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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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을 잃은 남자의 자서전 입니다.

김강민김강민
2020년 07월 24일 12시 55분 5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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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늦은나이에 저는 배우가 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감정이란 것을 끄집어 내 보기 위해 과거에 아버지로 인해 힘들었던 성장기 시절을 떠올려 보다 그 기억을 글로 한번 남겨 보았어요.
철학이나 교훈 같은 결말의 스토리는 없는 그냥 제 신세 한탄 정도의 글 입니다.
다 옛날 일이라 지금은 힘들지 않지만 저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잊은 것 같아서 연기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 혼자 앓는 것 보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책 처럼 써본 자서전을 한번 올려 봅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부모님과 나는 스므살 차이가 난다.
결혼하지 않은 연애과정에서 내가 태어난 것이다.
부모님은 당연히 경제적인 자리가 잡혀있지 않았기에, 할아버지의 손을 빌어 목욕탕을 짓고 장사를 하게 된다.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짓긴 했지만, 당시 상당한 금액의 대출을 받으신 할아버지의 능력이 대단하셨던가 보다.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별로 좋지 않다.
항상 낮술을 하시고, 매일 폭언을 하시며, 할머니를 못 살게 구시는 기억 밖에 없다.
취하지 않은 멀쩡한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내가 고등학생때 결국 간이 안좋아지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는데 그때 나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할머니가 편해 지시겠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건 아니었나 보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도 슬퍼는 하시지만 절제된 분위기로 장례를 잘 진행하셨다.
유골을 묻는 과정에서 딱 한분이 이성을 잃고 오열을 하기 시작하는데 오히려 눈쌀이 찌푸러지는 행동이다.
주위 어른들이 `재 뭐하냐? 위험하니까 어서 나와! 이제와서 왜 저러는 거야?` 라며 흉을 보고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형상이 보이던 우리 아버지 말이다...

<부모의 행동>
초등학생 시절 나는 공부를 하지 않고 장난만 치며 남동생을 괴롭히는 개구장이였다.
동생에게 미안했던게 우리 아버지 조차도 동생을 많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동생이 싫어 할 만한 행동만 골라서 한다.
돌대가리,땅콩 이라 놀리며 장난으로 머리도 때리고, 들고 놀다가 바닥이나 벽에 머리도 굉장히 많이 찍혔다.
지금 아마 동생의 뇌를 들여다 보면 분명히 이상이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많이 괴롭혔다.
이것이 애정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어린이는 다 괴롭혔다.
사촌동생들도 괴롭히고, 아버지 친구분의 자식도 괴롭힌다.
누구 하나 울때까지는 장난이 그치지 않는다.
같이 살고있는 동생은 당연히 거의 매일 울게 된다.
아버지 본인은 장난이엇겠지만 우리들에게 아버지는 악마 그 자체였다.
우리들 끼리 아버지를 나쁜놈 이라며 욕하는데 그 사이에 껴있는 내 마음은 좀 싱숭생숭 하다. 어쨋든 내 아버지니까...
나 또한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재밋어 보인건지 동생에게 똑같이 행하였다.
아버지를 보고 배운건지... 아니면 나도 그냥 그런 놈 인건지... 그때 나의 행동들이 동생에게 너무 미안하다.
동생은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 한동안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맞고 다닌적이 있다.
우리가족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할머니가 동생을 씻겨주다 몸 군데군데에 나 있는 멍을 발견하고는 때늦은 대처를 하였던 적이 있다.
왠지 내가 동생을 그렇게 만든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사자 꿈>
나는 아버지에게 괴롭힘은 당하지 않았는데, 다만 혼나는 유형이었다.
학교 숙제를 안해서 혼나고, 친구랑 장난치다가 혼나고, 동생을 괴롭혀서 혼나고...
처음엔 야구방망이로 맞다가 피멍이 심하게 나서, 이 후로는 당구큐대로 맞게 되는데 오히려 더 많이 때리게 되서 피멍은 더 심하게 났다.
큐대가 부러진 적도 많았다.
아픈 엉덩이 때문에 엎드려서 자는 습관이 생겼는데 나는 현재까지도 엎드려서 자고 있다.
어린 시절 사자에게 쫒기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머리가 직모이신 아버지의 이미지가 사자처럼 느껴졌나보다.
솔직히 초등학교 4학년까지도 사자 꿈을 꾸고는 이불에 지도를 그렸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크게 한번 혼난적이 있는데 거의 2시간 정도 혼이 났다.
그 시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엇지만 나에게 갑작스런 정신병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서 있는 체로 계속 멍때리고 있는 것이다.
서 있는 체로 몸이 굳어버리고, 이명이 들리며 말조차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병 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격었다.
아버지는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지 큰소리로 어머니 들으라고 "뭐하냐 너~ 정신병원갈래?!!" 소리치며 나가버리신다.
이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곧바로 달려와 "괜찮아~ 괜찮아~" 토닥거리며 정신 차릴 수 있게 도와 주신다.
그 상태로 한시간쯤 지났을까 정신이 돌아오게 되고, 몸도 풀렸지만 이 후로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대인기피증>
그런 상황을 격은 후 나에게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학교에서 가만히 있는 친구를 보고 있는데도 화를 내는 친구의 형상이 자꾸 보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두려워 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워 졌다.
초등학교 시절 개구쟁이였다고 했지만 그것도 3학년 까지만 이다.
생활기록부 담임께서 써주시는 나의 성격은 3학년 전과 이 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개그맨, 개구쟁이, 말썽꾸러기 에서 조용함, 사회성 부족, 숫기가 없음 으로 바꼈다.
그래서 4학년은 혼자서 우울하게 지내게 된다.
5학년은 담임께서 내가 친구를 잘 사귀도록 도와주신 덕에 그나마 덜 우울하게 보냈다.
이때 친구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6학년을 올라오고 또 다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두려졌다.
친구의 소중함을 느껴 본 나는 용기를 내어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 본다.
친구를 대하는 법을 잊은 나는 행동이 서투르다 보니 친구들이 나를 멀리한다.
그렇게 또 혼자 우울하게 지내게 된다면 정말 죽을 것만 같아, 다시 한번 용기내어 어렵게 동욱이 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억지웃음과 억지대화로 다가간 나를 받아준 동욱이가 너무 감사했다.
내가 다른 친구들을 서투르게 대할 때도 동욱이가 와서는 그 친구가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잘 설득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조금씩 용기를 찾고, 친구와의 대화가 두려운 것은 사라지게 된다.

<쓰레기같은 나>
나의 은인과도 같은 동욱이와 운이 좋게 중학교1학년 같은 반이 된다.
트라우마를 극복한 나는 이제 다른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잘 하며 지내게 된다.
그래도 아직 이해력과 공감능력은 부족한가 보다.
대화가 산으로 가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4차원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동욱이와 반이 갈렸지만 수업을 마치고는 항상 동욱이는 나를 찾아온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나는 동욱이가 솔직히 귀찮았다.
너무 쓰레기같은 생각 이었다.
필요 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귀찮은 완전 이기적인 아이였다.
내가 귀찮아 하는 티를 내자 동욱이는 내 눈치를 보고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쓰레기같던 나는 이제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시기도 딱 중2병 이라 일탈을 즐기며 나쁜 짓도 하며 다닌다.
사실 동욱이까지 모른 체 하며 이 시기에 일탈을 즐기고픈 이유가 있엇다.

<할아버지의 형상>
중학생 시절 부모님은 목욕탕 장사가 잘 되자 직원들을 세워 놓고, 오후에는 배드민턴 동호회와 술자리를 나가시게 된다.
이런 부모님을 본 할머니는 "주인이면 가게를 지키라"며 아버지를 혼내고, 우리들의 저녁을 못챙기는 어머니도 혼냈다.
하지만 혼나는 날 뿐인거지 다음 날부터는 또 다시 매일 동호회와 술자리를 나가신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에 라면과 계란후라이를 정말 많이 만들어 먹었던 것 같다.
일탈을 즐기던 나는 밤에 늦게 들어가도 전화 한통 없었기에 사실 편하긴 했던 것 같다.
술자리에서 어머니는 운전을 해야 되기 때문에 술을 안드시지만, 아버지는 술을 매일 드시게 된다.
점점 술에 중독이 되고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분이 안좋은 날이면 집에 들아와 어머니에게 폭언과 폭력을 하시며 유리파편이 날아 다니는 날이 많아진다.
나와 동생이 밥을 먹는 도중에도 밥상을 엎는 일은 물론이고, 유리로 된 부엌 문을 깨트려 먹고있는 밥에 유리가 들어갔던 적도 있다.
어느날은 어머니가 나의 방으로 도망을 와서는 침대를 밀어 방 문을 막아버리자, 못 들어오는 아버지는 문을 몇번 차더니 부엌으로 가서 유리 접시들을 방 문쪽으로 하나씩 던지며 위협하셨다.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머니는 아버지 친구분에게 전화를 해서 집으로 좀 와 달라고 부탁을 한다.
몰래 빠져나온 나와 동생은 밖에서 아버지 친구분을 애타게 기다리는데, 팬티바람이었던 나와 동생에게 당시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날 이후 술의 위험성을 느낀 어머니는 동호회만 가시고 술자리에 가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코 술자리를 빼지 않으신다.

<우리가 인격체로 보이긴 할까?>
겨울철에 보일러 가스비를 아끼려고 나와 동생이 부모님 방에서 같이 잔 적이 있다.
나와 동생은 바닥에서 자고, 어머니는 침대에서 주무신다.
어김없이 새벽에 술을 드시고 온 아버지는 나와 동생이 바닥에 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있는 어머니를 깨워 추행하기 시작한다.
나와 동생은 잠에서 깰 수 밖에 없기에 어머니는 굉장히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그 날만 그러겠지라고 생각 했지만 이러한 행동은 계속 지속이 된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느날 바닦으로 내려와 우리들 사이에 껴서 자게 된다.

그러나.....
그 날도 술을 드시고 온 아버지는 우리들 사이에 있는 있는 어머니를 그 자리에서, 우리들 사이에서 바로 추행을 한다.
당시 사춘기였던 나도 성에 대한 환상이 있엇지만 이런 강제적인 관계의 거친 숨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으니 왠지 나의 자아는 없는 것만 같았다.
당시 아버지는 우리들을 인격체로 보고 계시긴 하셨을까?

<충격적인 친구의 말>
이 과정이 계속 지속 되다보니 나는 불면증이 생기고 모자란 잠은 학교에서 자게 된다.
매일매일이 피곤하고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이 답답한 마음에, 수 많은 고민 끝에 학교 친구에게 나의 고민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사실 고민을 털어 놓는 자체 만으로도 약간의 응어리는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히려 독이 되고 만다.
나의 고민을 듣던 친구는 나에게
"야 이 또라이 새끼야! 거짓말 좀 하지마라! 세상에 그런 아빠가 대체 어딨는데? 이거 완전 폐륜아네!"
뻘쭘해진 나는 사실 장난이었다고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가 한 말 중에 욕은 전혀 들리지 않았고 그 사이에 했던 말만 되뇌인다.
세상에 그런 아빠가 어딨냐고? ㅎ
이 친구는 세상에서 절대로 존재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 아버지다.....
과연 내 아버지가 맞기는 할까?
나의 외모와 체형은 닮은 것 같은데, 대체 왜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그런 아버지란 존재의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걸까?

<진짜 악마를 보았다>
아버지가 만취한 상태로 매번 그런 행위를 하다보니, 실수로 어머니를 임신 시켜 버린다.
나와 동생은 그 생생한 과정까지도 옆에서 귀로 들어 알 수가 있엇다.
임신을 하게 된 어머니는 이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래서 학교 시험기간에는 집에만 계신 어머니 눈치를 보느라 하루종일 공부를 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밤10시에 하는 드라마는 보여주게 해 주셨다.
당시 인기있던 `쾌걸춘향` 이란 드라마 였다.
어느날 왠일로 술자리에 가지 않고 일찍 들어오신 아버지는 우리들이 tv를 보고있자, tv 전원을 꺼 버린다.
하루종일 공부하고 난 뒤에 tv를 보는 거라며 어머니가 다시 전원을 키려 하자, 아버지는 본인 행동에 반박을 한 어머니를 폭행을 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를 때려 눕히고 임신한 배 위에 깔고 앉아 한손으로는 어머니의 양 손목을 잡아 묶어놓고, 한손으로는 얼굴을 계속 가격을 한다.
맞고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부어 오르고, 잡혀있는 양 손목은 멍이 들기 시작한다. 임신한 배까지 깔려 있다.
술을 드신것도 아닌데 임신한 사람을... 아니, 임신한 자기 부인을 이렇게 까지 폭행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이성을 잃은 나는 아버지를 칼로 찌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런데 순간 어릴적 꿈에서 보던 사자의 모습이 아버지에게 보였다.
두려움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이때 만약 아버지를 찔러 죽였다면 정당방위 였을까?
결국 이성을 잃은 것은 내가 아닌 우리 어머니였다.
뱃속 아기를 지키기 위한 모성애가 생긴 것인지 고통스런 소리와 함께 이상한 남자같은 굵은 소리를 꽥꽥 지르시더니 그 잔인한 모션은 몇시간 내내 이루어 진다.
결국 어머니는 쓰러지게 되고 새벽에 응급실로 입원해 뱃속 아기는 유산이 된다.

<보복하고 싶은 마음>
성장기인 초~중학교 시절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헬스장에서 역기를 시키셨다.
당시 주위 어른들은 키가 크지 않으니 역기는 하지 말라고들 하신다.
요즘은 이런 학설이 거짓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당시 모든 어른들은 키가 크지 않는다고들 믿고 있엇다.
아버지는 다른 어른들의 말은 무시한 체 계속 강압적으로 역기를 100번씩 들도록 시키신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크면서 아버지보다 키가 크고 덩치도 크게 되면, 본인에게 보복을 할까 두려워 일부러 키를 덜 크게 하려는 속셈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최근에 아버지에게 역기를 왜 시키셨는지 이유를 물어보면 회피만 하신다.
그냥 키가 크는 줄 로만 알고 있엇다고 말하시는데 속마음은 알 수가 없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어머니 유산의 충격으로 나는 대인기피증이 다시 왔다.
고등학교를 올라오고 또 다시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두려웠다.
학교 일진들이 나에게 딱히 해코지를 하진 않았지만, 일진들의 불량스런 행동을 보고서는 나 혼자 증오가 생긴다.
일진들의 행동이 아버지의 행동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생긴 증오심으로 인해 체육시간에 축구를 할때 유독 일진들에게 태클을 많이 걸었는데, 소심한 나만의 반항 이었다.
혼자만의 이런 증오 증상 때문에 대인기피증이 왔던 것 같다.
나도 이제는 몸도 크고, 머리도 커지다 보니 아버지를 해코지할 계략을 생각하게 된다.
살인충동도 많이 느꼈다.
뒷통수만 보면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 진다.
살인충동까지 느낄 정도이니 폭력적인 아버지의 존재가 나에게도 보이는 것 같았다.
싫든, 좋든 아버지의 피가 섞여 있는 내게도 그런 모습이 감지됐나 보다.
너무도 싫어하는 그런 존재가 내게 보이자 너무 끔찍했다.
그래서 그 후로 마음을 다 잡고는 이제 좋은생각만 해 보려 노력했다.
아버지의 만행들을 기억에서 지워보고자 노력했다.
아니, 그냥 멍 때리기 시작했다.....

<동욱이와의 재회>
집에서 항상 아버지와 기싸움을 하다보니 내 감정을 매일 숨기며 무표정으로 지내게 된다.
어머니와 동생도 아버지로 인해 힘들어 하다 보니, 나의 속 마음을 터 놓고 감정을 표출 할 만한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할머니에게 표출도 해 보았지만 항상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욕 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쌓인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은 멘탈적으로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엇다.
2학년이 되고 반이 정해지는데 같은반에 앉아있는 동욱이를 보게 된다.
이 친구는 어떻게 내가 힘들어 하는 시기에만 딱딱 맞춰서 등장을 하는건지 참 신기했다.
뒤에서 동욱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온다.
감정이 무뎌져 있는 줄로만 알았던 내게서 눈물이 나오자 당황스러웠다.
누가 볼까 재빨리 눈물을 훔친다.
이 눈물의 의미는 뭘까?
오랜만에 보게되서 반가운 감정 일까?
아니면 내가 이 친구에게 했던 행동에 대한 미안한 감정 일까?
아니면 나의 감정을 표출 할 만한 그런 기댈 수 있는 존재를 찾은 것 일까?
난폭한 분위기인 우리 가정에서 가정교육은 제대로 이루어 질 리가 없었는데 예의나 예절같은 윤리,도덕성은 부모님 보다 동욱이에게 더 많이 배웠엇다.
그런 부모 역할까지도 되어주던 동욱이를 멀리 하려 했던 나의 과거 행동이 너무 후회됐다.
동욱이와 같은반에서 서로 눈이 마주쳐도 아는 체 하지는 않는다.
동욱이는 이러한 행동이 당연한 것 이었고, 나 또한 미안한 마음에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등교길에서 우연히 나의 앞에 걸어가고 있는 동욱이를 발견하게 된다.
동욱이에게 인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되어 용기내서 인사를 건내 보았다.
양심의 가책도 없이 다가가 인사를 하고있는 나를 동욱이는 또 다시 고맙게도 나를 받아준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다시 대인기피증을 또 한번 극복하여 지낼 수가 있엇다.
성인이 되고, 대학생활을 하고, 군대를 갔다 와도 동욱이와는 정말 꾸준하게 연락을 한다.
아니, 평생을 할 것이다.

<어머니의 가출>
나와 동생이 대학교를 가게 되고, 둘 다 성인이 되자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엄마가 집을 나가도 괜찮냐"고 물어보신다.
어머니의 고충을 충분히 알던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사실 이혼을 원하셨지만 그랬다간 가만히 있을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일단 그냥 도망쳐 나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어머니가 가출을 하고 몇달이 지나고 부터, 아버지도 갱년기가 오신 건지 절을 다니시며 지난 일 들을 뉘우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와 동생에게도 여태 보이지 못한 따뜻한 모습까지 보이려 한다.
목욕탕 건물에 마트가 하나 있엇는데 그 마트 마저 나에게 넘겨주려 한다.
사실 너무 가식처럼 보여 꼴뵈기 싫었지만, 당시 대학교를 자퇴를 했던 나 로써는 그 제안을 거절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마트를 무턱대고 운영할 수는 없기에, 다른 대형마트에 직원으로 들어가 열심히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아 가 싹싹 빌었 던건지, 용서를 받아준 어머니와 같이 집으로 들어오게 됐다.
내 눈에는 아직 아버지가 가식처럼 보이지만, 정작 어머니가 용서를 받아 주셨으니 나는 그거면 된거다.
동생에게도 나는 아버지를 조금씩 용서 해 보자고 말을 하였다.
그러나 몇일 뒤 나는 아버지에게 뒷통수를 당하게 된다.

<나의 마음을 사려했던 지키지도 못할약속>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고 아버지는 목욕탕 건물을 팔게 된다.
나에게 넘겨주려했던 그 마트 건물을 팔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도 받지않고, 한달에 4번씩 쉬며 10시간씩 일하던 나의 2년간의 열정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건물을 팔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말은 이해가 갔지만, 애초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셔서 나의 꿈과 열정을 밟아버린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당시 일하던 마트에서 점장까지 일을 해 볼 수도 있엇지만, 허리불구가 많은 점장이란 직업이 원래 허리가 좋지 못한 내게 맞지는 않았다.
그렇게 허탈한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날, 마트에 납품을 하던 업체아저씨에게서 알뜰폰 사업 동업을 제안 받게된다.
제안의 타이밍이 너무 좋게 들어와 운명처럼 느낀 나는 흔쾌히 수락 하였다.
업체아저씨를 따라가 사업에 대해 듣게 되는데 피라미드 모양이 나오더니 완전 그냥 다단계였다.
아, 당했구나! 라고 생각되여 정중히 거절하고 가려는데 끝까지 한번 들어보라며 나를 현혹하기 시작한다.
다단계라고 느끼고 부터는 설명을 전혀 듣지 않았엇기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내용을 들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좀 더 들어보았다.
그런데 듣다보니 내가 알던 그런 나쁜 다단계가 아니었다.

<다단계의 수법>
남의 등골을 빼먹는 것이 다단계 인줄 알았던 나는 설명을 들어보니 생활용품을 쓰며 서로에게 이익이 될수 있는 좋은 다단계였다.
남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었다.
어? 내가 알던 다단계랑 다른데? 내가 착각을 했엇구나! 라고 생각되어, 알뜰폰의 저렴한 가격대에도 메리트를 느껴 다단계를 한번 해 보기로 한다.
특히나 다단계가 너무 좋았던게 나의 아픈과거를 친구들에게도 얘기를 잘 못 꺼내는데, 여기 사람들에게는 마음 편하게 아버지에 대한 한을 시원하게 토로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감정이 무뎌진 내가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아픈과거를 얘기하자, 이런 나를 대신해 눈물을 보여 주시기도 하셨다.
사실 이분들은 당연히 계략 이엇겠지만, 어쨋든 나는 가슴 속 응어리를 풀 수 있엇기에 여기만큼 의지 되는 곳 또한 없었다.
다단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싶은 나는, 나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게되고, 알뜰폰으로 유인을 하기 시작한다.
몇명의 지인들을 유인했지만 전부 나처럼 메리트를 느끼진 못하나 보다.
오히려 내가 거짓말로 유인을 했다며 나를 구박한다.
나쁜 인식에 덮여있는 좋은 다단계를 좋은 의도로 알려주려고 했던 하얀 거짓말인데, 왜 나를 구박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 이때 당시의 나는 전형적인 다단계에 빠진 사람 이었다.
물론 좋은 다단계도 있고, 나쁜 다단계도 있다.
하지만 좋은 다단계로 일반 직장인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선 하위 1000명 정도의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생활유지를 이어 가려면 사람들을 거짓말로 현혹하고, 하위 사람들에게 생활용품을 강매하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처음에 다단계를 시작한 이유는 좋은 다단계라 생각되어 들어왔지만, 결국 활동하는 방식은 나쁜 방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을 5개월만에 느끼고 나는 빠져나오게 된다.

<자영업의 출발>
다단계를 하면서 물론 잃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꽤 있엇다.
통신 시장도 알게 되고, 사회성도 키울수 있엇으며, 젊음의 열정과 패기 또한 처음으로 느껴 보았다.
그러한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엇기에 그 패기로 술집을 운영해 보고싶은 욕심이 생긴다.
마침 어머니도 장사를 하고싶은 마음이 있어 서로 합이 맞아 동업으로 작은 술집을 차리게 된다.
근처에 지인이 없는 낯선 땅에서 장사를 하게 되어 걱정도 많이 됬지만, 어떤 장사든 그렇듯 초반 오픈빨을 받게되어 장사가 잘 되게 된다.
그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더욱 열심히 일을 한다.
근처 비슷한 업종을 하는 사장과도 나이가 같아 그 분과 친구도 먹게 된다.
그 사장님은 동네 토박이라 주위에 친구들도 많았다.
그 덕에 장사를 마감 하고 지인 분들과 술자리도 자주 가지며 나름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악재에 악재>
그렇게 장사를 한지 1년정도 지날 무렵 동네 상권이 죽은건지, 경기가 죽은건지 우리가게와 주변 가게들 전부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주기적으로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나는 장에 탈도 나고, 잔 병도 많아진다.
단골 손님만 챙기고 있는 어머니와 나의 마찰도 자주 생긴다.
전단지도 돌리고 이벤트도 하지만 여전히 장사가 되지 않아 지치기 시작한다.
주말마다 우리 가게에서 술을 드시는 아버지에게 옛날 모습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 트라우마가 다시 생긴다.
가게를 빠르게 넘기고 싶어 컬설팅 회사에 330만원의 비용을 투자 했지만 2년간 긍정적인 답변이 없다. 왠지 사기 당한 것 같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다고 답이 없을 것 같아, 가게를 무 권리금으로 어머니 지인 분에게 넘기게 된다.
20대에 열심히 일해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출밖에 없다.
나의 일생이 너무 허무해 진다.

<바보같이 보낸 1년>
분명 나보다 더한 실패를 맛 본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실패를 처음 격어 보다보니 손에 잡히는 일이 없고, 무기력 해 져서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이제 2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데 뭐 하나 이루어 논 것도 없이 대출만 남아있으니, 여태 뭐 하며 살았는지 후회만 하며 산다.
그렇게 1년동안 거의 폐인처럼 지내게 되고, 건강도 악화되고, 살도 찐다.
어느순간 정신 차려 보니 20대의 마지막 해를 맞이하게 됐다. 
20대의 마지막이라 생각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자신이 너무 바보같고, 하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일단 살부터 빼기로 다짐한다.
새벽 4시마다 일어나 동네 산에서 2시간씩 등산을 꾸준히 한다.
낮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로 운동 겸 한다.
그러자 살도 빠지고 정신력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꿈을 찾다>
정신을 차렸으니 이제는 내가 할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자신감과 의욕이 생기진 않았다.
열정을 찾으려면 정말 내가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술집 장사 할때 손님들이 나의 관상이 배우상이라고 해 주시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당시는 그냥 흘려 들었지만, 지금은 직업을 하나라도 더 알아 봐야 하기에 호기심으로 연기 영상들을 한번 찾아봤다.
영상 속에서 연기 지망생들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표출하는 모습을 보는데 내 안에 무언가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다.
평소에 무표정으로 지내는 나는 감정이 무뎌진 건지, 아니면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영상 속 사람들과 나는 다른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다.
표현을 마음껏 하고, 표출을 시원하게 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던 것일까?
나도 이 사람들 처럼 감정표현을 하고 싶어졌다.
연기가 하고 싶어졌다.
끼도 없고, 공감능력도 없는 나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 일 평생을 무감정, 무표정으로 살아오던 나도 이제는 표정이 찾고 싶어졌다.
나도 이제는 표정이라는 것을 좀 지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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