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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타카' 리뷰

부엉
2017년 12월 30일 17시 09분 14초 2777
나는 대치동 소재의 고등학교를 나왔다. 흔히들 대치동하면 고급 외제 차나 비싼 집값을 떠올리겠지만 우리 집은 저소득층에 가까웠다. 굳이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진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금수저 또는 그 비슷한 친구들은 나와 출발점부터 틀리구나. 그들은 더 좋고 다양한 환경을 고를 수 있구나.’ 물론 그들도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같은 노력이라도 결과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 ‘가타카’는 오늘날의 현실과 일맥상통한다.

가까운 어느 미래, 세계는 유전자를 선별, 조작하여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아이만 잉태할 수 있게 한다. 신을 믿는 어머니의 의지로 빈센트(에단 호크)는 자연 임신으로 태어났다. 첨단 유전자 공학은 그에게 축복 대신 심장 질병 확률 99%, 예상 수명 30.9세의 열성인자라는 암담한 현실만 전해주었다. 그런 그는 어릴 적부터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었다. 이에 최선의 노력을 쏟지만 열성인자를 걸러내는 유전자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진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던 그는 우성인자로 위장하기 위해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의 촉망받는 우성인자이지만 하반신 불구인 제롬(주드 로)을 만난다.


“우리네 현실과 다를 게 없는 가타카 속 세계”


‘가타카’ 속 우성인자는 금수저다. 그들은 남들보다 선택지가 다양하다.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게다가 신체나 정신 관련 병에 걸릴 위험도 적다. 반면 빈센트는 밥 먹을 시간도 아끼며 공부에 매진한다. 조금이라도 우주에 가까워지기 위해 가타카의 청소부로 취직도 한다. 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어 위장을 할 때에도 제롬과 키를 맞추기 위해 다리를 늘리는 수술까지 한다. 게다가 이 위장은 사기죄다. 그는 범죄까지 저지르는 것이다.

거기에다 그를 도와주는 인물들까지 있다. 먼저 제롬, 그는 우성인자 중에서도 뛰어나지만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쓴다. 그 전 수영선수 시절에도 은메달에 그쳤다. 두 번째로 가타카 소속, 아이린(우마 서먼)은 우성인자이지만 심장 조건에서 부적격을 받았다. 결국 열등감을 가진 셋이 모여 하나의 꿈을 이루는 셈이다.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도 결코 쉽지 않다. 이렇게 빈센트 일행이 각고의 노력을 하는 동안 다른 우성인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별무리 없이(자세히 다루진 않지만) 우주비행에 안착한다.


“이야기 꾼, 앤드류 니콜 감독이 숨겨 놓은 메시지”


빈센트의 소망은 우주비행사이지만, 속뜻은 ‘불공평한 현실에서의 탈피’이다. 먼저 그의 대사 몇 가지를 살펴보자. “신앙심 다음으로 청소가 중요하다잖아요.”, “유전학적 차별을 청소하는 것이다.”, “깨끗이 하면 반대편에 있는 제 모습을 더 잘 상상할 수 있죠.” 그의 속마음을 청소라는 매개체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사도 있다. “외계의 무중력 상태는 자궁 안과 가장 비슷한 환경이라고 하지.” 이렇듯 영화는 현 세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의 심정을 지나가는 대사 속에 넣어 놨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더 깊숙하게 다가온다.

니콜 감독은 빈센트의 동생을 우성인자로 설정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우성인자와 열성인자 사이의 간극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관객이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밀접한 사이인 ‘형제’라는 장치를 사용한 것이다(게다가 형이 열성인자다). 둘째는 희망적 메시지를 위해서다. 그와 동생은 어릴 적부터 바다에서 누가 더 멀리 나가는지 가리는 수영시합을 한다. 처음엔 당연히 동생이 이긴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시합에서 승자는 빈센트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이유는 그가 직접 말해준다.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가타카’에서 빈센트는 사기죄로 경찰에게 쫓기지 않는다. 자신을 의심하던 상관의 죽음 때문에 경찰의 의심을 받는다. 그에게 행운이었던 이 일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이 아이러니가 이야기의 입체감을 만들었다. 만약 사기죄로 빈센트가 쫓기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야기는 더 단순해졌을 것이다. 감독의 장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가타카’ 다음으로 각본을 맡은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명작으로 꼽히는 ‘트루먼 쇼’이다. 과연 이야기 꾼 답다. 


김민구(go9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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