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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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보호자답게, 어른답게

vincent
2003년 10월 23일 08시 14분 05초 1089 5
할머니께서, 의사들말로는 "슬립 다운"하셔서...(그냥 넘어졌다고 하지)
남들처럼 매일 출퇴근하는 인생이 아닌 내가
병원으로 출퇴근, 야근, 숙직(?)까지 하고 있다.
누군가 병원에 입원하면...
거의 늘, 만만한 사람이 나라서
그 때마다, 이직(할 수만 있다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이 병원은 다른 대학병원과 달리 의사들이 친절하고
병원도 지은지 얼마 안돼서 청결하고...
무엇보다 집에서 가깝고...
별 네개 반은 줘야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관심사가 다양하고 사춘기 소녀처럼 호기심 많은 할머니께서(참고로, 우리 할머니는 아흔이시다, 아흔.)
심심해서 싫다고 고집을 부리셔서(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담주시려고..겠지만)
병실을 (사실상 1인실이었던) 2인실에서 6인실로 옮기자마자
별을 하나 반은 줄여야했다.
확실히 의사들이 아주, 조금, 약간, 살짝 달라지더라.
그래도 여전히 다른 병원들보다는 별 두 개 반은 높다.
(흠... 그렇다면, 다른 병원들의 별점이란.. 투명 별 하나쯤.. --)

척추뼈 그러니까 위에서 두번째 뼈가 골절이시라
예전에는 째고 벌리고 갈고 기타 등등 말로 옮기기 험한 수술을 감행해야했으나
요즘엔 주사기로 시멘트같은 액체를 주입하여 뼈를 고정시키면 된다하니
참으로, 세상 좋아졌다, 는 말을 오래간만에 입밖으로 내어본다.

어제 아침 회진.
그 때 담당교수가 이러저런 수술방법이나 진단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거라고 하여
긴장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이 환자 저 환자 돌아보던 교수양반,
내가 보호자랍시고 우뚝(?) 서 있었더니 아래위로 훑어본다.
나도 같이 아래위로 훑어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꾹 참았다.
(키가 커서 위아래로 훑어보기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다는게 정확할 것이다)
옆에 서 있는 주치의 레지던트가 우물쭈물 보호자라고 날 소개하자
담당교수 내게, 어른은 안계시냐고, 묻는다. 어른! 어른!

"제가 어른인데요"라고 하려다가
이 무슨 어리버리 코메디 대사인가 싶어서
그냥 미소(?)만 지어보였다.
나보다 몇 살은 젊어(?) 보이는, 레지던트가 난감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본다.
이 상황에서 내가 주민등록증 꺼내 보여주면 그 얼마나 웃기는 코메디일까,
나름대로 재밌는 상상이 머리속을 통과할 즈음
"이따가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러고 바쁘신 담당교수님, 잽싸게 자리 뜬다.
친절한 레지던트, 친절한 미소(?)를 던지더니 사라진다.

가끔 전화기속 목소리들이 "어른 안계시냐고" 말을 깔 때,
조카가 불쑥 "근데.. 고모는 몇 살이야?"라고 물을 때,
문구점에서 나의 질문에 아저씨 혹은 아줌마가 "그거 준비물이니?"라고 물을 때,
은행이나 병원이나 기타 등등 어른스럽게 보여야 유리한 장소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너 지금 몇 살이냐."  --;;;;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bekgu
2003.10.23 09:22
시간이 지날 수록 주변에서 아프신 분들도 자꾸 생기고 ...
걱정도 같이 동행하고...
힘 내시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
그리고 말하세요. 먹을 만큼 먹었어~
uni592
2003.10.23 10:49
병원보호자생활도 만만찮은건데. 고생하십쇼. 요즘 병원엔 돈내구 하는 인터넷두 있더구만. 흠흠. 나이는 빈센트님이 어려보이시나부죠. 좋은거라 생각하세요~(아흣 그심정잘알죠. 그래서 전 되려 역이용하는데. 어른오시면 말씀전해드릴께요~라고~)
73lang
2003.10.23 14:12
저도 나이에 비해 무쟈게 동안인디요...워떤 헤어 스딸이냐에 따라서 사람덜의 태도가 많이 틀려지드만요...

헤어가 누드일때(?)넌 사람덜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스롱 피해댕기구...^^;;;

헤어가 스뽀츠 일때넌(거기다가 학생 가방 같은거 둘러메고 있으면언) 요즘에도 담배럴 살띠마다 '어린것이...싸가지가 읍고마~!'허넌 표정으루 민증얼 보여달라꼬 허넌 경우가 종종있슴다요...

그러다가 난중에 제가 30대라넌 것이 밝혀지구 난 후의 사람덜 표정이나 반응이 증말루다가 재미난디요..

지넌 그런 것을 즐기넌 편(?)임다요

한번은 술집에서 술얼 먹고 있넌디 핏덩어리 (?) 종업원이 아조 싸가지 읍넌 말투로다가 사람얼 위아래루 훑어보면스롱 '저 ..몇 년생이씨요? 신분증 까보씨요! ㅡㅡ;;' 허길래

'이-그랴~! 니부텀 한번 까봐라!' 혔던적이 있슴다요 ^^;;;

장발로 기르고 싶은디...머리럴 기르면언 지 머리카락이 꼬추카락(? --;;;)이라 항시 짧은 헤어스타이럴 유지하구 있슴다요

장발일때의 사람덜 반응언....

주로 외국인 로동자덜이 처음 본 넘덜이 막 친한척 허면스롱 지네나라 말루 말을 걸어오드만요...

주로 필리핀 쪽 아덜이...따갈따갈 대면스롱...'니넌 워떤 섬에서 왔냐?...나넌 바기요 출신인디...' 뭐 대충 이런식으루다가...

우겔겔...

할머니께서 무척 정정 하신가 보고만요...

시간의 흐름 앞에서 무력한게 인간입니다요

빈센트 님의 동안도 할머님의 연세도...

병간호 잘 허시씨요잉...


....................영화럴 꿈꾸며 뇨(女)자럴 꿈꾸넌 당랑타법 1분에 14타
vincent
글쓴이
2003.10.24 08:19
병간호랄 것까진 없고.. 그냥 옆에서 자리 지키고 있는게 전부인걸요.
제가 '동안'이라는게 아니라... --;;;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못하는구나... 하는게 조금 반성도 되고 해서요. ^^
걱정&위로 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rosso
2003.10.24 16:53
저는 얼마전에 혼자 스캔들을 보러갔는데 신분증 안보여주면 입장 안시켜준다하기에^^;
웃으면서 저 25이거든여. ^^했져.
20살 언저리 되었을 알바생이 말귀 못알아먹고 계속 신분증 제출을 요구하드라구여. 인상한번 써줬더니만...ㅋㅋ
하는 야그가...입구에서 안들여보내줘도 자기 책임아니라면서! 표를 주데여.ㅋㅋㅋ
첨엔 내가 고딩처럼 보이나? 아이구~ 좋아라~...했었는데, 어딜가나 신분증 보여달라구 그러믄 짱나여.
빨간립스틱이라도 발르고 다닐까봐여.^=^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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