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드라마 오디션 후기

편한배우 편한배우
2022년 11월 04일 21시 38분 54초 6469

카톡이 울린다.

어? 실장님이다.

좋은 소식 있나?

드라마 오디션이 잡혔다고 한다.

대형 방송사 상업 드라마 오디션이다.

 

좋아. 이번에는 꼭 따내야지.

카톡 단 한 통으로 배우 모드로 돌입.

내가 하던 일들은 잠시 미루고,

오디션 날까지 오디션에만 올인이다.

 

먼저 실장님이 보내주신 지정 대사 첨부파일부터

열어본다.

광고가 열린다. 이놈의 폴라 오피스.

공짜니까 참는다.

지정 대사 파일이 열렸다.

독수리가 먹잇감을 쫓듯 내 역할의 대사를 찾는다.

오, 이번엔 대사가 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와 배역 간 인연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람마다 인연이 존재하듯이,

배역이 나와 인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인연임을 첫인상에 바로 알아본다.

보통 3초면 파악이 끝난다.

 

이 역할의 연기가 쉬울지, 아니면 까다로울지는

그 안에 판명 나는 것 같다.

이건 아마 다른 배우들도 공감할 것 같다.

그렇다고 오디션 결과까지 예측하는

신통력은 가지지 못했다.

 

드라마 오디션 결과는 내 손을 떠난다.

나는 이 역할과 안 맞는다 생각해도

합격할 수도 있는 거다.

아무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대본과 나 사이의 인연의 끈을 확인해 본다.

 

아. 쉣.

입에 안 붙는다.

찹쌀떡처럼 착 붙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괜찮다.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나는 프로니까.

최악의 상황도 최선의 상황으로

만들어내야한다.

우선 대사 캡처부터 하자.

이놈의 무료 오피스 앱은 한번 나가면

처음부터 다시 광고를 봐야 되니까.

한 장, 두 장, 세장, 네 장. 오케이.

애매하게도 마지막 페이지는 딸랑 두 줄이다.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 그래도 캡처 완료.

그 후 내가 애용하는 앱 구글 캘린더를 켠다.

일정을 관리해 주는 아주 편하고 실용적인 앱이다.

그리고 무료다.

일정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기 시작,

드라마 오디션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정은 제거한다.

오로지 드라마 오디션 하나에 포커스를 맞춘

일정들로 채워나간다.

작업 완료.

이제 집에서 대사 출력을 하자.

아 맞다.

얼마 전에 삼성 노트북을 내 조카에게 팔았다.

괜히 팔았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계획 수정. 인쇄소로 가자.

 

평소 가던 인쇄소에 도착했다.

사장님한테 살갑게 인사를 건네본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 사장님 되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

초면에 반말은 기본이다.

반대로 손님이 사장님 눈치를 보게 만드는

마법을 쓰신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겨운 느낌이 드는 아저씨다.

이상하게 밉지가 않다. 특이한 분이다.

흑백으로 4페이지 인쇄하러 왔다고 말한 뒤,

인쇄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4페이지 뽑으면 400원이네.

왠지 모르게 미안해진다.

그래서 계좌이체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따끈하게 갓 인쇄된 대본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드라마 오디션 연습 모드로 돌입한다.

우선 처음에는 되도록 분석을 피한다.

최대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시도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배역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반대로도 가본다.

분석이 틀려도 상관없다.

어차피 최종 결과물을 위한 밑 작업일 뿐이니까.

배역의 팔레트를 넓히는 것이니까.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벌써 지쳤다.

나는 왜 체력이 이 모양일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것이기 때문이라

정신승리하며 오늘의 연습을 끝낸다.

 

며칠 후, 드라마 오디션 당일이다.

방송사 앞에 도착했다.

대형 방송사 드라마 오디션은 첫 번째인데,

왠지 모를 뿌듯함과 압박감이 공존한다.

이름값에서 오는 중압감 같다.

그래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긴장하지 말자. 편하게 보자. (덜덜덜)

방송사 별관의 대기실로 안내받는다.

자연광이 들어오긴 하지만

불을 안 켜놔서 좀 어두침침하다.

근엄한 표정을 한 나와 비슷한 배우들

20명 정도가 앉아있다.

 

윽. 내 심장. 다시 긴장된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듯 자리를 찾고,

앉아서 대본을 편다.

어떤 사람들이 왔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주위를 한번 훑어본다.

다들 하나같이 엄청난 실력자로 보인다.

그리고 키도 크고 잘생겼다.

괜찮다. 원래 배우들은 오디션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만 그런가?

나는 연기, 그리고 진실성에만 집중한다.

라며 스스로를 달랜다.

근데 다들 하나같이 메이크업이 두껍다.

메이크업 금지라고 해서 난 선크림만 발랐는데.

설상가상 내 옆에는 혼신의 열정으로

대사를 연습하는 배우가 앉아있다.

신경쓰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 순서를 확인해 본다.

그나저나 대기실이 인간적으로 너무 덥다.

한여름인데, 에어컨은 틀어주지.

메이크업을 성실히 해온 배우들은

양초가 녹듯

그 본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참사를 막고자 대본으로

열심히 부채질을 해댄다.

“홍0택, 김0수, 김0택, 신용범 배우님,

문 앞에서 대기하실게요!”

​조용했던 대기실에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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