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 영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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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감독열전 (배창호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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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4월 21일 13시 01분 43초 44643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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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5월 16일 대구에서 태어나 1살때 설루 이사혔담다.

부친(배상영)께선 은행원으루 근무하다 정년 퇴직하셨다고 허넌디요

그당시 은행원이라는 직업은 시방으루 치면 잘 나가넌 뻔드 매니저나 삼송직원 보다 더 인정해 주던 시절이였응께요

아조 잘 나가넌 집안 출신이였던거 같슴다 ^^;

모친(김영숙) 여사께선 영화럴 대단히 좋아하는 주부셨다고 허넌디요

흔히들 유명한 감독들이나 영화광들은 영화럴 좋아하넌 어머니를 두고 있다넌 공통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슴다.

4남 1녀 중 3남. 유년기에는 신당동 (아..갑자기 떡볶이 먹구 싶다--;)과 성수동(아아~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59년 왕십리 --;;)에서 살았으며

이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다고 험다.





1965년

서울 중학교에 입학.

이때부터 극장안 스크린위로 어둠속의 한줄기 빛이 빚어내넌 영화에 매혹되어

막연한 동경이 시작되었다고 허넌디요...그것이 서서히 감독에 대한 인식으로 바뀌기 시작혔담다.

이것은 여담입니다만 저도 국민학교 시절 저의 시네마 천국이였던 시방은 사라진 신림동의 신림극장이나 용산의 영보극장(맞나?? --;;;) 영등포 등등에서

쫀드기 뜯어먹음스롱 쭈쭈바 물구 동시상영 영화를 여러번 보던 시절이 있었는데여

그당시 코흘리개였던 저는 영화란 단지 카메라 와 그 앞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만 있으면 만들어지는 것인 줄 알고 있던 지헌티

엄청난 복음(?)을 전해준 형이 있었넌디요...그 형이랑 애마부인을 보고 난 후

감독이 되면 뇨배우들을 맘대루(?) 할 수 있다넌, 영화에서 가장 힘쎈넘(?)이 감독이라는 말을 듣고는 뇌에서 지진이 나는거 같은 충격을 맛봤었슴다.

감독이 뭔진 잘 모르갔지만 암턴 영화에 대해서 막연한 동경 같은걸 품고 지내다가 저도 중학교 시절부터 '감독'이라는 꿈을 지니게 된거 같슴다요..

대부분 어렴풋이나마 자기 인생을 결정짓는 시기가 아마 이때쯤이 아닌가 싶슴다요






1971년

연세 대학교 경영학 입학.

(여기서 한가지 눈에 띄넌것은 나이가 만 18세에 재수 안하고 대학을 입학했다넌 거신디요..한국나이로 해도 19세..1월이나 2월생도 아닌디 워찌케 된 노릇일끄나요? 배창호감독님이 태어날 때 동사무소가 불난건 아닐꺼인디...우찌된 노릇일끄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부지가 공무원이시거나 잘 나가는 집안이면 자녀를 핵꾜에 일찍 보내기 위해서 생일이 빠르지 않아도 일년먼저 먹구 들어가게 혔담다...즉 또한번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배감독님은 잘 나가는 집안출신임은 분명한 사실인거 같슴다 --;;;;)


연극반에서 연출과 연기를 혔담다.

모르긴 몰라두 학교앞 독수리 다방 같은디서 담배 연기속에서 연기럴 논하구 선후배들이랑 후까시 팍팍 풍김스롱 인상쓰구 영화나 인생, 예술등을 논했을것 같슴다요...우겔겔

이때 같이 활동하던 냥반들이 연극계의 오태석 선생, 10여년 전인가 씨방새(SBS) 방송국 교양제작국장을 하셨던 신완수씨등 쟁쟁하신 분덜이였다꼬 허드만요

대학 3학년 때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기웃거렸다고 험다. 그란디요...감독이 되려했다기보다는 기획차원에서 접근했다는 점이 조금 이채롭슴다요.

여기서 배감독님의 첫번째 좌절이 시작됨다.

시나리오를 들구 허벌라게 돌아댕겼지만 찬바람 쌩쌩부넌 영화사들의 냉대를 받았다꼬 험다.





1977년

현대 종합상사에 취직. (미뤄짐작 추측컨디 단기사병 구신잡넌 방위 출신인거 같으요..우겔겔)

이때 배감독님의 영화인생을 결정짓는 아조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됨미다. 그 분이 누구냐 하면...바루 이장호 감독님이심미다.

배감독님은 이장호 감독님에게 '감독님 제 씨나리오 한번 봐 주실라요?'허구 내민 작품이 '정오의 미스터 리'라고 험다.

이장호 감독님께서 그 씨나료를 읽고 난 후 '흠...괜찮고만..'이라꼬 말씀하셨넌지 어쨌는진 잘은 몰갔지만 암턴 그날 이후로 용기를 얻어 배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전투력(?)이 급상승하게 뒤야다꼬 험다.





1978년

아프리카 케냐로 발령이 나서 한국을 떠나게 되넌디요

대마초 사건으루 감독직을 박탈당해서 쉬고 계시던 이장호 감독님이 다시 컴백한다넌 소문을 듣고는 급거 귀국을 하게 됨미다요

그러나 비싼 뱅기값 들여감스롱 귀국혔드니만 이장호 감독님이 복귀는 커녕 상당히 망가진? 생활을 하고 있넌것을 알게 됨미다요.

이때부터 '아, 씨바 어차피 요로크롬된거 이판사판이다! 영화에 목숨건다!' 라는 심정으로

이장호 싸부님을 모시고 둘이서 사이좋게 1년동안 충무로 낭인생활(?)을 하게 됨미다요 ;;;;

이 기간에 이장호 감독님을 따라 만화영화(애니매이숀)를 대구 등지에 배급 하게 됨미다...별다른 기록이나 야그가 없는거 봉께 사업이 잘 안됐던거 같슴다;;;






1980년

이장호 감독님의 컴백작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조감독으루 드뎌 충무로 현장에 첫발을 내딛게 됨미다요.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혔던가...뒤이어 좋은 소식이 날아듬미다.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그 옛날 문전박대 당하고 파지 취급을 당했었던 '정오의 미스터 리'가 당선을 하게 되고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자는 제의와 손짓들이 있게 됨미다.

하지만 '니넌 아즉 멀었따...쫌만 더 있다가 혀라...인자 겨우 한작품 조감독허구 무신 감독입뽕이여~!'라는 싸부님의 충고에 무쟈게 아쉽지만 일단은 거절을 하게 됨미다요 --;;;

그래서 조감독 한작품을 더 하게 됨미다





1981년

'어둠의 자식들'로 두번째 조감독 생활





1982년

아아...기다리고 기다리던 감독입봉을 드뎌 하게 됨미다. 그 작품의 제목은 '꼬방동네 사람들'!

(주 : 여기서 '꼬방'은 '하꼬방'의 준말임다. 요즘세대들은 요 말을 잘 모르시넌거 같드만요...쉽게 말해서 '따닥다닥 붙어있넌 판자집 쪽방'이라고 이해하시면 될꺼 같슴미다...그럼 고시원도 꼬방이여? 라고 물어보실분들이 계실것도 같은디요 --;;...구조만 비슷허다고 생각하시면 됨미다요 ;;')

아아...곧바루 두번째 작품을 연출하게 뒤야쓰니.. 그 영화제목은 '철인들'





1983년

'적도의 꽃' 연출 (제작 동아수출공사/ 각본 최인호/ 촬영 정광석 / 조감독 신승수 / 안성기와 '80년대 이효리' 장미희 주연)




1984년

이때 부터 배창호 감독님이 충무로의 쓰삘버그라 불릴 정도로 흥행감독으로써 떵떵거림스롱 잘 나가시게 됨미다요.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땃했네'

'깊고 푸른 밤'-아아...지금봐도 촌스럽지 않은 촬영테크닉과 감각적인 영화적 완성도...갠적으로 꼽는 80년대 한국영화 베스트 중에 하나임다.
안성기 아저씨가 택시 드라이버의 드니로 처럼 슬로모션으로 등장하던 장면이나 불알이 줄넘기 할 정도루다가 현기증나는 360도 달리 등...무척이나 한국영화 같지 않은 감각적인 스타일로 비쳐졌었던 영화임다. 이상문학상 당선작인 최인호 작가의 뛰어난 원작을 잘 각색한 작품인거 같슴미다. 미국 로케이숀 작






1985년

'고래사냥 2' 연출. 이 작품이후로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관이랄까 세계관 같은것이 바뀌기 시작함미다.


'아...나가 돈벌라꼬 영화하는 것도 아닐틴디...왜 영화럴 하는거실끄나?...과연 영화란 무엇일끄나???' 등등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일기 시작함미다.

어머니께서 독실한 크리스찬이었으나 마지못해 억지루 건성건성 교회럴 댕기다가 이 시점부터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스롱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됨미다요.




1986~7년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 '안녕하세요 하나님' 연출 (이 시절 작품들에서 배감독님은 '줌인 트랙 아웃'이나 '느린화면' '들고 찍기'등에 대한 나름의 형식적 고민을 하기 시작함미다요)

87년도 후반기에 미국 산소세 주립대학으로 부터 초청받아 <영화연출>과 <아시아 영화>에 관한 강의를 하게 됨미다.

배창호 감독님...생긴 것은 젖은 풀빵처럼 생기셨어도 영어는 세련되게 무쟈게 잘 하심미다 ^^;;;;

영화제 같은데서 보면 일부러 안그런디끼 통역을 통해서만 말씀을 나누시넌디요...사석에서 외국인들과 대화하는거 보면 민병철 어학원 수준이신거 같드만요..우겔겔





1988년

이해에는 연출하신 작품이 하나또 읍넌디요...제가 봤을적엔 배감독님헌티넌 가장 중요한 필모그래피에 해당하는 시기인거 같슴미다.

개봉당시엔 별 다른 주목도 벨다런 평가도 받지 모댔지만

영화 매냐덜들로부터 재평가와 지지를 받고 있는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배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시고 감독이 아닌 연기자로 등장한 영화가 있었으니...뚜둥~! 그 제목하야

'개그맨'! -자신을 천재라고 믿고 있는 삼류인생들의 꿈이야기... (--)b

사실 영화광들 사이에선 배감독님의 작품 세계가 변하기 시작한것이 이명세 감독님이 조감독으루 들어와서 부터라넌 폄하성 평가도 있넌디요

분명한건 배감독과 이명세 감독님 두분은 서로가 깊은 영향을 주고 받은것이 사실인거 같슴미다.


그나저나 볼때마다 머리털이 시원해 보이시넌 이명세 감독님은 시방 뭐하구 계신지 무쟈게 궁금합니다. 시방도 미국에 계심미까요?



허리우드에서 성공하넌 최초의 한국감독님이 되시길 기대하며...(__)








1990년

인생은 일장춘몽이였던가...'꿈'을 연출하게 되심미다.


1992년

'천국의 계단'-동아수출공사 제작, 최인호 원작.각색, 정광석 촬영.정성조 음악. 김현 편집. 이아로 안성기 박찬환 출연


1993년

이 해도 배감독님 연보에서 중요한 대목인거 같슴미다.

왜냐하면 나이 40넘어서 인떼리어 디자이너 김유미씨랑 결혼을 하게 되시거덩여..

그 경험이 감독님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후에 나온 제작.각본.감독.공동주연을 하신 자전적 영화 '러브스토리(1996년)'나 김유미씨 주연의 '정(1999년)'이라는 작품에서 잘 드러납미다요.





그 밖에 군대가기 전의 이정재 델꼬 찍은 '젊은 남자(1994년)'나 최근 제6회 부산국제 영화제 개막작인 '흑수선' 이 있넌디요

두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생략하겄슴다.

단, 배창호감독님의 감각적인 스타일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순 있지만

뭐랄까 ...예전의 감각을 재탕?한다는 듯한 인상도 짙고

악전고투해감서 제작까지 겸한 '러브스토리'나 '정' 등의 작품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게 느껴져서리

갠적으론 쩜 깔짝지근한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임다.



-----------


애초에

신상옥-이장호-배창호-이명세 감독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충무로 감독님들의 계보에 대한

연보를 기획했었넌디요...

자료가 부족한 관계루다가 다음 편은 김기영 감독님으루 허겄슴미다요...

어쩌면 전혀 따런 주제를 가지고 글을 올릴 수도 있을꺼 같은디요

제 글이 퍼갈 가치가 있다면언 을매든지 퍼가시씨요...누가 썼는지 출처 안 밝혀도 상관읍꼬 생각을 훔치먹어도 상관없슴미다.


열분 모두 훌륭한 영화인이 되시넌디 쬐깐이라도 돔이 뒤얐길....


(__)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truerain
2004.04.26 22:34
제가 <황진이>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카메라가 멀리 떨어져서 잡은 장면화였습니다
<황진이>는 파나비젼 카메라로 찍었던 것 같구요 정일성 촬영감독과 일했던 것 같아요

<황진이>의 형식에 관해서는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이 글을 많이 썼습니다
<한국영화감독열전?>인가 이효인씨가 열린책들에서 낸 책을 한번 보세요

96년 제가 군대가기 전에 남산 감독협회시사실에서 <러브 스토리>시사회장에서
배감독님을 봤던 기억이 있네요
writeroh
2005.04.06 06:29
음...
역시 늦게 봤네요...
개인적으로 이장호, 배창호로 이어지는 나름대로의 한국영화의 뉴웨이브를
사춘기때 몸소 체험했던지라...
지금 생각해 봐도 짜릿합니다. 그때의 꿈은...
무릎... 외인구단...고래사냥...깊고푸른밤... 흠...흠...
아마도 두분 감독님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고생을 안하고 잘먹고 잘살고 있을텐데... 흑흑...
스텐리 큐브릭, 알란파커, 이런 분들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 우리 감독님들 임다.
깜짝! 개인적으로다가 생각해 보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첨성대 앞에서의
줌앤 트래킹이란....
음... 내가 스크린으로 들어가는건가? 아님 스크린이 나에게 다가오는건가?
그때 남산시사실의 기억을 떠올리면.... 전율이 옵니다.
neosane
2008.08.19 10:44
무지 잼있게 읽었슴당. 또 올려주세요.
cineverite
2009.04.28 15:55
갑자기 배창호 감독님의 <개그맨>에서 하셨던 주옥같은 대사 "라면은 역시 민자 라면"이 생각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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