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도 될 것 같았다.

sadsong 2008.10.07 22:21:14
쑤어싸이드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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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죽여도 될 것 같았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이미 결정된 것 같았고
지하철 객차 안을 징그럽도록 가득 메운 인간들은 생각없거나 예의없이 내 몸을 밀어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짜증들 때문은 아니었다.

야구모자를 쓴 내 앞의 그 남자.
왼손으로는 -모자 아래로 드러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어쩌면 두피를 긁는) 행동을
이상하리만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고급스런 휴대전화를 들고 DMB를 시청중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웃기 시작한다.

그 것이 부디 잔잔한 미소로 그치길 나는 바랐으나
여전히 뒷머리를 매만지고(또는 두피를 긁고) 있는 그의 입은 점점 벌어져 간격을 넓히기 시작하고
이제는 아예 아래 윗니가 다 보일 정도로 입을 벌려 히죽거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 것이 부디 단발성 웃음에 그치길 나는 다시 한 번 바랐으나
휴대전화에 몰입된 진실어린 눈빛과 그 해맑거나 멍청한 웃음은 그침 없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새 내 안에선 그런 그를 죽여도 되겠다는 생각이 빠르고도 굳게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가 몸을 틀 때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던 그 방송은
연예인들이 전국을 돌며 뭔가 한지랄들씩 하는 그런 오락프로그램인듯 하다. 아마도.
하지만 그 것이 어떤 프로그램이든 달라질 것은 없다.


그래,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다만,
나와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적어도 십팔분 이상의 시간을
그는, 방송을 보며 즐겁고 순수하게, 넋을 놓고 이를 드러낸 채 계속 웃었을 뿐이고
나는, 그 바보같은 웃음에 마음 튀틀려 그를 죽여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티비라는 매체에 의해, 그런 자리 그런 상황에서, 그 정도로 바보처럼 웃는 이라면
이쯤에서 그만 죽어줘도 될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그의 가족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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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된 '쑤어싸이드 밥'이라는 게임의 발칙함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나도 모를 감정으로 갑자기 그 발칙함이 떠올라 몇 년만에 그 게임을 다시 검색해 찾아냈고
오랜만에 만난 '밥'을 가볍게 몇 번 '쑤어싸이드' 시키면서는 새삼 묘한 감정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누가 장난이라도 치는 걸까.
그로부터 채 스물네시간도 지나지 않은 이른 아침에 접하게 된 가슴 멍한 '쑤어싸이드' 소식.
....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겨우 마음을 추스리면서
하필 내가 그때-왜-갑자기 '밥'을 다시 떠올려 끄집어냈고 또 자살시켜야 했던가 하는 자책 아닌 자책에 더해
그녀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이...



sadsong/4444/ㅈㅎ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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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자신도 지금쯤 후회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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