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369 개

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답글입니다.

hyulran
2004년 05월 10일 13시 26분 01초 1276
그날 헤어지고 나서 메일을 확인하다가 오늘에서야 그것의 ‘꼬리’를 발견했는데, 응? 이건! 다소간에 뜻밖에도 이렇게 광대무변한 곳에서 그것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혹시나 싶어 멍한 정신으로 클릭을 해보니 잃어버린 연애편지가 틀림없었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느낌표와 물음표가 전후좌우 상하로 교차 이동을 하면서 뭔가를 열심히 그려냈는데, 결론은 비오는 여름 어느 날 창밖을 때리는 빗줄기에 홀려 나도 모르게 슬리퍼를 신고 옛집을 향해 기억을 더듬어 가며 무작정 터벅터벅 걷던 지난 시절의 심정으로 그냥 쭈욱 따라가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글은 그 여정에 관한 나의 스케치다.



[논평들]

-1

붓다 : 그곳 새끼들은 젖나게 거칠고 난폭하구 잔인하다.
남의 뒷따마도 잘까고 다구리 까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들이 거칠고 그릇된 말로 널 능욕하고 비방하며 해코지 한다면 어찌할 것이냐?


푸르나 : 성님...그렇다면 전 그곳 사람들이 참으로 선량하고 친절한 종족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왜냐면, 그 새끼들은 주먹이나 돌로 절 때리지 않았으니깐요


붓다 : 만일 그 새끼들이 비겁하게 선빵을 날리며 다구리를 한다면 어찌하겠느냐?


푸르나 : 그래도 그 새끼들은 선량하고 친절한 종족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사시미나 각목으로 절 치진 않았으니까요


붓다 : 만일 그 새끼들이 '뽀각!뽀각!' 사시미로 널 쑤신다면 어찌 하겠느냐?


푸르나 : 그렇다 해도 그 새끼들은 선량하고 친절한 종족이라 생각하겄슴다. 제 생명을 빼앗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붓다 : 그 새끼들이 만일 널 죽인다면 어찌 하겠느냐?


푸르나 : 성님!! 그래도 그들이 선량하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왜냐하면...육신이라는 썩은 형해로부터
쉽사리 절 해방시켜 주었으니까요. 육신을 부끄러워하고 혐오하며 그로 인하여 번민하는 승려들이 있다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붓다 : 오우 쒸박새끼!! 너는 정말 뛰어난 부드러움과 강한 인내심을 갖고 있구나!
너라면 그곳 스포나파란타를 평정할 수 있을것 같다.
가거라!...가서 니가 이리 자유롭듯이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그 좀만한 새끼들에게 가르쳐라! 움화화하하~!


dioyoadana


*반복의 효과, 인내심과 되풀이에서 오는 지루함--과장의 장엄, 엄밀히는 비장함


- 삶은 계속된다. 인간은 왜 하루 세끼를 먹고 그 다음날에도 역시 세끼를 먹는가? 왜 잠을 자고 다음 날 또 자지 않으면 안되는가? 권태의 이마전을 부수는 것은 그 내면에 축적된 탈출욕구가 저 우주의 빌어먹을 어떤 센터에 S.O.S를 끊임없이 쏘아 올린 결과 드디어 그 기도의 감응이 어느 날 한줄기 빛으로 이어진 것인 바, 그것은 수백만분의 일밖에 안된다는, 이른 바 대낮의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기와 같은 형식으로 문득 당사자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거늘 그러니 어찌 평소에 항문이 닫혀있는 자로서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번개불에 콩 구워 먹는 자의 타들어 가는 마음에 짝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그가 입을 옷은 이미 결정된 것이다.

“예술이란 용병이 죽기 5분전에 피우는 마지막 담배 한개피와 같은 것이다.” - 최 인훈


-2

한가지는 변함없다. 대낮이든
아니면 깊어 가는 밤이든, 모두가 함께 갖는 척도가 있어,
허나 각자는 또한 제가끔의 가늠을 가지고,
제가끔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며 오느니, -빵과 술


땅위에 척도가 있느냐? 그러한 것은 없다.
천둥의 길을 창조자의 세계는 막지 않는 것이 아니냐.
햇빛 아래 피어난 한 떨기 꽃 또한 아름답다.
눈은 삶 가운데 때로는 꽃보다 아름답다 이름할 것들을 본다. -땅 위에 척도가 있느냐


휠덜린



*성님은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꽃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셨습니까?--아니면, 그러한 것은 없는지요?


- 자네는 어디서 왔나? 꽃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긴 했는데 그것도 역시 꽃이라. 아쉬운 건 그 꽃이 3천년마다 한번식 핀다니 증명할 길이 없어 코가 길어질 입장이라 침묵 중. 물론 그 전에 기다려 줄 사람도 없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그러한 것을 찾게 되면 연락 주리라 믿겠다.


-3
머리말은 일종의 변호연설이다. 거기서 저자가 제 아무리 웅변을 토해봤자, 자기 입장을 더 유리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성님의 과장, 성님의 입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 우노보로스, 머리와 꼬리가 서로 물고 물린 뱀. 그것이 지혜를 상징한다하니 여우의 꾀가 아홉 개 달린 꼬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이해 되는 바, 부처님을 욕하는 자나 칭찬하는 자는 모두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단지 나는 과소의 그림자를 겉에 걸쳤을 뿐이다. 따라서 부귀영화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은 아무도 그러한 남루를 조명하지 않는다.

뱀발: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4
남을 가르칠 때, 가르치고 있다는 인상을 상대에게 줘서는 안된다. 상대가 모르는 것도 단지 잊었을 뿐이라는 인상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우린 모르고 있습니다.

- 모르고 있다는 걸 대체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5
한 우주는, 잠이거니, 도류여 나비님, 도류가 만약, 어느 특정한 잠을 고집하여 그 잠속으로만 들어가야 된다는, 그런 업보를 떨쳐버릴 수만 있다면, 꼭 닫힌 한 우주는, 그 자체가 열림인 것--모든 통시태의 모태, 공시태, "한 물방울이 대양에 합류"하든, "한 물방울에 합류"하든, 거기 무슨 다름이 있지 않을 것. 그리하여 도류가 만약, 도류의 밖은, 도류가 깨워내야 하는, 깊고도 넓은 하나의 잠이라고 알기 시작한다면, 그때로부터 도류는 당분간, 일종의 법열이라고도 해야 할, 한 어리둥절함을 느끼게 될 것인뎁지, 그도 그럴 것이, 도류가 이제껏, '남'이라고, '밖'이라고 여겨왔던 것들과,'자기'라고 '안'이라고 해왔던 것들과의 사이에서, 경계가 없어져 버린 때문이거든읍. 제길헐, 한 대양이, 한 물방울 속에도 흘러들었어도, 저 한 물방울의 크기에는 별다름이 없음을!---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우리들의 갈증을 식혀줄 물방울 하나,

- 한그릇의 물을 쏟으니 온 법계가 다 마르는구나


-6
제자의 불평

"싸부...이야기는 곧잘 해주시면서 그 뜻을 밝혀 주시는 일은 통 없으시네요"

스승의 대답

"이런 찌질이 같은 쉑! 누가 너한테 과일을 권하면서, 지가 먼저 씹어먹구 맛을 보고서 준다면, 넌 좋겄느냐?"


*번역, 여자에게 두 번째 남자되기, 남이 쓴 화장지로 밑 닦기...성님의 시나리오, 제가 성님한테 말하는 것들...우겔겔

-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는가? - 오겔겔
본문보다 번역이 더 어렵다. 진심이다.


-7
큰 글자가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 수상한 것은 편지가 꽂힌 장소야. 그야말로 누구 눈에나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는 것!"

'도둑맞은 편지' 에드가 알렌 포

- 대도는 무문이다.


*텍스트를 제시하거나 분석하는데 있어서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또는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은

그 텍스트 안의 진실이 가까운 곳에 있느냐 아니면 깊숙히 숨어 있느냐의 차입니다.

진실은 가장 가까이 우리 곁에 있는 법...

날것 그대로를 드러내거나(이건 꼴리지도 않거니와 세련되지 못한 방법입니다)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꽁꽁 숨겨 두거나 나열한다고 예사는 아닌것 같습니다.

좋은 텍스트는 드러나는디끼 안 드러나게 (정말 어려운 문제지라) 쉬운 곳에다 숨겨두는거라 생각됩니다.

- 공수래, 공수거라는데 숨기고 드러날 곳이 어디 있을까? 인간은 옷을 입기 시작한 다음부터 거짓에 물들기 시작했다. 추리의 능력을 얻었으나 스파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화면과 대사, 나레이션들, 장면과 이미지들의 배치가 잘 이어지지 않은데서 오는 당황스러움.
마치 떡치는 장면위로 우파니샤드가 화면에 잡히는 프랑스 영화 같은 황당한 느낌들...

- 칸느에 가고 싶어 그랬다.


문어체 투의 대사들 (이건 아주 지엽적인 문제이지만 또한 시나리오상에선 중요한 부분인데요..요컨대..'그랬(었)군' '~했군' '~군'으로 끝나는 말을 구어체에선 쓰지 않습니다. 시나리오 상에서 금기시 하는 말투를 쓰는데에는 의도성이 있을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문어체지

두바닥이 넘어가는 만주벌판같은 대사들 ^^;;;
(예를들어 고기서와 휴가 나누는 길고 지루한 대사들은 다음과 같이 단 세줄짜리로 짧게 처리 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독립군의 하루는 침략자의 백일, 숨가쁘게 싸우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래도 다행아니냐, 열두 바닥을 채우지 않았으니.


고기서 : 세상엔 주석만 읽으면 되는 것들이 많지. 단지 이유를 달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휴 : 예를 들자면?

고기서 : 통조림을 비롯한 모든 제품들의 caution!)

- 다정이 병인가 하오


아는 것은 다 말해야겠다. 혹은 나도 이런 걸 말할 수 있다. 아니면 이걸 버리고 싶다.

'에라이 씨박새끼들 내 똥무더기를 맛봐라(뒤집어써라)'는 식의 배설...

- 나는 변비에 걸린 적이 없다.


자유롭고 현란한 이미지와 상상력의 나래가

사이사이 끼여드는 허구와 현실, 만화적인 또는 정치적인 발언들, 이성복의 시를 가지고 음모론적인 스파이물 같이 전개되는 스토리...끊임없이 오바이트럴 허디끼 분출되는 형식파괴적 실험과 선(禪) 수행의 화두 잡기가 혼란스럽게 뒤섞인 연결고리는 무엇입니까.

- 고독!

한결같이 두드러지는 성님의 특징은 <과잉> 같은데요...그걸 사람들이 봐야 할 근거는 무엇입니까.

- 내가 몸 담고 있는 ‘그릇’이 좁아서 그렇다. 근거:이 시대의 폐부를 통해 같이 호흡하고 잊지 않느냐?


쓸 수 있다는 것...성님의 글은 엄청난 양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지금까지의 성님을 버리거나, 정리하는 것으로는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시나리오 쓰기를 그만두시라는 말이 아닙니다...좀 더 과잉을 걷어내고 가장 <단순하고 쉬운 이야기>부터 한번 써보심이 어떠실런지요?)

- 다른 사람들이 아주 많이 쓰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를 놓고 고민하는 학생일 것이다. 지구의 어디에 살던 간에 지표를 파헤쳐 들어가면 반드시 ‘핵’과 만난다. 그것은 청순한 미녀의 속옷 안에 관한 .... 한 것이다. 실은 능력이 안되서 못쓴다.


형님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가 아니면서도 가장 '시나리오적'인 글이였습니다. ('시방 이게 뭔 뇨자 거시기가 껌씹는 소리여?' 라구 말씀하지 마시길..--;;;)

- 칭찬으로 들리는 걸 보니 자네의 안목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최대의 칭찬에 감사하다.


시나리오 형식으로써(또 영화화 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즉, 영화화를 전제로 한 글쓰기, 영화의 설계도면이라는 측면에선)

빵점 짜리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거 자체로 상당한 글이였다고 생각합니다.

- 200자 원고지 730장, 미안하다 분량이 좀 많았다. ^^ , 그리고 다음에는 내용에 관해서 평가해 다오. 200%가 부족한 탓인지 늘 목마르다.


-8
칼을 잘 쓰는 장수가 창까지 잘 쓸수는 없다. 다른 장수들의 무기를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만이 잘 다룰 수 있는 무기로 싸워라 --백남준

*그게 예술가 아닐까요? 저는 한국이 낳은 진정한 천재는 백남준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인접한? 분야인 영화에 눈길을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끄나요? ^^;;;


- 그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것에 대해서 늘 불만이다. 아마 다른 분야에서는 재미를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소한 동양인으로서 백인들과 경쟁해야 했으니...


-9
난 내가 한국문학의 메인 스트림과는 다른 새로운 영역들을 확장해가는 <전위>라고 생각한다.---중략---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못나간 장르가 딱 두가지 있다...그게 바로 문학과 만화다--김영하

-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영하는 폴 오스터에 아주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한국 문학의 주례사 비평이여, 이제 그만 좀 옷겼으면 좋겠다.


*자신은 영화를 짝사랑하지 않는다는, 또한 영화보다는 더 생명력이 길며 은근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는 소설가의 인터뷰 발언이었습니다.
현재 그의 원작을 영화화 하는 작품이 동시에 3편이나 들어가고 있습니다.

- 창조적 상상력 부재의 현황.


-10
분석의 예

시월의 숲 어디나 있다는 유리가루 하나
나는 몰랐네 잎 지는 가지 새로 휘황한 저
銀河, 누까풀 안 내 작은 어둠 속으로만
흐르고 또, 고이는 것......알지 못했네
유리가루가 내민 흰 손에 이끌려
나, 시월의 허랑한 밤길을 떠돌았네


골방에서 産苦를 겪으며 목을 늘이고
소박한 출산을 꿈꾸기도 했으나
상상 임신이었다네 不姙의
더운 뱃속에서 쌔근거리는
이 아이, 유리 심장을 뉘 손으로
流産하나 어지러운 날들이여
山만한 유리가루 하나가 나를 겁탈하곤
치를 떠는 양미간에다 點睛하였네
눈부신 맹안으로 철새들의 유순한

숨통을 옥죄며 둥우리를 들쑤시며
내가 널 사랑하노라, 말 하였네
말만 하였네

시월 화사한 잎들을 겨울
찬 바람 뒤켠으로 입적하고
한 세월 유리로 쌓아 올린 왕국이
그예 무너지네
産달 가까운 헛배는 봉분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어찌하나
햇살 아래 五色 피를 흩뿌리며
비눗방울처럼 터질 것만 같은데






- > 易 傳 3



속옷만 입은 우리 아이가 밖에서 놀고 있는데 아이가 무섭
다고 기겁을 하는 것을 보니 아이보다 훨씬 큰 멧돼지 한 마
리 화살통 같은 입을 세우고 달려오기에 엉겁결에 몽둥이를
들어 심하게 내리쳤지만 꿈쩍도 않아 누가 옆에서 갖다 준 도
끼로 여러 번 찍고, 또 찍고 그러고 나서 들여다보니 도끼에
찢긴 어깻죽지에 피묻은 속옷이 너덜거리고 정말 그것은 피
투성이가 된 우리 아이의 무참한 모습이었습니다.



- 이 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중에서




- > 견효자이작고 (見孝子而斫股)




옛날 어떤 스님이 좌선(坐禪)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상복을 입은 사람이 송장을 메고 와서 하는 말이 “네가 왜 우리 어머니를 죽였느냐?”고 따지며 달려들었다. 이에 옥신각신
하다가 시비 끝에 스님이 도끼로 그 상주를 찍었는데 눈을 떠 보니 자기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고 한다.


- 제 시나리오의 키워드 입니다. 이 두가지가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白書.2, 全文, '93학번 노춘기


1. 유리 가루를 어떻게 숨기고 또한 동시에 어떻게 밝힐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었을 것이다.
<'유리'라는 말을 너무 자주 이야기함으로써, 밝히는 방법은 천박함을 느끼게끔 되어버렸고,
산문투의 문장과 사족에 다름 아닌 부연은 독자에게 否定의 충동을 일으킨다.>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터지지 않거나 잘 못 터진다.>(<>은 인용자)

- 욕심을 버려도 터지지 않거나 잘못 터진다. 한국영화 흥행 스코어가 증명함

2. '유리','출산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좀 더 파고들었어야 했다. 중요한 모티브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소재적인 측면에서 차용만이 이루어졌을 때, 독자는 <이해하면서도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유리'의 속성, '출산이라는 행위'의 속성에 대한 더 깊은 천착!
(<>는 인용자)

-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이해하면서도 실망하지 않으려면 먼저 그 자신 마음의 성전을 허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을 봐도 평생 좆이 꼴리지 않으리라.


-어느 90의 지적..

- 나는 무늬만 89! 69가 아니라도 실망하지 말기를..


--이하 생략--

- 붓끝의 불꽃이 제 살을 태워야 할 입장이다.

*성님이나 저나 학번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가르침을 주는 문청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고대 출신의 문청들이 90년대 붙었던 이빨 다구리를 퍼온 것인디요
많은것을 시사하는 비평인거 같습니다.

-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문청들은 의치를 해서 그런지 말이 없더라


-11
생각을 훔치는 것은 더욱 나쁜 도둑질입니다.

- 은근히 불안하다. 누가 내것을 가져갈까봐. 그래봤자 라면 냄비 받침대겠지만, ㅋㅋㅋ


*저는 조금 전에 책 한권을 읽었습니다.

그 책의 주제는 아버지 일수도 또는 관용이라고도 말 할 수 없었지만

저는 아버지와 관용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실이기 때문에 흔히 있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믿어왔지만, 살면서 그런 때가 있었는지 전혀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나는 길에서 들은 얘기를 길에서 흘리는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성님은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저에게 무슨 말을 했던가.

저는 그 얘기를 길에서 흘리는 방식으로 살아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삶은 여전히 그 매력을 잃지 않고 있지만, 저는 이미 많은 가능성들을 포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게을렀고 그 분노가 타인에게 자주 드러났었습니다.

제 삶이 너무나 하찮았기 때문에 저는 그토록 하찮은 것들에 분노하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시나리오를, 아니 영화를 모릅니다.

제가 받은 사랑의 양이 저를 망설이게 합니다.

이것으로 저의 무례를 용서할 수 있으시거든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일이든 일어나기를 바란적이 있었습니다.

그저 저는 흘러가고 흘러가며, 그 강물의 이름은 세월이었고,

저는 하염없이 낡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님은 무엇을 보셨습니까?


-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어쩌면 내 시나리오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님의 소중한 원고를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의 첫번째 감상평이였습니다.

성님의 시나리오는 제 서재(?) 한곳에 소장해 두겠습니다.

건필하시길

m(__)m


우겔겔...



.......................영화럴 꿈꾸며 뇨(女)자럴 꿈꾸넌 당랑타법 1분에 14타


- 다른 누군가에게도 보여주기로 했으니 나의 서재로 컴백시켜다오.
그리고 두번째 감상평은 알지?

1 / 69
다음
게시판 설정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