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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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아프지 마세요

jelsomina jelsomina
2003년 11월 21일 06시 00분 24초 1592 24 6
요즘 며칠 아팠습니다.
몸이 아프게 된 후에야 건강을 생각하는건 정말 바보같은 일입니다.

먹지 말라는건 먹지 말기.
하지 말라는건 하지 말기.
가끔 산책이라도 하기.
술 많이 먹지 말기.
담배 줄이기.
낮에 일하고 밤에 자기.

간단한 몇가지만 실천하면 될것을 꼭 몸이 엉망이 되고나서야 왜 그걸 못했을까 후회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몸이 안좋을때는 집에 갑니다.
집에 가서 어머님이 끓여주신 죽을 먹고 된장국을 떠먹고 조금 기운을 차렸습니다.

집이란 그런데 같습니다.
나가서 몸이 망가지면 돌아가는곳.
맘이 망가져도 돌아가고,
쉬고 싶을때 돌아가는곳.

새벽에 조금 나아졌길래 일어나서, 차 트렁크에 쳐박혀 있는 인라인을 꺼내 들고는 아무도 없는 강변길로 나갔습니다
삐뚤 삐뚤...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본 걸 흉내내며 타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단지 한 구석 테니장에 농구대가 고쳐쳐 있는게 보입니다.
금새 농구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공이 어딨더라 생각을 하다가 공은 사무실에 있는걸 깨닫고는 그 길로 차를 몰고 사무실로 갑니다.
새벽에는 천천히 가도 20분이더군요. 덕소에서 옥수동까지 ...
새벽길을 운전하는건 맨날 집에 갈때 하는 일이긴 하지만
몸이 아픈후에 조금 정신을 차리고 차 창을 다 내린채 찬 바람을 맞으면서 천천히 새벽길을 달리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새벽 4시 넘어 사무실에 갔더니 시나리오 쓰고 있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오전 오후 야간반으로 운영(?) 됩니다.

농구공을 들고 "한판? " 하고 물으니 오케 하고 바로 따라 나섭니다.
찬 이슬을 맞으면서 장충동 공원에 가서 1:1 을 했습니다.
10:9.... 졌습니다.

내가 너 이기고 나서 농구 안한다고 했더니 도대체 언제까지 농구를 할 참이냐고 묻습니다.
한 살만 젊었어도 이길 수 있는데...

돈이 없어서 후배는 장충동 공원에 운동나온 할아버지한테 1400원을 달래서 미지근한 포카리를 사오고
저는 사무실 옆 편의점에 가서 외상으로 빵과 김밥을 샀습니다.

참 좋죠 ?

아프면 돌아갈 집이 있고, 어머님은 맛있는 죽을 끓여주시고
새벽길을 달려가도 같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처음보는 젊은이에게 선선히 1400원을 기분좋게 뜯기시는 공원의 할아버지
가끔 보는 사이라고 빵과 우유를 외상으로 선선히 내 주는 가게 아저씨 ..

뜬금없는 말이라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행복한 과거의 기억을 남기려해도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 후배가 묻더군요.
지난날이 행복했냐고 후회는 없냐고 ...~

잠시 생각하고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살아도 이번 생을 산것 처럼 살았을것 같습니다.

공부는 열심히 안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게으름을 피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었고
늦었지만 일에도 매진한것 같습니다.

공부도 조금 더 열심히 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없는건 아니지만
조금 후회할 일도 남겨두는게 더 사는것 답다고 생각합니다.

후회할 일이 정말 없는 사람따위는 되고 싶지도 않고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두기도 싫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혼자되서 아프면 어떡하나.
들기름을 넣고 달달 졸인 맛있는 죽은 누가 끓여주고 된장국은 누가 끓여주나
하지 말라는짓 왜 하냐고 누가 날 타박해줄까 ..
그래서 같이 살 사람이 필요한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요.

조금 나랑 맞지 않아도 조금 미워도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혼자 있을때는 아프지 마세요.

- 조금 정신을 차리고 횡설수설 하고 싶은날



젤소미나 입니다.
2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vincent
2003.11.21 11:11
지금보다 한 열살쯤 어렸을 때, 먹기만 하면 게워내고 비척비척 마르고 온종일 피로하고 머리속은 늘 안개처럼 뿌옇고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아주 심한 위염 정도였어요. 겨우 위염인데 이렇게 난리법석인 걸까. 한숨만 푹푹 나왔지만... 음식을 못먹을 정도였으니 하는 수 없이 휴학을 하고 한 몇 개월은 병원에서 준 약 먹으며 밀가루음식, 커피, 술, 육류 등을 피하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다간 아예,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이라는 걸 가서 수도승처럼 살았드랬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산책을 하고 돌아와 누룽지를 끓인 가벼운 아침을 먹고 신세 지던 분 생각해서 오전엔 성경책을 읽고 싱싱한 채소, 두부나 된장찌게 같은 콩류 위주의 점심을 먹고 오후엔 싸짊어지고 간 제가 읽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읽었어요. 다시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해가 채 지기 전에 먹는 가벼운 저녁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산등성이로 해가 넘어가는 걸 볼 수 있었죠. 그리고, 따뜻한 구들장 방바닥에 깔아놓은 부드러운 요 위에 엎드려 글이랍시고 끄적대다 보면 졸음이 밀려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있었는데... 정말 아주 건강해져서는 집으로 돌아왔었어요.
그 후에도 간간히 재발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좋아졌었어요.
저렇게 살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가급적 노력하면 좋아지겠죠. 무엇보다 남들 잘 때 자고 남들 깨어 있을 때 깨어 있는 생활이 가장 중요한 거 같네요. 그리고... 일단 얼른... 병원부터 가보세요. --;;;
73lang
2003.11.21 13:03
혼자 있을때 몸이 아프면언 증말루 서럽드만요...

몸이 아니라 맴이 아프면언 몸이 시키넌대루

졸리면 자구 배고프면 먹구 똘똘이가 외로워 허면 한번 흔들어 주면스롱 위로도 해주구;;; ....

그냥 몸이 시키넌대루만 해도 어느 정도넌 아픈것이 나아지지만

몸이 아프면언 암것도 읍더만요....

건강 챙기시씨요잉 ^^;;;;
sada9292
2003.11.21 13:13
현재 엄마가 빈혈인데-- 그래서 점 혈액원 가서 피를 뽑았죠~~ 간호사 누나가 쌀음료랑 뽀뽀과자 주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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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I
2003.11.21 13:46
'지금 무슨 농구예요..' 하는 후배에게 '가자면 가지 말이 많아! 빨리 따라와-' 하고 땡깡을 부렸을것이다...분명히.
그 할아버지.... 새벽에 공원에서 강도를 만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든 생각하나....깡패들이 애들 삥 뜯다가 한 몇십만원쯤 횡재를 하면..그때 그들도 '세상은 참 살만해'라는 생각을 할까?
..아팠구나..... 갈치를 너무 많이 먹었나?
vincent
2003.11.21 14:40
제다이님 리플을 보니,
그리고 미나언니와 그 후배님을 새삼 떠올려 보니...
어쩐지,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
uni592
2003.11.21 16:56
정신과를 먼저 가세요. 밤생활을 바꿔달래요. 그리고 가평나들이 가요.
simplemen
2003.11.21 19:56
가평나들이....아 삼겹살 먹고 싶다...
혼자 사니까 ....왜이리 고기만 땡기는쥐....
매일 삼겹살 먹으면서 시나리오 쓰면 건강해 지려나...콜록콜록
cameo
2003.11.21 21:07
몹시 아프셨을텐데 그런데.. 글을 읽어보니까 너무 아름답게 아파버리시네요.
짱이시여~ 옥체를 잘 보존하소서..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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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3.11.21 22:11
농구도 끊으셔야 한다니까요.
의사들은 말합니다. 건강을 위해선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단,
연령대에 맞는 운동을 하라고. (--) (__)
(허재선수는 뱀이라도 많이 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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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va
2003.11.22 01:16
하고싶은것들...하는 것들..다 건강이 제대로 행하여질때 이룰수있고 행할수 있는것들입니다..건강하세요^^*
marlowe71
2003.11.22 02:02
같이 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군요... 크지 않은(?) 병으로 그런 결론을 얻으셨다면 횡재하신 것 아닌가요. 이제 실천하는 것만 남으셨군요. ^^ 그나저나, 인라인같은 걸 타시는 줄을 몰랐구먼요. 상상이 잘...
uni592
2003.11.22 04:23
정리하면 농구를 중단하고 뱀을 먹고 가평나들이를 갔다가 결혼만 하면 되는 것인가...
silbob
2003.11.22 18:51
다음 세상에 돌로 태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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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somina
글쓴이
2003.11.22 20:29
가평이 그렇게들 가고 싶다면 ... !
근데 다음세상엔 돌로 태어나라니 ???? --?
pinkmail
2003.11.23 02:45
날씨 좋을땐 잠잠하다가 왜 꼭 추워져야 가평 얘기가 나오는 걸까.
번개탄 삼겹살은 먹고 싶고, 추운 날씨에 움직이긴 귀찮고...
배달은 안될까여?
pinkmail
2003.11.23 02:55
스필버그 아저씨는 크랭크인 들어가기 6개월전에 체력강화운동부터 시작한다던데(아..역시 프로다운 면모,,,)
류감독님이 건강해야 건강한 영화가 나오져..
하나찍고 문 닫을꺼 아니면 계약금 받는즉시 헬쓰장으로 먼저 달려가심이...
jedi 도 꼬셔서 같이 가면 더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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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3.11.23 18:55

헬쓰장. 여관이름 같아요.
젤쏘미나님이 제다이님을 꼬셔서 헬쓰장 여관엘 드나들고, 핑멜님은 오히려 그것을 고마워 한다?
음....

(이하 존칭 생략)
헬쓰장여관 출입이 빈번해질수록 '핼쑥'하던 젤소미나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영문도 모른채 헬쓰장을 따르던 제다이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만 가는데....
헬쓰장 근처 한강변에서 젤쏘미나의 포르쉐급 프라이드베타 도난사건발생.
상황정리 잘하는 비밀요원 오구리 급파. 헬쓰장 주변부터 정리시작.
그들이 묵던 헬쓰장여관 404호실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들.
침대밑에서 발견된 뱀술. '술병 속 그 뱀은 모든것을 알고있다.'
제다이의 헬쓰장 출입을 고맙게 생각했다는 핑크메일의 밝혀지지 않는 알리바이.
404호실 바로 윗층에서 횡재감별사 자격증 시험공부중이던 장기투숙자 미소년 말로위.
여관 뒷산에서 수도승처럼 살고 있는, 책을 든 신비소녀 빈센트.
젤쏘미나에게 돈 뜯긴 할머니실밥이 남긴 섬뜩한 한마디. "자넨.. 전생에 돌이었구먼...."
서서히 드러나는 헬쓰장의 실체.

가평 헬쓰장여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숨막히는 써스펜쓰!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음모!
2004 최고의 화제작 "헬.쓰.장." 개봉박..해.


그만.. 제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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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somina
글쓴이
2003.11.23 19:14
ㅋㅋㅋㅋㅋㅋ ㅎㅎ
pinkmail
2003.11.23 21:10
sadsong 은 아무도 못말려....^^
pluie
2003.11.23 21:36
그날 새벽시간을 젤소미나 선배와 함께 보냈던 후배입니다.
찬찬히 읽어보니 일면 잔잔하고 가슴따뜻한 글이기는 하나, 몇군데 왜곡이라기 보단 필요이상 서정적으로 덧칠을 한 면이 있어 바로잡습니다.

그날의 스코어 10 : 9 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치 아쉽게 진 것처럼 묘사됐는데, 그날 제 컨디션이 근래없이 꽝이었고 그 틈을 타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한살만 젊었어도.. 운운하는 것은 타인과 자신에 대한 동시기만입니다. (물론 저도 요즘 길거리에서 플레이하는 20대 초반들에 비해 한참 기량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젤소미나 선배의 하염없이 정적인 몸놀림과 방향만 맞으면 대충 던지고 보자는 슛에 비해 다소간 우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원에 운동나온 할아버지한테 1400원을 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주셨다..
그 시간은 노인들이라 해도 운동 나오기엔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공원엔 우리를 제외하고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아무리 낯짝이 두껍기로소니 지나가는 할아버지한테 삥을 뜯겠습니까?
그 할아버지는 정신이 좀 나갔거나 만취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멀쩡히 지나가는 저를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큰소리로 불러세웠고 자꾸 옆에 앉히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어이없음에 어이없음으로 맞대응을 한 것입니다.
그 할아버지에게 받은 돈으로 포카리 두개를 자판기에서 뽑고 전 거의 도망치듯 뛰어왔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이상한 세상입니다..

가끔 보는 사이라고 빵과 우유를 선선히 외상으로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때 배가 몹시 고팠는데 둘다 돈이 한푼도 없어서 어쩔수 없이 한 일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외상으로 빵과 우유를 얻어먹는 삼십대 초반과 삼십대 후반.. 그때 느끼기에 모양새가 심히 좋지 않았고 일면 자괴감마저 느껴졌습니다. 마침 빵과 우유도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이라뇨..


행복한 과거의 기억을 남기려해도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물론 훌륭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역시 그 앞의 단서대로 참 뜬금없는 내용이고 그날의 에피소드에서 이런 멋진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젤소미나 선배는 후회로부터 너그러워지자고 하셨습니다.
자꾸 도박하는 자신이 싫어 오른손을 짤라버리고는 얼마있다가 왼손으로 도박을 재개하는 한심함을 꾸짖는 말씀이겠지요.
그래서 저도 후회할 일을 남겨놓기로 했습니다.
vincent
2003.11.23 21:42
음.. 역시 그런 거였군요.
훨씬 두 분 캐릭터나 정황에 들어맞는 진술입니다.
그리고..쌔드송은..
우리를 갑자기 영화에 출연시키고 어디 도망갔나 했더니,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되셨군요.
- 짱구는 장난에 불과했다,
2003년 마지막을 수놓을, 실사를 능가하는 풀3D 애니메이션
"쌔드쏭은 아무도 못말려"
Profile
JEDI
2003.11.24 17:15
야동 운운하는 유언비어 유포죄로 위에 위에 글 삭제대상...
cryingsky
2003.11.27 17:36
같은 상황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엇갈린 상호 진술.
그 틈바구니에서 탁구 시합 때 공 가는대로 이쪽저쪽 왔다갔다 고개를 돌리다 보니, 목이 뻐근합니다요.
젤소미나 언니 무조껀 건강하세요~!
uni592
2003.11.28 20:55
절 자꾸 호출하지 맙시다. 그렇잖아도 바빠서 오늘 이제 한끼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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