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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어뢰, 가이텐(回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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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4월 27일 18시 56분 12초 7269 2


▒ 번호 : 154     ▒ 글쓴이 : 오태규 (politicsnews)  ▒ 조회 : 2582      

인간어뢰, 가이텐을 아시나요  

도쿄의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벚꽃도 어느새 뒤쫓아 온 새 잎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사라졌다. 벚꽃이 질 무렵인 4월초에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그동안 몇 번 가본 적은 있지만, 일본 최초의 박물관(1882년)으로 설립됐다는 야스쿠니신사 부설 전쟁박물관 유슈칸은 가본 적이 없는 터라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야스쿠니신사와 벚꽃

그런데 야스쿠니신사와 벚꽃, 즉 사쿠라와는 상당한 인연이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됐다. 우선, 야스쿠니신사에는 사쿠라나무가 많다. 메이지3년(1870년) 야스쿠니신사의 전신인 도쿄초혼사의 본전을 건축할 당시 경내에 심은 것이 시작이고, 지금은 1천 그루 정도가 신사의 정원에 가득 들어차 있다. 또 일본 기상청에서는 사쿠라 개화 정보를 일기예보처럼 내보내는데, 도쿄의 경우 그 기준이 되는 나무가 야스쿠니신사 경내에 있다. 야스쿠니신사의 경내에 지정된 3개의 사쿠라 나무 중 2개 이상에서 꽃이 피면, 기상청은 도쿄에 사쿠라 꽃이 개화됐다는 예보를 내보낸다고 한다. 또 야스쿠니신사 경내의 한쪽 구석에 있는 유슈칸에 가면, 입구에 `무인의 마음'이라는 첫 번째 전시실이 있다. 이 전시실에는 전쟁이나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시 구절 같은 것이 몇 개 걸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일본의 정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쿠라 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걸개가 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쿠라를 사무라이정신에 비유하는 것의 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유슈칸은 전쟁박물관이 아닌 전쟁찬양박물관

유슈칸의 입장료는 꽤 비싸다. 어른 1명의 입장료가 700엔이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그러나, 외국인,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당사국이었던 한국 사람들의 경우 일본의 침략 본질을 알기 위해 꼭 가봐야 할 박물관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깝지마는 않은 값이라고 생각한다. 야스쿠니신사 안에는 일본 육군의 창설자이고, 야스쿠니신사의 건립에 힘을 쏟았다는 오무라 마쓰지로의 동상(일본 최초의 서구식 동상)이 서 있는 등 다른 신사에서 느낄 수 없는 군국주의 상징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지만, 봄여름의 춘추대예제와 8.15 패전일 참배 등 특별한 날을 빼고는, 나무 많고 경치 좋은 도심의 훌륭한 공원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돌아오기가 쉽다. 그러나 이 신사의 부설 박물관인 유슈칸을 돌아보면, 이 신사가 왜 전쟁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상징물인가 하는 점을 보다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전시실은 20개로 이뤄져 있고, 시대는 메이지유신부터 태평양전쟁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여러 가지 무기와 모형, 군복과 군인들의 유물 등이 전시돼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이 전시보다는 설명과 해설 중심이어서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다.
우선 내용을 보면, 일본이 본격적인 근대 대외전쟁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얼마나 혁혁한 전과를 올렸는가가 그림과 비디오, 모형 등 여러 가지 시청각자료로 자세히 설명돼 있다. 중일전쟁도 일본이 얼마나 전과를 올렸는가를 중심으로 전시가 돼 있고, 한국식민지 통치라든가, 난징 대학살 등 피해국의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태평양전쟁의 경우도 천황의 군대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얼마나 헌신적으로 싸웠는가를 중심으로 전시와 기술이 돼 있다. 한마디로, 전쟁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비참함, 슬픈 모습은 이 박물관에서 전혀 느낄 수 없고, 일본군인의 영광과 장엄함, 희생정신만이 부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슈칸을 다녀온 뒤 한 미국인 언론인과 만나 유슈칸을 화제로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베트남, 중국, 대만 등의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한 전쟁박물관을 둘러 봤고, 전쟁박물관이란 것이 대체로 전쟁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유슈칸은 좀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다른 나라 박물관에는 찬양이 7 정도라면, 전쟁의 참상도 3 정도 포함돼 있는데 이곳은 찬양일색이라는 것이다. 그는 "유슈칸과 야스쿠니신사가 도쿄에 없다면, 찾아오는 친구들을 안내할 중요한 명소가 하나 없어지는 셈"이라고 조롱조로 말했다.
박물관 출구 가까이에 설치돼 있는 감상록을 보면, 침략전쟁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 기록자들은 "감동했다"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있는 것을 알았다" "눈물이 난다"는 등의 감상문을 남겨놨다. 젊은이들이나 반전주의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전쟁은 싫다" "NO WAR" 등의 글씨도 있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아 할 정도이다. 다만, 외국인들이 영어로 남긴 메시지는 주로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그만큼 이 박물관이 균형을 잃은 내용임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을 때, 한 중국 외교관이 "유슈칸을 보고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한 것과 상통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이텐(回天)을 아시나요

이 박물관에는 `세계 최초의 유도미사일'(앞의 미국인 기자 친구가 붙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이텐이라는 무기가 전시돼 눈길을 끈다. 이 무기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1인용 선박으로 개조된 어뢰를 타고 적함까지 전속력을 돌진해 자살공격을 하는 인간어뢰 무기이다. 박물관에 비치돼 있는 가이텐의 설명자료에 따르면, "우리 해군이 고성능무항적어뢰로 세계에서 자랑하는 `93식어뢰'를 엔진으로 하고, 머리 부분에 155톤의 작약을 장착하고, 잠입 부상 회전 자재, 탑승원 스스로 조종하는 1인용 무기이다. 문자 그대로 일신의 육탄이 돼 적 함정에 부딪혀 일격으로 적함을 필살하는 병기였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소년 비행사가 연습비행기를 타고 적 함정에 부딪혀 공격하는 가미가제는 영화나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어뢰를 타고 배를 향해 자살공격하는 가이텐은 한국 사람에게 매우 생소한 무기임에 틀림없다. 사실 나도 이 무기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런 공격 형태가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처음보고 알았다. 그러나 이 비인간적인 무기는 태평양전쟁의 말기인 1944년 8월부터 정식으로 채용돼 사용됐는데, 모두 244기가 실전에 투입되고 이 과정에서 106명의 전사자가 나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관련자료는 "종전 직후 미군과 연락을 위해 필리핀 마닐라에 부임한 일본군 사절에 대해 맥아더 사령관의 참모장은 입을 열자마자 `가이텐을 탑재한 잠수함은 몇 척인가. 바로 작전을 정지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가이텐이 얼마나 미군에 공포와 위협을 주었는가를 말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공격에 동원된 젊은이들의 생명의 존엄과 전쟁의 비인간적인 면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가이텐은 당시 해군이 사용한 신병기였지만, 육군도 비슷한 종류의 인간 신병기를 고안해 사용했다. 250kg의 폭약을 장착한 베니아로 만든 모터보트를 몰고 적 함정을 공격하는 '정진폭뢰정'이 그것이다. 육군은 당시 16살~18살의 소년병을 차출해 무모한 공격의 소모품으로 활용했다. 여기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스러져간 젊은이가 무려 1636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는 이것이 그야말로 극비의 보안을 요하는 비밀병기였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들 육군해상정진전대는 국군의 커다란 기대를 안고, 단기간에 부대를 편성해 익숙하지 않은 해상에서 무방비의 특공정을 조종하지 않으면 안됐다. 물론 생환은 약속할 수 없었다. 이런 악조건 아래서, 적합정을 격침한 것이 수십 척이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물론 여기서도 혁혁한 전과만이 있을 뿐 개죽음을 당한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라든가 죄의식은 없다.
공군의 가미가제, 해군의 가이텐, 육군의 특공정 작전은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상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대해 한마디 반성도 없이 이들의 죽음을 지금도 애국으로 포장해내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이유를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로 설명한다해도 먹힐 수 없는 것은 야스쿠니신사가 전쟁을 찬미하고 재생산하는 상징 그것 이외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은 비싸고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일본 식민지지배의 피해자인 한국 사람들은 과거 침략을 반성하지 않고 호시탐탐 군비확장을 노리는 일본의 음험한 모습을 몸으로 파악하기 위해 야스쿠니신사의 유슈칸을 꼭 한번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게시일 : 2003-04-21 오후 5:08:07   from 61.207.15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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