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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터치'는 존재하는가? (영화울림)

middleguy
2009년 06월 01일 11시 41분 23초 4159 2
‘박찬욱 터치’는 존재하는가?
-영화<박쥐>-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가 개봉되었다. 예상대로의 흥행성적은 물론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뜨거운 관심’중 흥미로운 것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가 극단으로 갈린다는 것이다. 너바나와 펄잼의 지지층 같이 한 쪽으로 몰리는 것도 아닌 (솔직히 펄잼이 더 낫지 않은가!) 거의 대등한 숫자로 ‘재밌다’라는 평가와 ‘악취미다’라는 평가가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원하는 결과였으리라!) 사실 박찬욱 감독 작품만큼 관객들이 ‘주도적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는 영화도 한국영화계에서는 드물다. 현재 그와 비슷한 위치를 자리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경우는 어느새 ‘흥행영화’라는 선입견이 강해졌고 사실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문법은 영화를 계속해서 봐야 이해가 가능한 요소가 많다. 김기덕 감독의 경우는 관객들이 보다가 질려버린다. 홍상수 감독은 아직 ‘오타쿠’영화다.
나는 <괴물>이나 <살인의 추억> 그리고 <사마리아>나 <나쁜 남자>가 훌륭하지 않은 영화라고 하는 게 아니다. 물론 다들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들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처럼 관객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글쎄’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한번도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가 없음에도 아니 사실 흥행으로 따지면 오히려 예전 <공동경비구역 JSA>만도 못함에도 작품마다 관객들과 ‘오버 좀 더해서’ 우리 사회에 꽤 그럴싸한 족적들을 남기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점이 관객들이 ‘편한 극장 의자에 앉아서도 지들 스스로 알아서 영화를 분석하기까지’하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하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찬욱’이라고 답할 것이라 확신한다.(물론 CF도 한 몫 했다!) 봉준호도 김기덕도 홍상수도 아닌 박찬욱. 관객들은 그의 영화에서 그만큼의 많은 공감과 재미를 느낀다. 그 힘을 나는 ‘박찬욱 터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로 설명하려고 한다.

‘터치’라는 말은 여러 가지 말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쉽게 간단히 말해 ‘영화상에서의 연출가의 독특한 반복적인 연출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감독이 영화들마다 보여주는 ‘클리셰’일수도 있다. 즉, ‘박찬욱 터치’란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박찬욱 감독만의 ‘트레이드 마크’적인 연출기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터치’는 ‘루비치 터치’다. 초기 헐리우드 코미디의 위대한 감독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터치’를 말한다. 보그다노비치는 ‘루비치 터치’에 대해서 “루비치 터치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연출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말하고 있는지 입증할 수는 없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된 분들을 위해 더 쉬운 예를 들면 가끔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케이블 채널 영화를 중간부터 보는데 ‘아! 이 영화. 아무개 감독이 만든 영화 같은데?’라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터치’의 힘인 것이다. 현대 감독 중 이런 ‘터치’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감독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이다. (제발 누군가 ‘스필버그 터치’를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분명 있다. 아무도 안한다면 내가 반드시 해내리라!!)
그럼 과연 ‘박찬욱 터치’는 어떤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박찬욱 터치’는 ‘벽을 이용하는 터치’다! 내가 보기엔 박찬욱 감독은 앵글을 잡고 화면을 구성할 때 ‘벽을 활용하는’ 감독이다. 이런 장기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감’을 느끼게 해 준다. 박찬욱 감독은 화면구성에 있어 공간과 공간을 구별짓고 나누는 ‘벽’을 기준으로 카메라워크와 인물의 동선을 만드는 게 분명하다. 물론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바보 아냐? 난 또 뭐 대단한 거라고. 그럼 당연히 벽을 기준으로 하지. 벽 없는 공간은 없다고!“라고. 내가 말하는 건 벽을 주(主)로 해서 공간을 만들고 있다고 것이다. 보통 영화들에서 벽은 카메라의 프레임 경계 같은 취급을 받지 않는가. 공간에서의 벽은 영화장면에서도 벽으로 말이다. 하지만 박찬욱은 다르다. '박찬욱 터치'는 '벽을 이용하는 터치'다.



박찬욱 감독이 ‘벽을 이용한 터치’의 ‘능력자’라는 것은 일단 그의 영화마다 등장하는 ‘미술화된 벽’의 모습을 보고도 알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벽은 실내를 특징짓는 공간적 개념과 동시에 캐릭터의 내면을 대변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소품이나 오브제가 아닌 공간을 자리하는 벽 자체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압도적인 정서적 경험을 하게 한다. ‘미술화된 벽’을 통한 롱 샷만으로도 클로즈업 못지않은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클로즈업이 그렇게 많았던가를.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물결치는 붉은 벽이었고 <사이보그...>에서는 연두벌레색의 벽이 정신병동이라는 공간 외에 더 많은 걸 우리에게 제공하였다. 이번 <박쥐>도 마찬가지다. 송강호가 신하균을 죽이고 신하균의 아내인 김옥빈의 집에 들어와 같이 살게 되면서 처음 한 일은 바로 벽에 페인트칠을 다시 하는 것이었다! 영화상 이런 장면이 또 있었는가!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의 변화를 나타내는 대표 컷으로 벽에 흰색으로 페인트칠을 하는 장면을 썼는가. <박쥐>는 벽에 페인트칠만 하는 단순한 행위 하나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낸 영화다. 덧칠한다는 의미와 함께. <박쥐>의 첫 장면을 기억해보자. 처음에는 그냥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본 그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 창 너머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이 그림자로 벽에 비쳐지는 모습인 것을 알게 된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동일한 대상을 첫 장면에 등장시키면서 정반대의 방법으로 촬영한 것이다. <박쥐>의 첫 장면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처음부터 명확히 밝히는 동시에 박찬욱 감독의 ‘도장’과도 같은 장면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유명한 장면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바로 <올드보이>의 일명 ‘장도리 컷’이다. 최민식이 복도에서 패거리들과 장도리 하나만으로 싸우는 장면. 대부분 롱테이크만을 언급하지만 사실 내 생각에는 이 장면도 ‘벽을 이용한’ 결과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많이 알려진대로 원래 이 장면은 여러 컷으로 나눠 촬영될 예정이었다. 그런 것이 촬영 현장에서 갑자기 박찬욱 감독이 변덕(?)을 부려 컷을 나누는 것이 아닌 한번에 찍는 ‘롱테이크’가 된 것이다. 영화가 성공했으니 ‘와-!’하고 ‘역시! 달라!’를 연발하겠지만 사실 생각해보자 그 씬은 복도 씬이었다. 고시원 복도처럼 굉장히 폭이 좁은 복도. 그리고 그 안에서의 격투장면. 그러면 원래대로 컷을 자잘하게 나눠서 촬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의 접근전이 벌어지므로 관객들로 하여금 타이트하고 굉장히 서로가 가깝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컷을 자잘하게 난도질해 편집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그냥 한번에 마치 평원에서 대규모 회전을 벌이는 장면처럼 찍어버렸다. 이는 이 컷의 카메라 위치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컷에서 카메라는 최민식의 앞이나 뒤가 아닌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최민식을 따라갔다. 옆에서. 벽이 위치한 곳에서 말이다. 바로 이 카메라의 위치가 박찬욱 감독의 자신감의 증거다. 박찬욱 감독은 장도리 컷 전에 복도에 대한 정보가 이미 노출이 됐음에도 과감하게 한 쪽 벽을 아예 없애 그곳에 카메라를 둠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롱테이크도 그런 공간에 대한 이해가 된 다음에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이런 벽에 통한 공간성은 아파트 공화국에 살며 유달리 나와 남을 구분 지으려 하는 일상의 ‘벽’에 갇혀사는 우리에게 큰 공감으로 다가온다. 농담으로도 ‘우리나라 모텔 창문이 세계에서 제일 작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사회성을 중시하고 인간적 상하관계를 당연시하는 동시에 개인적인 비밀이나 사생활은 더욱 더 감추고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 우리네 이중성이 잘 표현되는 실내적 공간은 벽이 아닐까 싶다. 물론 B급 영화 애호가인 박찬욱 감독이기에 그림자를 이용한 테크닉 등의 다양한 실험을 위해 벽을 적극 활용한 측면이 크겠지만 자의든 타의든간에 결과적으로는 이런 ‘한국적인 공간’의 이해가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쯤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만약 박찬욱 감독이 <날 보러와요>를 영화로 만들었다면 봉준호 감독과는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분명 범인을 암시하는 장면은 벽에 비친 범인의 그림자가 나올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새뮤얼 풀러의 분위기를 풍길 것이고 부분부분 특정장면에서는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를 그대로 따라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공통점은 ‘벽’가지고 장난(?) 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일어나서 잘 때 까지 가장 많이 보는 건 ‘벽’일 수도 있다. 특히나 오늘날 같은 도시문명들은 말이다. 그런 이유로 뭔가 혁신을 이룬 영화들 대부분은 벽을 이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경우가 많다. 경계의 의미가 붙어서도 있겠지만. 박찬욱 감독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벽파’인 것이다!

현재 <박쥐>이 말은 다양하다. 극단으로 나뉜 감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건강한 것 아닌가. 그만큼 엄청난 관심과 자발적인 관객들의 참여가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다만 ‘박찬욱 터치’라는 걸 염두해 두고 다시 한번 보기를 바란다. <박쥐>는 ‘박찬욱 터치’의 총집합체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두’가 많이 언급되는 것 같다. 물론 영화의 중심적인 상징이다. 하지만 오브제일 뿐 아닌가. 영화를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연출자의 ‘체취’를 맡아보는(?) 것도 나름 꽤 재미있고 흥분되는 경험이다. 연출자의 체취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작품은 그만큼 연출자가 많이 사랑한 작품 아니겠는가. 그런 ‘연출자의 사랑을 많이 받은’ 영화를 우리가 또 사랑하는 것이다.
원래 남의 여자나 아내가 더 사랑스럽지 않은가!




- 05 이민우-
middleguy@paran.com
middleguy77@naver.com
타란티노의 노예-이민우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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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ongwoon
2009.06.02 22:28
박찬욱 감독님 본인 의도로서 벽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를 너무 어렵게 보는게 아닌가 싶어요,
자칫 영화 자체가 그 벽속에 갇혀 버리지는 않겠죠,적어도 제가 보는 박찬욱 감독님은 가볍게 뛰어 넘겠죠.
모든것에 반복적인 무엇인가 보다는 모든것에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그런 감독님이시기를 바랍니다.
lookyhj
2009.06.03 15:17
전 너바나가 더 낫던데....펄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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