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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바다

jelsomina jelsomina
2003년 05월 11일 01시 10분 10초 1937 3
해안도로에 어떤 할머니가 바다를 보고 앉아계셨습니다.

언젠가 안동에서 영덕을 지나 7번 국도를 타고 울산 사는 친척집 결혼식에 참가하러 가고 있었는데
화장실에 들르러 잠시 멈춘 길가 휴게소

그 옆 벤치에 엄마가 뒷모습으로 앉아 바다를 보고 계시더군요.
운전에 지친 작은 형님은 좁은 차 뒷자리에서 뜨거운 햇볕에 인상을 찡그리며 잠들어 있고..

엄마는 아마 화장실에 간 나를 기다리다 차에서 나와 그 벤치를 찾으셨겠죠.
쥐고계시던 손수건이 천천히 오르락 내리락..

차에 시동을 걸자 뒤돌아 보고는 다가오셨습니다.
한참을 또 그렇게 운전을 하고 가다

"엄마 아까 울었어 ?"  하고 여쭤봤더니
6.25 때 강릉 육군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던 아버지 면회가는길에 바다 한번 보고
이번이 두번째라고 하십니다...

바다한번 보고 .. 그 다음번 바다를 보는 사이에 40년이 흘러갔다고..
남편도 떠났고.. 아들 딸 다 시집장가 보내고..
그냥 그런생각에 그랬다고 하시더군요.

그 다음해 저는 취직을 했고 첫 여름 휴가때 엄마를 제주도에 모시고 갔었죠.
나이드신 어머니와 막내아들놈 .. 그렇게 달랑 둘이 놀러간 여행이 머 그렇게 재밌을 수는 없었겠지만 :

저 할머니를 보니까 그때 어머니 생각이 나서 카메라에 손이 갔습니다.

저 할머니는 매일 매일 수십년 바다를 보며 사셨을 분인데
멀 저렇게 생각하며 철창살 너머 바다를 하염없이 보고 계실까요

그물을 다듬으시다가 문득 머 옛날 생각이라도 나신건지..
아님 배타고 나간 아들이 돌아올때가 되서 배가 오나 안오나 보고 계신건지..
젤소미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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