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 영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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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뉴 웨이브

venezia70
2005년 01월 13일 13시 27분 04초 412231
홍콩 뉴 웨이브






1. 홍콩 뉴 웨이브의 배경

1970년대의 홍콩 영화는 추문회의 골든 하베스트(Golden Harvest)사가 등장하면서 새롭게 시작된다. 당시 쇼 브라더스는 삼류 폭력 영화와 외설 영화 등을 제작하며 거대한 신체를 가누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후 참모였던 추문회가 런런쇼와 심한 견해 차이를 견디다 못해 따로 독립해 골든 하베스트사를 차린 것이었다. 이 때부터 홍콩 영화는 상업적으로 크게 변모하면서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길이 열리는데, 그것은 홍콩 영화의 중요한 시장 정책의 하나인 스타 시스템을 통해서 였다. 이소룡을 내세운 <당산대형(1971)> <정무문(1972)> <용쟁호투(1973)> 등은 일본,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본격 쿵후 영화의 시대를 열었고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1973년 이소룡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쿵후 영화의 붐은 급속도로 식어버린다.

1972-74년에 걸친 홍콩 사회는 대형 뇌물 사건으로 인한 경제 불안과 기존 정부에 대한 불신 풍조 등으로 몹시 불안한 사회였다. 이러한 불안한 사회 위기와 맞물려 허관문의 코미디 영화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데, 소시민의 모습으로 일종의 사회적 무정부주의 웃음을 보인 <귀마쌍성(1975)> <매신계(1978)> 등이 그 대표작이다. 허관문의 코미디 영화는 무엇보다 홍콩 사회의 자화상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70년대 후반에 이르면 성룡과 홍금보 등 우스꽝스럽고 괴이한 쿵후 코미디 영화 - <취권(1978)> <소권괴초(1979)> 등- 가 등장해 관심을 끈다. 하지만 이러한 코미디 시리즈들은 인기에 편승한 수많은 모작을 탄생시키면서 그 세력을 잃어가는데, 초반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분위기로 가면서 코믹 쿵후물 자체가 홍콩 영화의 주류로서의 자리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단순한 오락물로서의 코미디 영화들이 사라지면서 홍콩 영상 문화에 커다란 지각변동 분위기가 일어난다. 그것은 TV 쪽에서 먼저 시작됐는데, 이른바 ꡐ홍콩 뉴 웨이브ꡑ라고 일컬어지는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4,50년대 홍콩에서 출생하여 어려운 홍콩의 60년대를 겪으면서 성장했으며 외국에서 체계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해외 유학파들이었다. 먼저 TV로 입문한 이들은 서구의 영화 이론과 작품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고 더욱 진지한 자세로 자신의 작품에 몰입해 갔다. 정확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그들의 세계관은 실험적인 기술의 시도와 세련되게 다듬어진 세밀한 시각적인 요소의 활용을 통해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졌다. 그러나 계속될 줄 알았던 홍콩 TV의 황금기는 갑작스럽게 종결되고 많은 스탭들이 TV를 떠나 영화로 한꺼번에 흘러들었다. 이로써 홍콩 영화는 과거의 구습을 타파하고 기존의 가치들에 도전하며 새로운 형태를 띄게 된다.

2. 홍콩 뉴 웨이브의 경향

홍콩 뉴 웨이브 감독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전통과의 결별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 감독들과는 달리 홍콩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홍콩식 교육을 받은 홍콩인들이었다. 이전에 등장한 감독들은 대부분 대륙 출신, 특히 상하이 영화 산업에서 일하다가 홍콩으로 넘어온 사람들이라 항상 대륙에 대한 향수나 미련이 영화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뉴 웨이브 감독들은 이전과는 다른 의식이나 경험, 기억을 가지고 그것을 영화에 투사했다. 그들은 서구에서 영화교육을 받아 미학적인 영역에서 좀더 서구화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홍콩인의 관점으로 문제와 사회적 쟁점을 보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전 감독들이 보여준 중국 문화가 아니라 홍콩 문화가 그들의 준거틀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들은 단순히 대중적인 문화에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전통 속에 존재하는 홍콩 무산 계급의 미학을 반영했으며 문화 자체를 변화시키려 하였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나타난 몇가지 대표적인 변화를 살펴보면, 첫째 영화의 미학적인 면에서 홍콩의 현실인식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서 광동어 영화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점, 둘째 작품성이 높아졌으며 작업과정 전반에서 기술 스탭들이 더욱 분업화되고 그 중요성이 인식되었다는 점, 셋째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관념이 구체화되고 마케팅 개념이 바뀜으로서 몇 십년동안 홍콩 영화시장을 양분해 오던 쇼 브라더스와 골든 하베스트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독립 프로덕션의 성장세가 확연해 졌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홍콩 뉴 웨이브는 젊은 세대들의 높은 창작 열기와 기술적인 부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기는 하였지만, 상업적 압력과 영화 산업에 대한 기업적인 인식으로 인해 문화 운동의 기틀을 확고히 마련하지는 못했다. 또한 뚜렷한 역사의식과 문화적인 깊이가 있는 영화들을 만들지 못했고, 그래서 새로운 문화 운동으로 발전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홍콩 뉴 웨이브의 자극은 기존의 오락만을 지향하던 성향을 변화시켜 예술 영화를 고집하는 감독들의 등장을 부추겼으며 다양한 특징들의 감독을 낳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다양한 감독들의 존재로 인해 1997년 중국 반환 전까지 급속한 발전과 활발하고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다.

3. 대표적 감독과 작품들

1) 허 안화

허안화는 <풍겁(1979)>으로 영화에 데뷔했는데, 어떤 ꡐ망령ꡑ을 주제로 한 이 영화를 통해 점프 컷과 미장센, 절묘한 스토리 텔링을 사용함으로서 다이나믹한 심리 묘사를 보여주었다. 이후 광동 오페라단의 귀신 소동을 그린 <당도정(1980)> , 이국의 위험한 상황 아래서 살아가야 하는 두 베트남계 중국인의 이야기를 그린 <호월적고사(1981)> <투분노해(1982)> <객도추한(1990)> 등 대표작들을 만든다.

<풍겁>과 <당도정>이 현대 홍콩과 과거 중국의 비교 속에서 오늘 홍콩의 주체성을 묻고 있다면, <호월적고사>와 <투분노해>는 무대를 베트남으로 옮겨 패망한 베트남의 운명과 1997년 이후 다가올 홍콩의 미래를 비교하면서 홍콩의 시대 정신을 담고자 했다.

허안화는 홍콩이라는 상업 장르의 영화 생산지에서 ꡐ작품ꡑ을 했다는 것으로 홍콩 뉴 웨이브의 대표자로 인식되고 있다.

2) 방 육평

방육평은 홍콩 영화 산업 속에서 장르 영화에 대항해 유일하게 리얼리즘 영화를 고집하는 홍콩 뉴 웨이브 중에서도 특별한 감독이었다. RTHK 방송국 시절부터 리얼리즘 영화를 만들었던 방육평은 1981년에 진검의 영화인 <부자정>을 리바이벌하여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를 그린 영화를 만들었다. 이 우울한 홈 드라마에서 그는 홍콩이 산업화되어 가면서 힘을 잃어가는 ꡐ가부장의 권위ꡑ를 눈물겨운 사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다루면서 사실성을 위해 배우 아닌 실제 인물들을 기용한 <반변인(1983)>을 만들어 리얼리즘 영화를 추구하였다. 이후 다큐 드라마 형식을 띤 <미국심(1986)> <무우(1990)> 등을 통해 49년 이후 홍콩의 사회문제, 이민, 산업화, 가부장제의 붕괴, 신세대의 고민과 갈등의 진솔한 파노라마를 담아냈다.

3) 서 극

홍콩을 하나의 미스테릭한 유령도시로 생각하는 서극은 스튜디오에 인공물들을 세워놓고 그 ꡐ거짓ꡑ 속에서 홍콩의 소우주를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신경질적인 긴장감과 아나키스트적인 도덕관이 주를 이루는데, <접변(1979)> <제일유형위험(1980)><도마단(1981)> 등의 작품은 주인공이 아무런 이유없이 사건에 휘말리는 모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983년 그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SFX 팀을 초청, 옛 중국 이야기에 테크놀로지를 결합시킨 환상적인 SF검술영화 <촉산>을 만들었으나 외국에서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홍콩 내에서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그는 한계를 느꼈고 그 부담은 ꡐ상업적인 예술영화ꡑ보다 ꡐ진짜 상업 영화ꡑ 를 만들어야 하는 위기로 다가왔다. 결국 그는 과거의 심각했던 작품 분위기와 달리 오락적이며 재미 위주의 경향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그는 홍콩 영화에 SFX를 본격 도입했으며, 홍콩 느와르를 만들어 냈고, 검술 영화를 부활시켰으며, 헐리우드 뮤지컬을 북경 오페라와 접합시키는 등 홍콩 영화 시스템을 바꿔놓은 개척자로 기억되고 있다.

 

[참고 문헌]

1. 아시아 영화의 이해(주윤탁, 김지석 편집) - 제3문학사
2. 아시아 영화를 다시 읽는다(김지석) - 한울
3. 세계 영화 기행1.2 (조재홍 외) - 거름
4. 영화론의 전개와 제3의 영화(김정옥 외) - 시각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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