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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 (영화울림)

middleguy
2009년 06월 01일 11시 39분 00초 8395 2 1
내남자3.jpg

내남자!.jpg

<영화 유감>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는
어쩌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됐을까?

우디 앨런의 신작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Vicky Cristina Barcelona)>가 최근에 개봉됐다. 사실 많은 관객들이 <애니홀>이나 <맨하탄>, <한나와 그 자매들>을 모르거나 본 적이 없음에도 근래 몇 년간 <매치 포인트>와 <스쿠프>가 입소문을 타면서 우디 앨런은 관객들이 근황을 궁금해 하는 감독이 됐다.(네이버 영화감독 검색 순위에서 10위권 근처를 랭크하고 있다!!!) 게다가 페넬로페 크루즈가 이번 영화로 오스카를 수상하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영화 개봉을 기다려왔던 같다. 그리고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의문으로 돌아왔는데 자칭 우디 앨런 전문가인 나에게 그와 관련된 문의(?)가 몇 번 들어오기까지 했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는 개봉 안 해?”

아직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봐 말하지만 이미 영화는 한달 전에 개봉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어머나! 그럼, 스칼렛 요한슨(크리스티나 역)이랑 페넬로페 크루즈(마리아 역․ 그 문제의 아내)가 서로 ‘붕가붕가 랄라랄라’하는 그런 영화인가! 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번역 제목을 달게 된 것일까?

물론 수입해서 배급하는 회사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번역 제목은 영화를 보긴 보고서 지은 것만은 확실하니까. 발음 때문이었을까? 한번 모두 따라 발음해보자.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혀가 약간 꼬이기는 한다. 어쩌면 이런 깊은 생각에서 나온 번역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너무 좋아 친구에게 소개해주고 싶은데 영화 발음이 힘들어서 잘못 말할까봐.
“오늘 나 영화봤어. 너무 좋아. 너도 꼭 봐!”
“뭔데?”
“비키 크리스탈 바르샤!”
하지만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도 발음상의 문제가 있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나 <내 여자의 아내도 좋아> 아니면 <내 아내의 남자도 좋아>라는 식으로 몇 번이고 실수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목을 끄는 광고효과의 측면이 크지 않겠는가! 구은재가 점 하나 ‘찍’ 찍고 민소희가 되고 신애리가 양은 냄비 하나로 사람을 기절시키는 세상이니 어차피 예상되는 관객의 수가 제한된 영화로서는 다소 자극적이어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치고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번역된 제목이 이 영화에 가한 폭력이 생각보다 크다. 제목을 번역하면서 발음상의 문제나 흥행성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번역된 제목이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 그것은 바로 영화의 ‘주제’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를 <내 아빠의 아내도 좋아>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심각한 것은 이 제목이 영화의 주제를 완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동성애적인 장면이 있다. 딱 한 장면. 3~4초정도? 스칼렛 요한슨과 페넬로페 크루즈가 키스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 장면은 길고긴 두 여자 주인공들의 90분간의 여정 중 정말 3~4초에 불과한 하나의 ‘양념’에 불과하다. ‘양념’이 ‘음식 메뉴’가 되버린 것이다. 자극스럽기 그지없는 제목은 이 영화를 ‘불륜 아니면 동성애적’영화로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소재’와 ‘주제’의 차이를 분명히 하려 하지 않아 영화 만드는 사람들조차 ‘슬픈 소재는 무조건 슬픈 주제’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한국의 영화판에서 이 선택은 우디 앨런의 잠정적인 팬이 될 수도 있는 관객들을 영화 스스로가 차버리는 꼴이기도 하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로 바뀌면서 훼손된 ‘주제’는 제목에서도 없어졌듯이 ‘비키’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칼렛 요한슨도 페넬로페 크루즈도 아닌 레베카 홀이 분한 ‘비키’라는 캐릭터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주제는 비키이고 비키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빌어먹을 지금 번역된 제목이 달린 포스터에는 아예 비키의 모습이 없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스칼렛 요한슨과 페넬로페 크루즈사이의 사랑이나 동성애를 생각하지만 (심지어 영화를 보고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영화가 아닐뿐더러 아예 두 배우는 주인공도 아니고 주인공의 ‘갈등과 선택’을 나타내는 ‘크리스티나와 마리아’라는 분신인 것이다.

우디 앨런이 ‘비키’라는 이름을 처음에 넣고 ‘바르셀로나’라는 지명을 마지막에 넣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어느 영화도 대충 이름을 짓는 영화는 없다. 제목은 영화 뿐만이 아닌 모든 창작물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낯선 곳에서의 기대감과 갈등 그리고 선택의 무의미함’을 다룬 영화다. 물론 그렇다고 심각하지는 않다. 우디 앨런 특유의 유머로 영화는 바르셀로나에 온 상이한 성격의 비키와 크리스티나(내 생각엔 크리스티나는 비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어느 정도 증명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되고 크리스티나의 단독 클로즈업은 가장 늦게 그것도 혼자 자기 방에 있게 되면서 처음 등장한다.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바르셀로나 사촌 집에서 식사하는 씬에서 카메라가 두 사람을 동시에 잡는 장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를 통해 ‘현실적 선택’과 ‘내재된 욕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비키’는 주인공이자 곧 약혼자와 결혼을 해야되는 ‘현실’의 모습, ‘크리스티나’는 욕망에 충실한 내재된 모습 그리고 ‘마리아’는 어쩌면 그 둘 모두가 거쳐야 되는 ‘공통된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알듯이 우디 앨런은 ‘미스터 뉴욕’ 아닌가. 최근에 들어 계속적으로 뉴욕을 탈출하려는 시도는 하고 있으나 우디 앨런 영화에서 배경이 뉴욕이냐 뉴욕이 아니냐는 그 자체로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덧붙여 말하자면 바로 전 작품이 영국과 런던을 배경으로 했었다는 걸 볼 때 최근 우디 앨런은 제2의 안식처를 찾아 다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주제로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제목은 너무나도 영화 본질 자체에 많은 상처를 가하는 폭력인 것이다.

우디 앨런은 1977년 <애니홀>때부터 지금껏 30년 넘게 영화 제목 타이틀 자막을 단순한 동일한 글꼴의 활자로 써왔다. 타이틀 자막에 왜 돈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게다가 1983년작 <젤리그>의 경우, 초반에 제목이 잘 떠오르지 않아 <정체성의 위기와 성격 부적응과의 관계>라는 제목까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우디 앨런 자신은 자기 영화의 제목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감독일 수 도 있다.(적어도 나보다는....) 하지만 그렇다할지라도 번역을 해 그 영화의 주제를 다치게 하는 작명은 분명 피해야 할 것이다. 한번 떠올려보라. 영화관에서 무슨 영화 볼까 하고 고를 때 은근히 영화의 제목이 주는 이미지가 강했던 걸!




난 영화의 제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너무나 이상한 번역이 멀쩡한 영화를 다치게 하는 게 싫을 뿐이다. 특히나 우디 앨런처럼 너무나도 자기 색깔이 뚜렷한 감독의 영화가 제목 때문에 오해받는 것은 어느정도 번역을 하고 제목을 붙인 사람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제목을 반복해 말하니까 생각나는 거다. 최근에 역시 개봉한 영화 중에 <노잉>이란 영화가 있다. 내 친구 중 한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원제가 Knowing 이라고 한국말로 곧이곧대로 <노잉>이라고 발음나는 대로만 쓰는 것도 촌스러운 것 같다고. 그러면 어떻게 바꾸면 좋겠냐는 물음에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앎>.



- 05 이민우-
middleguy@paran.com
middleguy77@naver.com
타란티노의 노예-이민우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blzzz313
2009.06.01 11:54
뭐 좀 안타까운 얘기지만 비키 캐릭터를 맡았던 배우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없었죠. 그래서 포스터가 그렇게 나오고 제목도 그렇게 나온 겁니다. 시장주의 논리죠 뭐... 흑흑...
judysuh2
2009.09.08 06:47
하하하 글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블로그에 담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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