도의 감동을 먹었다...



그러다가 공부를 주욱 하다가

미국의 죤 케이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다..



그 죤케이지가 가장 친하고 극찬한 인물이

한국에서온 백남준이었다...



잉?



그레서 다시 백남준에 관한 글을 무지 읽어 보았다..

오호...

그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가 어록에 남긴 모든 이야기들이

몸에 팍팍 와닿았고...

(초창기 한국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판칠 때

한국의 이슈화된 사람은 무세중이라는 분이었다..

- 왜 분이라는 호칭을 하냐면

지금은 어느 대학 교수님이시고

백남준처럼 고유명사가 될 수 없기 떄문이다...)



그래서 그 분이 한국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한국민들에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을 가장 방해했던

사람이라고 난 감히 이야기 한다..

( 이 이야기는 그 당시 지도교수님과 얘기 나누다가

나랑 죽이 맞았던 ...

그래서 난 더 진실로 믿게 돠었던,,,)



각설하고..

우연히 읽어본 백남준의 자서전 에서는

영화인들이 미쳐 존경해 마지 않는 고다르 보다 더 천재성이 보였다...



아~~

이게 한국민의 예술정서이구나...



그래서 난 참으로 많은 감동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또 다르게 만들었다...



.

.

.

각설하고...

생애 정말 한번 대화해보고 싶었다...

죤 케이지에 대한 음악과 공연 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무한 상상에 대한 자유로움,...
.
.
.



내가 이리도 슬픈 것은...

황교수 사태처럼

우리의 매스컴은 아무도

누구 하나도



백남준의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모른다...

(스크린 쿼터.. 고도의 정치수순에 이미 영화인은 졌다...
영화가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최첨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게 진주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 봐야 보는 사람에게는
그냥 구슬 일 뿐이다...
분신자살...
ㅎㅎㅎ
개죽음이다...)

명백한...
뻐꾸기만 날리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아~~

방송을 보도한 기자가

백남준 자서전 한권이라도 읽었으면

아무도 그렇게 이야기 안할 것이다...



그리고...

백남준의 유해가

왜 3개국에 묻히는 것에 대해서



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가?



그 것이 슬프다...



유해는 왜

흩어져서 묻혀야되?



한 곳에 묻지?

(얼마전 우연히 이라크 대학생과 채팅을 했다..
나의 국적을 묻고서는 그는
바로 내게 질문을 했다...
왜 당신 코리아는 김선일을 살리지 않았냐고...
무슨 말이 필요하리...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원조와
대미의존국인 어느 나라가 용감히 자국민을 구출해오고
미국으로서보터 더많은 경제 혜택을 얻었지 않았나?
대외 외교상우리나라는 정말 개*신
치욕의 역사의 기록이다...
이게 노빠다..
이런말 약간 오반데..
영화인들 노 찍자고 난리칠 때..
...
말 안할란다...)


왜 우리는 한국민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한국민을 못 만드는 이 바보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는 지 그게 답답하다...

바보같이 그가 한국의 국민이고 한국의 국적을 가졌으면

(내가 그가 한국민이고 아니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리나라에 묻히면 끝이다...

(한국 정서에 당신의 유해가
갈기갈기 나눠져서
3군데에 묻혔으면 기분 좋은 가?)

아~~

발목을 잘리는 것을 각오해야만하는 하는 화씨벽인가?

돼지목걸이의 진주?

왜 모르나,,,,


스크린쿼터 이후..
혼란한 내 정서속에...
또 다른 슬픔....


너무나 슬프다...

현존하는 예술가중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

내가 정말 자리하고 싶었던 어느 분이

내가 있는 다른 차원에서

대화가 안되는 그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낼 때...

라는 예전의 어느글을 읽었을 때도..

내가 느낀 것은..



생을 달리해서 다른 차원에 있다면

대화를 나눌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별이 힘들고 슬픈 것이다...



근조...



그래서 지금

님의 지침대로 막걸리 마시며

이 글 쓰고 있습니다...



정말 뵙고 싶었었는 데...



....

추신:
아래는 제 사이에 있는 백남준과 어느 신문사 기자와
2년전 인터뷰 한 글입니다..

영화인 여러분들도 재밌게 보세요..

이하 기사...

―지금 무엇이 제일 하고 싶으세요?
“아, 연애.”

―연애 많이 하셨잖아요.
“아직 부족해.”

―선생님 보고 다 천재라는데요.
“나 천재 아니에요. 괜한 말이야.”

―미술사에 남을 위대한 예술가시잖아요.
“남긴 남을 거야.”

―어떤 예술가로요?
“미디어 아티스트.”

―그냥 그렇게만 기억되면 섭섭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럼 어떡해.”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어때요?
“관계없어요. 난 내 일만 하면 돼.”

―연애 말고 예술 쪽에서 뭔가 하고 싶은 건 없으세요?
“책 하나 쓰고 싶어. 내 자서전. 영어로 쓸 거야.”

―제목은요?
“스크루타브루 오리엔타루(scrutable oriental).
‘알기 쉬운 동양인’이란 뜻이야. 다들 동양인 보고 ‘인스크루타블
(inscrutable)’ 하다고 하잖아.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솔직하다고.”

―한국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일 많이 하고 잘 놀라고.”

―노는 게 중요해요?
“중요해.”

―어떻게 놀아요?
“술 많이 먹으면 돼. 막걸리 먹으면 돼.”

―혹시 한국서 보고 싶은 사람 있으세요?
“작은 누이(누나). 백영득이. 못 본 지 오래 됐어. 다리가 아프대.
뼈다귀가 부러졌다고.”

―예술가는요?
“박서보. 작품이 좋으니까. 젊은 여자들도 보고 싶어. 이경희(수필가)도 보고 싶어. 애국 유치원 같이 다녔어.”(그는 또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김대중(전 대통령)도 훌륭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멋진 예술가예요?
“글쎄.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

―한국 가서 하고 싶으신 일은요?
“금강산 가고 싶어. 세 살 때 가족하고 갔었어. 제주도도 가고 싶어.”

―혹시 몸이 불편해 답답하지 않으세요?
물리 치료 열심히 안 받으신다는데.
“내가 게을러요.”

―예술가가 손이 불편하면 신경질 나잖아요.
“물론이지. 그래도 난 콘셉슈얼 아티스트(개념미술가)이니까 괜찮아. 머리 괜찮고 말 괜찮아. 답답한 것 없어요.”(그는 요즘 주로 페인팅을 한다. 물감으로 캔버스에, 오래된 TV에, 로봇에 그린다.)

―뉴욕에 오신 지 40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발표하신 지 20년이네요. 세월 빨리 가지요?
“그렇지. 할 수 없지.”

―뉴욕이 왜 좋아요?
“더러우니까 좋지. 범죄가 많고.”

―그래서 뉴욕이 좋으시다고요?
“예술이 그래야 되니까. 인생이 썩으면 예술이 돼. 사회가 썩으면
예술이 돼.”

―과거에 ‘예술은 사기’라 그러셨잖아요. 이번엔 ‘사회가 썩으면
예술이 된다’?
“그렇지.”

―무슨 뜻이에요?
“그런 뜻이야.”

―그럼 서울(한국)도 더 썩어야 예술가가 많이 나올까요?
“그렇지. 서울도 부패했지. 그러니까 좋은 아트가 나올 거라고.”

스튜디오에는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닮은 몸에 힐러리 상원의원의
얼굴이 달린 거대한 풍선이 설치돼 있다. 백남준씨는 조만간 이를
맨해튼 상공에 띄울 예정이라고 한다.

“기천달러밖에 안 들었어. 원래 마돈나로 하려고 했는데, 조수가
힐러리로 하자고 해서.”

―센세이셔널 하겠네요. 역시 ‘백남준’ 하면 ‘충격’인가요?
“그렇지.”

―의도적으로 충격을 주려고 하세요?
“글쎄. 예술가니까 아무래도. 쇼크, 챌린지….”

―예전에 한 TV 광고에서 ‘창조 창조 창조’ 하고 외치셨잖아요.
“에이전시가 하라는 대로 했어. 돈 받으려면 타협을 해야지.”

―백남준은 누구인가요?
“난 바보라고.”

―왜요?
“바보니까 바보지. 바보야 바보. 미친놈.”

―젊어서 미친놈 소리 많이 들으셨죠?
“그럼. 미국에선 아직도 미친놈이래.”

―그런 소리 들어도 괜찮으세요?
“할 수 없지. 난 스놉(snob)이라고. 명성을 즐긴다고. 돈은 없어도
명성은 있었지.”

―도대체 왜 피아노를 부수고 넥타이를 자르고 하셨어요?
“그게 다다이즘이니까.”(“젊었을 때. 케이지 만났을 때”가 제일 좋았다는 그는 인생의 가장 특별한 작품으로 ‘TV붓다’, ‘TV 정원’을 꼽았다.)

―인생은 뭔가요?
“인생은 썩은 막걸리야.”

―그게 무슨 맛인데요?
“몰라. 나도 못 먹어봐서. 시큼털털하지.”(그는 또 “죽음은 할 수
없는 것”이라며 “난 두려운 것이 없다”고 했다.)

―요즘도 신문 열심히 보세요?
“한국 신문도 보고. 뉴욕 타임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도 읽어.”

―미국 대선에 관심 있으세요?
“응. 케리가 됐으면 좋겠어. 평화주의자니까.”

―언젠간 한국에 정착하고 싶으세요?
“우리 여편네 죽으면. (애정 섞인 말투로) 우리 여편네 여간해선 안
죽어. 비디오 아트했는데 나 때문에 예술 맘껏 못해서 미안해.”


(뉴욕=정재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