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은 붓을 가리지는 않지만 세필로 굵은 선을 그을 수는 없겠지요. 연필 하나로도 좋은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연필로 수채화는 못 그리잖아요. 비용 문제로 카메라와 한정된 렌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장비로 가능한 영상을 만들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좋은 카메라이고 오히려 렌즈의 제한이 더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카메라고 좋은 렌즈입니다. 좋은 촬영 하세요.

가지고 있는거 쓰세요.

 

 명필은 너무 실력이 좋아서 붓이 나빠도 잘 찍으니 질문하신 분도 그정도로 실력을 키우라는 의미도 아니고, 제발 어느 붓이 나쁜지 좋은지 실제로 그 차이를 말할 수 있을 수준까지는 기종 타령좀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차이인지 스스로는 느끼지도 못하면서 남들이 좋다는걸 무작정 써보고만 싶어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거든요. 이왕이면 좋은거 쓰면 좋지 라며 자기가 모자른걸 하드웨어가 조금은 보완도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이런 자세는 오히려 실력향상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고, 그 결과가 좋게 나오는데 카메라 기종때문에 2% 아쉽게 나왔다면, 그때 카메라 기종을 고민하면 됩니다. 

 

 색보정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기종으로 촬영한 결과물을 많이 접하는데, 카메라 기종이나 렌즈 차이가 보이려면 기본 미술, 조명, 의상이 다 채워진 상태에서 마지막 1% 2% 싸움일때 카메라 기종이나 렌즈 차이가 보입니다. 비싼 카메라는, 섬세한 질감을 잃지 않고 표현해 주지만 그 질감이 보여질 상황까지 미술과 조명을 세팅이 되어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비싼 카메라가 섬세한 질감을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게 없죠. 비싼 렌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색수차나 왜곡이 없는 결과물을 보여줍니다만, 대부분의 촬영은 특수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 집니다. 그러니 몇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차이가 잘 안보이죠. 만약 전체적으로 좋았는데 특정 장면에서의 색수차 때문에 영화 내용이 파탄났다면, 그때 렌즈 교체를 알아보시면 됩니다. 아마 그럴일은 절대로 없겠지만요.

 이런 상황 상정해 보시면 될거에요. 만듬새가 좋은 영화를 떠올려 보세요. 그거 다운로드 서비스로 보면, 압축 코덱이라 섬세한 질감은 다 뭉개고 보여줍니다. 그게 영화의 감동을 방해 하나요? 엄청 잘찍은 영화에, 누가 일부러 색수차를 넣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고 그 영상이 아름답지 않아지나요?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대세를 뒤집을 정도는 안됩니다. 이말은, 기본 설정이 완성되지 않으면 어차피 차이를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나온지 오래된 구형 기종이라면 그 차이가 좀 더 먼저 보이긴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기본 미술과 조명을 셋업하고 그 만듬새가 좋은지 파악하는데에는 충분합니다.

 심지어, 얼마전에 영화과 학생과 촬영감독들이신 촬영교수님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Alexa Mini, RED, FS7, A7S2 로 촬영한 클립들을 1분씩 보여주고 기종 맞추기 했는데, 정말로 아무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기종은 커녕, 비싼거, 중급, DSLR로 크게 나눠도 못맞췄습니다. 차라리 각각의 클립마다 프로덕션 상황이 달라서 티가나는 현장이 오히려 부각되었을 뿐이죠. 처절한 현장에서 카메라라도 좋은거 쓰려고 Alexa로 찍은 현장이 화면 엉망인게 제일 많이 티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종에 집착하는게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대부분의 경우 본인의 역량이 모자르는 핑계를 찾기위해 비용이나 기종을 걸고 넘어지는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카메라 기종이 영화를 만드는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순간은 딱 하나라고 봅니다. 촬영감독이 그 기종에 익숙하지 못해 기본 촬영만 하는데도 온 역량을 다 쏟아야 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여력이 없을때죠. 그런 측면에서는 최신형 기종보다 손에 익은 구형이 더 좋을때도 많습니다.

 

 렌즈는, 한동안은 일부러 50mm 만 가지고 촬영해 보세요. 바람직한 제작자세는 아니지만, 개인 훈련용도로는 꼭 한 번 거치고 지나가야할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만들어야 할 순간이 오면, 카메라와 렌즈는 그냥 가지고 계신거 쓰시고, 확보된 예산은 미술을 세팅하고 조명을 빌리는데 다 투여하세요. 특히 조명은 구입하지 마시고, 대여하세요. 한순간에 모든걸 소모해 버리는 기분이시겠지만, 그래서 무형의 자산에 가치를 매기지 않는 우리나라 사정에는 파산같이 느껴지시겠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을 경험하는 자산이 조명 렌탈 비용보다 훨씬 비싼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