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영화제 출품작 단편 영화 ( 감독 : 배우 서형윤 )

형윤 2022.10.16 14:40:29

 

충무로 영화제 출품작 단편 영화 : 'The Lonely Boxer'

 

감독 : 절세미남 얼굴천재 배우 서형윤 (영상 설명란에 실제 제 삶을 시놉시스로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배우 서형윤 프로필 사진 주소 : https://www.filmmakers.co.kr/actorsProfile/12441198?category=282

 

시놉시스 : 학창시절 배우 서형윤은 실제로 자살을 결심했을 정도로 지독한 성폭행과 학교폭력을 당했던 왕따이자 가난한 흙수저였다. 장남인 그에겐 친 아버지, 친 어머니, 친 남동생 이렇게 가족이 전부였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바라보며 그 힘든 학창시절을 견디며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매일 이사와 전학을 다녔고, 급식비를 낼 형편도 없었다. 그래서 항상 거의 굶는게 일상이었다. 가끔 어머님이 도시락을 싸주시곤 했지만 김춘기라는 학생이 반찬을 다 뺏어 먹어서 그는 화장실에 숨어 몰래 도시락을 먹곤 했다. 급식도 못 먹고 도시락도 못 먹고 굶는 날엔, 학교 운동장에 위치한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며 끼니를 떼웠다. 그의 가난하고 약해 보이는 모습은, 반 아이들에겐 그저 괴롭히기 좋은 아이였을 것이다. 교실의 학생들은 그를 번갈아 가면서 괴롭혔고, 매일같이 그는 김춘기라는 학생에게 뒤통수를 내어 주어야 했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할거 없이 김춘기는 그의 뒤통수를 매일같이 후려 갈겼고, 그는 엎드려 하염없이 울곤 했다. 수많은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의 비웃음 소리, 방관자들에게 둘러 쌓인채, 그가 김춘기에게 맞고 엎드려 숨죽여 오열하며 울때마다 모든 여학생들은 그를 대놓고 크게 비웃으며 손가락질하며 놀렸다. 어쩔땐 계속 맞은 뒤통수가 너무 아프고 그런 자기 자신이 불쌍하고 슬퍼서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울어서 교과서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여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 녀석의 폭행은 계속 되었다. 음악 시간만 되면은 이번에는 김대광이라는 학생과 김헌중이라는 학생이 그의 옆에 양 옆으로 다가와 앉아서는 유도를 한 육중하고 강렬한 몸으로 매일같이 그의 팔뚝을 때렸고 그의 팔은 빨갛게 부어 오르며 시퍼렇게 멍이 들다못해 나중에는 고름이 쌓인거마냥 누렇게 되었다. 홍기태와 원진영 이 두 학생은 그때 그가 시골 학교인 신림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시절인지라 중앙에 오래된 낡은 난로가 있었는데 그 난로에다가 쇠자를 데워 그의 목덜미에다가 지진적도 있었다. 그의 목은 화상을 입게 되였고 기술 가정 선생님께서 다행히 화상을 입은 그를 교무실에서 발견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같은 성별의 남학생한테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상주라는 애가 매일같이 조용히 그의 옆으로 다가와 귀에다 속삭이는 목소리로 아무도 모르게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하고는 자신의 성기를 빨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또한 그 녀석은 자신의 항문에 그의 성기를 집어넣으라는 명령도 서슴없이 했다. 그는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제일 서럽고 수치스런 나날들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겁쟁이라 자살할 용기도 없었다. 그는 아이들한테 맞고 울어도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용기도 없고 숫기도 없어 항상 말도 못하고 집에서도 가족들에게 말도 안하고 혼자 삭혔다. 물론 그당시 그 말고도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 한명 더 있었다. 조기영이라는 학생이였는데 그도 형윤과 같은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혼자인데도 용감해서 그 수많은 일진 학생들을 상대로 겁없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더 심하게 맞았다. 그래서 그는 그 광경을 보고 싸울 의지를 더 잃게되었다. 물론 그는 겁쟁이라 싸울 의지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김영대라는 학생은 맨날 그의 집에 와서 게임 CD를 빌려가놓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친구들이 집에 오는게 싫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를 구원하러 한 예쁜 여학생이 전학오게 되었다. 그녀가 바로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은미. 장래희망이 스튜어디스였고 정말이지 자신에 꿈 만큼이나 엄청나게 예쁜 미인이었다. 그녀는 그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때, 그리고 그녀와 같은 성별의 여자애들이 전부 그를 비웃고 놀릴때마다 앞장서서 그만하라고 말하고는, 그를 유일하게 혼자서 감싸주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장난은 멈출 줄 몰랐고, 그는 그렇게 계속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다른 학교에서 사고를 친 일진 애들이 그가 있는 시골 학교로 전학오게 되였는데 한명은 그처럼 집안 형편이 가난해서 시골학교로 전학오게 된 전학생이었다. 그 아이는 머리를 전부 삭발한 모습이었고, 주먹은 크고 두꺼웠으며 마치 자동차도 부숴버릴것 같은 위압감을 가진 안혁수라는 아이였다. 그리고 또 한명은 안경을 쓰고 갸름하고 날렵하게 생겼는데 무척 살기가 흘를 정도로 쎄 보이는 유흔경이란 학생이였고, 마지막 학생은 이제까지 그가 본 학생들 중에서 키와 덩치가 압도적일 정도로 크고 거대한 허자회라는 학생이었다. 이 전학생 삼총사로 인해 그는 학창시절이 조금 편해지고 비교적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이 아이들에 위압감과 포스를 보고 일진 애들은 말도 한마디 못걸었으며, 이 애들은 자동으로 자기들이 맨 뒷자리에 앉았고 혹시라도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눈치없이 떠들면 맨 뒷자리 창가 자리에 앉은 제일 강한 허자회라는 학생이 근엄한 목소리로 무협 소설책을 읽으며 조용히 하라고 말했고, 아이들은 바로 묵념을 했다. 그때 이후로 아이들은 교실에서 서로 눈치만 보며 조용히 지냈고 더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편하게 학교를 다니다 신림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주천 종합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고등학생이 되어도 왠지 이렇게 앞으로도 왕따와 구타를 당할까봐 그는 나름대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더이상 이렇게 당하고 살을 순 없어 학교에 가면 맨날 아픈척을 했고, 화장실에서 숨어서 몰래 코를 세게 후벼 파서 코피가 흐르게 해서 그 코피를 온 몸과 교복에 덕지덕지 발르고는 비틀 거리면서 피를 흘린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럴때마다 선생님들은 그가 빈혈이 있는줄 알고 얼른 양호실 침대에 눕혀주었다. 그렇게 그는 거의 매일같이 단 하루도 안 빠지고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양호실 침대에서 잠을 자며 생활하게 되었다. 양호실 침대에서만 계속 누워 자니 허리가 아파서 독서실에 가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책들을 읽곤 했다. 그래도 드물게 아이들의 괴롭힘이 있긴 있었지만 중학교때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후에 급격히 얼굴이 잘생겨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그에게 잘생겼다고 하는 말을 많이 했다. 계속 그런말을 듣다보니 문득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심취해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어 여배우 구혜선님이 유명해진 다음 카페 오대얼짱 카페에 제 사진을 장난으로 올렸는데 드림피그 연예 기획사에서 오디션 제의가 와서 갑자기 캐스팅이 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연예 소속사와 가까운 곳에서 살기 위해 또 이사를 가야만 했고 그렇게 그는 또 한차례 의정부에 있는 영석 고등학교에 전학을 가게 되어 그곳에서 마지막 고등학생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주천 고등학교에서 영석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을때도 똑같이 양호실과 독서실을 오가며 수업시간에 학교 바로 맞은편 매점에서 햄버거를 사먹곤 했다. 그런데 그게 소문이 나서 학교 후배 애들이 그가 수업시간에도 양호실 침대에서 자고 도서실에서 책 읽고 매점에서 햄버거를 사먹으니까 그런 그를 아웃사이더 일진으로 알게되어 맨날 그가 지나가면 후배 애들이 좌르륵 양 옆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푹 숙이는 광경을 보곤 당황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남들에게 자신이 그렇게 강하게 보여지는게 한편으로는 내심 설레구 뛸듯이 기쁘고 좋았다. 그렇게 다행히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하게 되였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그의 트라우마는 없어지지 않았다. 누가 그를 괴롭히거나 욕할지 몰라 혼자 무서워 하며 다른 사람들한테 말을 걸을 때도 벌벌 떨면서 말을 심하게 더듬곤 했다. 결국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그는 항상 똑같은 바보, 찐따, 왕따였다. 훈련병때 행군 도중 발바닥을 심하게 다친적이 있어 모든 훈련에서 열외가 되였었는데, 그때부터 내무반의 동기 훈련병들은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한번은 그가 발바닥 부상으로 인해 급식소까지 못가서 훈련병 동기들이 대신 급식을 받아 음식 식판을 대신 들고 그가 내무반에서 먹은적이 있었는데, 동기들이 식판을 들고 걸어오면서 일부러 음식들을 다 흘려서 식판에는 먹을게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꾸역 꾸역 눈물을 억지로 참아가며 울면서 겨우 밥을 떠먹는 그 모습을 감시 카메라로 전부 모니터링하신 훈육 분대장님이 훈육 소대장님에게 이 해당 사실을 모두 보고하셨고, 훈육 소대장님이신 최우선 상사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주시며 그가 편한 보직으로 갈 수 있게 최대한 배려해 주셨다. 그렇게 그는 연대장님을 모시는 2사단 32연대 직할 본부중대 PX병사로 입소하게 되었다. 2층 침대가 딸린 취사병 선임분들이 계신 편한 신막사에서 그는 그렇게 선임분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편한 군생활을 만끽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밑으로 PX병 후임이 오고 나서 그의 군생활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손진욱이라는 이등병 후임이 일을 못한다며 이등병인 그를 협박하고 욕하고 때렸는데 그만 억울하게 영창을 가게된 사건도 있었다. 중대장님이신 류재하 대위님은 훈련병때 빼곡히 적어내린 그의 생지부를 다 보셨다고 하시며, 그곳에 적힌 그의 장래희망이 영화배우인걸 보고 영창을 가는게 나중에 네가 연기를 할때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며 그를 꼬옥 안아주며 영창을 보냈다. 군사 징계 위원회로부터 회부되어 영창을 다녀오고, 선임중 최고참이자 분대장이자 취사장이신 장남광 상병님께서 주무시다가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하시게 되는 돌연사 사건이 겹치며, 그렇게 군대를 이등병때 의가사 조기 전역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서울에서 달방 생활과 고시원 생활을 하며 엑스트라 일과 촬영 보조 스태프 일을 하면서도 그는 다른 사람들한테 항상 혼나거나 맞거나 욕먹거나 이중 하나였다. 점점 자신감이 결여되어만 갔고 결국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배우의 꿈을 꼭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복싱을 하며 과거의 트라우마랑 맞서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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