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성명] 드라마 만들 때는 노동자 막 대해도 괜찮다? <지금 우리 학교는><다크홀> 제작사들은 표준근로계약서 작성하고 노동권 보장하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2020.11.27 17:00:22

[공동 성명]
드라마 만들 때는 노동자 막 대해도 괜찮다?
<지금 우리 학교는><다크홀> 제작사들은 표준근로계약서 작성하고 노동권 보장하라!

 

최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미디어 신문고’에 심각한 제보들이 접수되었다. 문제가 된 드라마는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예정인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제작사 : JTBC스튜디오, 필름몬스터)와 2021년 OCN을 통해 방송 예정인 드라마 <다크홀>(제작사 : 영화사우상, 키위미디어그룹)이다. 해당 드라마 제작사는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하루 최대 20시간씩의 초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등 가혹한 노동조건 속에 드라마 스태프들을 몰아넣고 있다. 

 

해당 제작사들은 원래 영화를 전문적으로 찍어왔던 곳이다. 여전히 ‘무늬만 프리랜서’가 난무하는 방송 노동의 상황과 달리, 영화의 경우에는 지난 2015년부터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을 개정하여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아진 상황이다. 영화노동자에 대한 법적인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의 강제성을 강화하고,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계약서상에 명시할 수 있게 되었다. 임금체불이나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제작사의 배제 조항이 삽입되어 영화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JTBC스튜디오, 필름몬스터, 영화사우상, 키위미디어그룹 등의 제작사들은 드라마 제작현장은 영화 제작 현장이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 제작사를 비롯한 몇몇 영화 제작사들은 방송 드라마나 OTT 콘텐츠의 제작 상황이 영화보다 훨씬 열악한 점을 악용하여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점차 정착 중에 있는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은 물론 적정한 근로조건 마련을 위한 노력도, 안전한 촬영현장을 만들기 위한 의무도 모두 방기하고 있다. 심지어 <다크홀>의 경우에는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를 낼 수 있는 대형 차량 액션 장면을 촬영하면서 구급차를 한 대도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빛센터 제보 결과 드러났다. 

 

영비법이 영화 노동자들을 위해 보장되는 방향으로 개정된 것에는 전국영화산업노조(이하 영화노조)의 공이 컸다. 2005년 창립한 영화노조는 방송 촬영 현장과 다를바 없거나 때로는 더욱 열악한 영화 제작 노동의 현실을 바꾸기 위하여 생겨났다. 영화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제작 현장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노조는 노사정 협의 기구를 마련하여 영화 노동 문제를 공론화하는 한편, 교섭 투쟁과 법령 개정을 위한 노력을 병행하며 끝내 2015년 소중한 결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영화 제작사들이 2015년 영비법 개정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대신, 편법을 사용해 영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침해하려는 행위는 심각하게 유감스럽다. 동시에 영화 제작사들이 악용할 정도로 여전히 방송 노동 현장이 열악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2010년대를 지나며 각 미디어 사이의 경계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특히 TV 방송과 영화, OTT로 서비스되는 동영상 콘텐츠들은 모두 ‘영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을 활용하여 영상 영역의 제작사와 노동자들은 한 분야에 갇혀있는 대신 점차 TV·영화·OTT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미디어 환경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정작 영상 노동자들의 상황은 무척이나 열악하다. 영화 정도만이 2015년부터 노동권을 보장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을 뿐, 방송은 물론 새롭게 대두한 OTT 영상물의 노동 실태는 여전히 처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영화 영역에서 발생한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변화를 TV 드라마나 OTT를 비롯해 다른 영상 콘텐츠 영역, 문화 콘텐츠 영역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영화가 아니라고, TV 드라마나 OTT 콘텐츠니까 적용이 안 된다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영상 노동자들에게 오랜 시간 보장받지 못했던 노동권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한빛센터와 영화노조는 일부 영화 제작사들이 법과 약속을 우회하며 영상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시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과 <다크홀>의 제작사는 ‘무늬만 프리랜서’를 강요하는 움직임을 당장 철회하고, 즉각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노동권을 보장하라. 미디어 산업은 발전하지만 정작 미디어를 만드는 이들의 노동 환경이 열악한 모순을 이제는 타파하자.

 

2020년 11월 27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