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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루 8월호] 사진으로 본 민족문화말살의 현장

잔향
2014년 08월 05일 22시 34분 15초 1315 1
나라를 일은 슬픔, 시대에 따라야만 했던 그 시절, 한장의 흑백사진으로 뼈아픈 한국사를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글마루에서~~

평양기생학교에 분 왜색의 바람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그토록 기다리고 염원하던 광복을 맞았지만 69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아직 온전한 광복을 이루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청산되지 못한 채 사회 곳곳에 숨어있듯 남아있는 식민사관은 잘못된 역사관뿐 아니라 우리의 문화마저도 왜곡시켰다. 광복 69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아 진정한 광복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번 기획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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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본래 우리네 기녀는 시와 서(書)에 능했으며, 전통악무(傳統樂舞)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이들이었다. 비록 사회계급으로는 천민에 속했지만 시와 서에 능한 교양인으로 대접받는 특별한 존재였으며, 글 꽤나 한다는 양반이나 문인들보다 그 재능이 뛰어난 이들도 많았다. 조선 말기를 지나 일제강
점기를 거치면서 기녀의 문화에 변화가 일고 그 의미가 왜곡됐지만 말이다. 일제강점기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평양기생학교’에도 그렇게 일제에 의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평양기생학교 출신의 장연화는 1920년대 중앙문단에 내로라하는 문사들이 말 한번 걸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웬만한 문인을 능가했던 문학 기생이었다. 이렇듯 평양기생학교 출신의 기생들은 최고의 기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았으며, 그 기량 또한 뛰어났다. 이들은 논개와 춘향, 황진이와 같은 의기(義妓)와 정절, 예인(藝人)의 대명사들을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이 때문이었을까. 일본과는 다른 조선 기녀들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해서였을까. 일본은 평양기생학교에까지 침투해 그 고유의 문화를 변질, 왜곡시켰다.

출처: 글마루 http://www.geulmaru.co.kr/bbs/board.php?bo_table=issue&wr_id=8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Liu
2014.08.25 11:31
당시에는 정말 멋짓 분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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